지난 5일 오전 서울 남산 ‘기억의 터’에 설치된 ‘대지의 눈’이 철거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5일 오전 서울 남산 ‘기억의 터’에 설치된 ‘대지의 눈’이 철거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여직원을 강제추행한 민중미술가 임옥상씨가 지난 7월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자, 서울시는 시립시설 내 해당 작가의 작품을 모두 철거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중에서 가장 논란의 중심에선 것 중의 하나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나아가 전쟁과 폭력을 넘어 평화와 여성인권을 이루고자 하는 강력한 바람으로 조성한 ‘기억의 터’ 내 조형물 철거이다. 서울시는 기억의 터 안에 있는 ‘대지의 눈’과 ‘세상의 배꼽’이 성폭력 가해자 임옥상이 만든 조형물이기 때문에 철거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에 여성 시민단체와 ‘기억의 터’ 추진위는 대지의 눈이나 세상의 배꼽을 구성하는 내용, 이미지나 포함된 그림들은 피해생존자 할머니와 시민들이 직접 의견을 내고 조율하면서 만들었기 때문에 임옥상 개인의 작품이 아니라 공동창작물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철거반대 입장을 보였다. 실제 ‘대지의 눈’에는 2019년 돌아가실 때까지 여성인권활동가이자 평화운동가로 열성을 다했던 김복동 할머니의 요청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47명의 증언과 명단이 포함되어 있으며, “내 이름은 '위안부'가 아닙니다. 나는 김순덕입니다”라는 책을 펴내면서 위안부 피해자를 넘어 여성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옹립시켰던 김순덕 할머니의 그림(‘끌려가는 소녀’)이 새겨져 있다. ‘세상의 배꼽’에는 여성주의 작가 윤석남의 그림이 새겨져 있고, 폭력과 상처를 받았지만 보복하기보다는 잉태하듯 품어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겠다는 여성주의적 가치를 담아야 한다는 당시 추진위의 철학이 응축되어 있다. 또 시설 부지를 허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서울시가 철거를 결정할 수 있는 주체는 아니며, 광의의 맥락에서 기억의 터는 시민에게 귀속된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2023년 9월 5일 오전 6시, 기억의 터 조형물 철거를 강행했다.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8월 14일)’이 한 달도 지나지 않은 때여서 더욱 마음이 아프다.

서울시는 수많은 시민과 여성들이 모여 평화와 인권을 상징하는 보라색 천을 두르고 철거를 반대하는 성명서를 내는 상황에서, 기억의 터에서 두 개의 조형물 없앰으로써 무엇을 얻고자 했는지 의구심이 든다. 성폭력을 저지른 자에 대한 엄벌주의적 조처를 통해서 성폭력을 근절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인가? 사실 작가에게 있어 본인의 작품이 사라지는 것은 커다란 형벌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것만큼, 어쩌면 이것보다 더 큰 형벌은 작품 설명에 작가가 성추행 가해자였음을 기록하는 방법도 있다. 그 자체가 성폭력 행위자에 대한 강한 처벌이고, 아직도 만연한 (조직 내) 성폭력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가 될 수 있다. 만일 임옥상 작가가 관여했기 때문에 기억의 터의 주요 조형물들이 철거해버리고 나면, 과거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자행되었고, 현재 위계적 관계에 의해 발생하고 있는 모든 성폭력에 대한 역사가 사라져 버리고 만다. 역사는 반드시 기록해야 남겨지고, 잊히지 않는다.

기억의 터 ‘세상의 배꼽’ 조형물 안에는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문구가 들어 있다. 일제에 의해서 자행된 치욕스런 성폭력 역사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도 우리는 식민주의 잔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 현재 한국사회에 일어난 성폭력 문제는 조형물을 없애서 눈에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라, 조형물 안에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답이다. 기록하지 않는 역사는 쉽게 잊혀지기 때문이다. 

송다영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송다영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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