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전 서울 남산 ‘기억의 터’에 설치된 ‘대지의 눈’이 파쇄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5일 오전 서울 남산 ‘기억의 터’에 설치된 ‘대지의 눈’이 파쇄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전시 성폭력 피해자인 일본군‘위안부’ 기림의 터에 성추행 가해자인 미술작가의 작품을 존치하는 것이 타당한가? 서울시는 이렇게 질문하며 기억의 터 작품 철거를 강행했다. 그러나 질문 자체가 부적절한 것이었다. 기억의 터를 한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해당 작가가 설계했으나 그의 작품이 아니라 공동작업의 결과물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느낄 수 있다.(공동작업임을 작품에 새기지 않은 오류가 있었다면 그것대로 해결하면 된다.) 그렇기에 시민과 여성단체가 주장하는 철거 반대가 곧 해당 작품의 존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했다.

범죄 전력이 밝혀진 작가의 작품을 두고 철거냐 혹은 존치냐 갈등을 겪는 일은 이전에도 있었다. 우리의 경우, 교과서에 실린 친일 작가의 작품들을 두고 비슷한 논란이 있었고, 최근 몇 년간 성폭력 가해 행위가 드러난 이들의 작품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도 역시 비슷한 고민을 안긴다. 작가의 범죄 행위가 드러날 때마다 작품을 없애버리거나 빼버리는 일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일까?(앞으로도 이와 같은 일은 일어날 텐데). 아니면, 작가와 작품을 별개로 보고 작품은 고유의 평가 잣대로 보는 것이 맞을까? 철거와 존치 외에 다른 방식은 없는 것일까?

기억의 터에 설치된 ‘대지의 눈’에는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인 김복동 할머니의 요청으로 ‘위안부 증언록’에서 발췌한 할머니들의 증언과 위안부 피해자 247명의 명단, 김순덕 할머니의 작품 ‘끌려가는 소녀’가 새겨져있다.  ⓒ이하나 기자
기억의 터에 설치됐다가 파쇄된 ‘대지의 눈’에는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인 김복동 할머니의 요청으로 ‘위안부 증언록’에서 발췌한 할머니들의 증언과 위안부 피해자 247명의 명단, 김순덕 할머니의 작품 ‘끌려가는 소녀’가 새겨져있다. ⓒ이하나 기자

그러다 우연치 않게 독일의 경우를 전해 듣게 되었다. 물론 기억의 터와 상황이 많이 다르지만, 알다시피 나치 전력자 문제가 심각했던 독일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궁금했다.

독일의 한 도시에서 나치 박해 희생자 기념관을 만들면서 그 앞에 조각상을 세웠다. 그러나 그 작가에게는 나치 부역의 전력이 있었다. 후에 이 조각상의 존치 문제가 불거졌을 때, 시는 논쟁 끝에 철거가 아닌 존치(수정된)를 결정했다. 작가와 작품이 별개라고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나치 상황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해서도 아니었다. 이 조각상 자체가 조성 당시의 독일의 기억문화에 대한 증거라고 평가하고 그 자체를 역사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즉, 독일 사회가 처음부터 현재와 같이 나치에 대해 자신들을 가해자로서 성찰하는 문화를 가진 것은 아니어서 1960년대 당시에는 자신들을 나치의 피해자로 보는 경향이 있었고, 이 조각에는 그런 상징들이 담겨있었다. 시는 조각이 만들어질 당시 독일 사회의 기억문화를 역사로 기록하고자 했다. 자신들을 피해자로 상징화한 작품을 그대로 두고 시간이 지나면서 가해자됨을 성찰하게 된 과정을 모두 담아 별도로 몇 개의 현판을 조각상 옆에 설치하는 방식으로 역사화 했다. 보다 철저하게 역사를 기억하고 성찰하고 교육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 시간, 기억의 터 두 개의 작품을 부순 자리에 서울시는 풀을 심고 있다. 그야말로 완벽한 삭제다. 삭제는 덮어버려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이고 거기에는 어떤 기억도 성찰도 교훈도 없다. 일본군‘위안부’의 역사, 세대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여성 폭력의 현실은 삭제되어 사라졌다. 서울시의 방식은 기억의 터를 조성하는 과정에 담긴 성폭력 저항의 역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혹은 안하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추모도 담겨있지 않았다. 서울시의 철거가 조급하고 졸렬한 행정이라고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역사를 기억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할 때다. 

정영훈 (사)한국여성연구소 소장
정영훈 (사)한국여성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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