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더하는 말풍선]

미역의효능 작가 웹툰 ‘닭은 의외로 위대하다’. ⓒ카카오웹툰
미역의효능 작가 웹툰 ‘닭은 의외로 위대하다’. ⓒ카카오웹툰

*이 글은 작품의 줄거리와 결말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역의효능 작가 웹툰 ‘닭은 의외로 위대하다’의 한 장면. ⓒ카카오웹툰
미역의효능 작가 웹툰 ‘닭은 의외로 위대하다’의 한 장면. ⓒ카카오웹툰

이제껏 대중매체가 재현한 좀비는 누가 봐도 좀비 같았다. 그러나 미역의효능 작가가 그리는 좀비는 그렇지 않다. “시체도 아니고, 지능도 있고, 우워어~하는 소리를 내면서 느릿느릿 걷지도 않고, 일반인들하고 구분이 안 가요. 인육도 평범하게 익혀서 먹고.”¹ 

좀비들은 아무나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보다 약한 여성이나 노약자를 우선 잡아먹는다. 딱히 좀비가 되지 않았는데도 인간을 사냥해 그 고기를 암시장에 팔아 이익을 취하는 인간도 급증한다. 눈앞에서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대가 인간인지 괴물인지 겉보기로는 알 수 없다. 누구를 만나든 알아서 조심해야 한다. 평범한 일상을 살다가, 출근하다가, 데이트를 하다가 여자라는 이유로 죽을 수 있으니 각자 알아서 조심해야 하는 수많은 여성들처럼.² 

미역의효능 작가 웹툰 ‘닭은 의외로 위대하다’의 한 장면. ⓒ카카오웹툰
미역의효능 작가 웹툰 ‘닭은 의외로 위대하다’의 한 장면. ⓒ카카오웹툰

2019년부터 연재 중인 웹툰 ‘닭은 의외로 위대하다’는 시골 외딴곳에서 홀로 살던 75세 언어장애인 여성 ‘정복자’ 앞에 좀비 사태로 피난을 왔다는 26세 여성 ‘심연’이 나타나면서 시작한다. 연이 복자에게 좀비에 대해 설명하던 중, 마을 이장 ‘김동철’이 찾아온다. 그는 손녀가 좀비가 됐으니 복자의 살을 잘라 달라고 요구한다. 연은 그를 내쫓지만, 동철은 금방 돌아와 연을 야구 방망이로 패 기절시킨다. 여자애라 야들야들하겠다는 동철을 보며 복자는 비로소 사람 잡아먹는 좀비의 의미를 깨닫는다. 그러나 복자는 두려움에 마비되지 않고 연을 살리기 위해 움직인다.

복자는 동철에게 연의 고기를 요리해 줄 테니 먹고 가라고 거짓말을 한다. 손녀를 먹일 고기를 구하러 왔다더니, 동철은 요즘 인육을 구워 먹기만 했더니 텁텁하다며 얼큰하게 고깃국으로 끓여 달라고 한다. 동철이 복자의 꾀에 쉽게 걸려든 이유는 어이없게도 그가 “오십 넘은 평생 어머니와 아내가 차려준 밥만 먹었”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도 독자들은 동철이 상대적으로 약한 여성 가족을 이미 죽였기에 요리할 재간이 없었다는 것을 추측해 낸다. 복자는 농약을 넣은 국으로 좀비를 죽이고, 연과 함께 살게 된다. 작품은 연과 복자가 주고받는 애정 어린 온기와 각자의 삶에 들러붙은 광기와 살인의 기억을 교차하며 전개한다.

미역의효능 작가 웹툰 ‘닭은 의외로 위대하다’의 한 장면. ⓒ카카오웹툰
미역의효능 작가 웹툰 ‘닭은 의외로 위대하다’의 한 장면. ⓒ카카오웹툰

이 작품 속 좀비는 독자가 예상하지 못했던 좀비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좀비 남성과 인간 남성의 심리만은 좀비가 무엇인지조차 몰랐던 복자도 순식간에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예측 가능하다. 좀비와 인간을 구별할 수 없다는 바로 그 사실이, 현실 속 가해자들의 서사와 작품 속 가해자들의 서사가 얼마나 닮았는지를 조명하고 있다. 독자들은 작품 초반에 연의 짧은 과거 회상만으로도 연이 성범죄를 겪었을 가능성을 읽었고, 예상은 적중했다. 진부하리만치 비슷한 가해자의 서사는, 작품 안팎의 세계가 모두 다른 사람의 존엄성을 짓밟는 데 있어 구태여 창의적일 필요도 없을 정도로 가해자에게 편리한 사회임을 반증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뻔한 것은 남성 가해자의 서사뿐이다. 가부장제의 피해자이면서 공모자이기도 한 수많은 인간 여성, 좀비 여성의 서사는 곧잘 예상을 비껴간다. 우리는 좀비를 독살하며 해맑게 웃는 복자의 과거를 예측할 수 없다. 수년간 이어진 남편의 외도를 묵인하고 아무 잘못 없는 딸을 죽일 듯이 혐오한 연의 어머니의 본심을 읽어낼 수 없다. 우리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노출되는 폭력을 속속들이 알고 있지만, 그 폭력을 삼키며 또 다른 가해자가 되거나 서서히 미쳐가는 여성들의 서사는 잘 모른다. 다음 이야기를 예측할 만한 데이터가 쌓이지 않았다. 우린 아직 여자들을, 여자들의 생명력과 광기를 잘 모른다. 

미역의효능 작가 웹툰 ‘닭은 의외로 위대하다’의 한 장면. ⓒ카카오웹툰
미역의효능 작가 웹툰 ‘닭은 의외로 위대하다’의 한 장면. ⓒ카카오웹툰

미역의효능 작가는 우리가 아직 잘 모르는 여성 각각의 유일무이한 고통을 적나라하고 담담하게 재현한다. 그의 화풍 역시 현대 웹툰 산업에서 거의 볼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만화에서 선은 인물의 윤곽을 뚜렷이 해 주변으로부터 독립시키기 위해 쓰이지만, 미역의효능 작가의 선은 종이에 떨어트린 먹물처럼 흘러내려 서로 맞닿거나 이어지는 일이 드물다. 띄엄띄엄 떨어져 인물의 형태를 겨우 묘사할 정도인 선화는 인물들의 존재론적 공백과 결여를 시각화한다. 서예 붓으로 휘갈겨 마구잡이로 중첩된 선이 처절하게 붕괴하는 인물의 내면을 그려낼 때는 이토록 힘없는 선으로 이렇게나 강렬한 감정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미역의효능 작가 웹툰 ‘닭은 의외로 위대하다’의 한 장면. ⓒ카카오웹툰
미역의효능 작가 웹툰 ‘닭은 의외로 위대하다’의 한 장면. ⓒ카카오웹툰

환멸을 넘어 환멸을 재현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이때, ‘닭은 의외로 위대하다’를 읽어볼 것을 권한다. 여성살해와 성범죄가 흔하다 못해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탓에, 우리는 아직도 여자들의 고통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작품이 그려내는 여자들의 생명력과 광기를 천천히 따라가면서 우리 역시 저항의 언어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곧잘 흘러내리지만, 한 번 묻으면 지워지지 않는 먹물 같은 언어를.

 

¹ 미역의효능, ‘닭은 의외로 위대하다,’ 카카오웹툰, 2019~. https://webtoon.kakao.com/content/%EB%8B%AD%EC%9D%80-%EC%9D%98%EC%99%B8%EB%A1%9C-%EC%9C%84%EB%8C%80%ED%95%98%EB%8B%A4/1816?tab=episode.

² “8월18일 공원에서 한 여성이 출근길에 살해 당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인하대 성폭력 사건, 신당역 스토킹 사건, 금천구 데이트폭력 사건 등에 이어 이번 사건까지, 여성들이 직장 안에서도, 집 앞에서도, 동네 공원에서도 끝내 죽음을 피하지 못한 사건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 ‘공원 여성살해 사건 피해자 추모 및 여성폭력 방치국가 규탄 긴급행동,’ 한국여성의전화, 2023.08.22 https://hotline.or.kr:41759/board_notice/78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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