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지윤 숨 프로젝트 대표
런던-서울 오가며 독립큐레이터로 활약
국립현대미술관 디렉터 거쳐
예술경영인으로 자리매김
“한국-유럽 현대미술 잇는 ‘다리’ 되겠다”

이지윤 숨 프로젝트 대표. ⓒ숨프로젝트 제공
이지윤 숨 프로젝트 대표. ⓒ숨프로젝트 제공

세계적인 현대미술가들이 서울에 왔다. 지난 5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개막한 ‘럭스: 시적 해상도(LUX: Poetic Resolution)’전은 미디어아트 거장 12팀을 한자리에 모았다. 구글 ‘베이뷰 캠퍼스’, 뉴욕 ‘리틀 아일랜드’ 등 창의적인 프로젝트로 주목받는 디자이너이자 건축가, 토마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의 전시도 서울 문화역284에서 진행 중이다.

현대미술 기획사 ‘숨 프로젝트’와 이지윤(53) 대표가 그 뒤에 있다. 한국과 유럽 현대미술을 잇는 다채로운 프로젝트를 발굴·기획해 왔다. 헤더윅이 강원도 양앙 설해원 부지에 짓는 미술관 프로젝트 ‘더 코어’(The core)도 맡아 진행한다.

여성 큐레이터나 갤러리스트는 많지만 문화예술 전문경영인으로 입지를 다진 여성은 드물다. “좋아하는 큐레이터 일을 오래오래 하고 싶어서 회사를 차렸다”는 이 대표를 지난달 31일 DDP에서 만났다.

9월6일까지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리는 ‘헤더윅 스튜디오: 감성을 빚다’ 전시 전경. ⓒ숨프로젝트 제공
9월6일까지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리는 ‘헤더윅 스튜디오: 감성을 빚다’ 전시 전경. ⓒ숨프로젝트 제공
12월31일까지 DDP뮤지엄 전시2관과 일부 디자인 둘레길에서 열리는 ‘럭스: 시적 해상도(LUX: Poetic Resolution)’전에서 만날 수 있는 카스텐 니콜라이의 유니컬러(Unicolor), 2014. ⓒ숨프로젝트 제공
12월31일까지 DDP뮤지엄 전시2관과 일부 디자인 둘레길에서 열리는 ‘럭스: 시적 해상도(LUX: Poetic Resolution)’전에서 만날 수 있는 카스텐 니콜라이의 유니컬러(Unicolor), 2014. ⓒ숨프로젝트 제공

이 대표는 본래 독립큐레이터였다. 연세대 불문과, 영국 골드스미스대 미술사 석사, 시티대 미술관·박물관 경영학 석사, 코토드미술사대 박사학위를 마치고 런던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했다. 런던 대영박물관 내 한국관(2000년 개관) 설립을 시작으로, 2005년 덴마크 ‘Seoul Until Now’, 2008년 런던 한국문화원 개관 기념전 ‘굿모닝 미스터 백남준’,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 김아타 특별전, 2010년 런던 사치 갤러리 ‘Korean Eye’, 2021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불가리 컬러(BVLGARI COLORS)’ 등 굵직한 전시를 기획했다. 2014년~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디렉터(부관장)로 일하며 국내외 예술계 안팎의 인맥을 다졌다.

“한국과 유럽의 현대미술 간 ‘다리’가 되자, 그래서 예술을 넓은 세상에서 숨 쉬게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돈 벌려고 시작한 일은 아니고요. 좋아하는 큐레이터 일을 오래, 꾸준히 하고 싶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전시를 직접 기획하고 싶었죠. 대형 기획사에 비하면 작지만 중요한 개념과 방향을 제시하는 전시, 인건비와 저작권도 얻을 수 있는 전시를 만들며 전문가로 나아가고 싶어요.”

이 대표를 포함해 임직원은 총 10명, 소수정예로 돌아가는 회사다. 모두 여성이다. “예술적 감수성, 공감 능력이 중요해요. 아티스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잘 듣고 소통할 수 있는 자질이요. 여성이 잘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기업이 사회공헌 차원에서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메세나’는 옛말이다. 요즘 기업들은 더 적극적인 문화마케팅을 통해 브랜드 가치와 인지도를 높이려 힘쓴다. ‘ESG 경영’ 시대의 자연스러운 변화다. 비영리 연구소로 출발했던 ‘숨 프로젝트’도 2020년부터 국내외 기업·기관과 문화예술 기획·마케팅 협업, 컨설팅 등에 힘쓰고 있다.

이 대표는 차세대 미술경영인을 육성하기 위한 숨아카데미 프로그램도 이화여대와 연세대에서 각각 14년, 17년간 진행했다. 2011년부터 10년간 연세대 경영대학 겸임교수를 맡아 ‘창조산업과 예술경영’, ‘세계 유럽경영연구’ 등 강의를 했다. 2021년부터는 예술을 사랑하는 기업인, 개인 등 50명을 대상으로 매년 1회씩 강의를 하고 있다.

오는 10월 큐레이터이자 경영인의 경험과 통찰을 담은 책 ‘순수한 예술이란 없다’(가제)를 펴낼 예정이다. “서양미술사를 들여다보면 작가-갤러리-미술관-컬렉터로 이어지는 ‘미술 생태계’가 보여요. 르네상스 초기의 미술시장부터 현대 ‘딜러 열전’까지 살펴보면서 오늘날의 미술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등학생도 재미있게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어요.”

이지윤 숨 프로젝트 대표. ⓒ숨 프로젝트 제공
이지윤 숨 프로젝트 대표. ⓒ숨 프로젝트 제공

세계적인 아트페어 ‘프리즈’(Frieze) 유치 이후 한국은 ‘핫한’ 미술시장으로 떠올랐지만, 정작 국내 미술품 투자 심리는 얼어붙고 있다. 이 대표의 지적대로 “단색화만 뜨지, 젊은 한국 현대미술 작가들에 관심을 갖고 투자하려는 이들은 없다.” 그는 “한국 미술계가 글로벌 미술 생태계를 이해하고 적극 협업할 때 한국 미술시장은 더 높이 도약할 수 있다”고 봤다.

“좋은 작가를 키우려면 시장의 특성을 알아야 해요. 갤러리에서 좋은 작품을 모아 전시하고 판매하는 단계를 넘어서, 어떤 컬렉터에게 이 작가를 연결해야 하는지, 어떤 미술관에서 전시를 열어야 하는지까지 알고 지원해야 하는 거죠. 적극적으로 작가를 발굴하고, 연구하는 건 기본이고요. 또 해외 갤러리들과도 ‘너희 작가들을 우리가 한국에 소개하면 너희도 한국 작가들을 소개해 달라’는 식으로 협업해야 한다고 봐요.”

미술 투자에 관심 있는 젊은 세대에는 “주식도 어릴 때부터 해봐야 잘 안다. 미술 투자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예술 관련 일을 하거나 투자를 할 때는 반드시 전문가들과 함께해야 한다. 돈만 벌려고 해서 잘되는 사람은 못 봤다. 예술로 큰돈 번 사람들의 공통점은 정말 예술을 좋아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디어아트 거장 다 모였네...‘럭스: 시적 해상도(LUX: Poetic Resolution)’전

현대미술의 중요한 재료(미디움)으로 실험해 온 작가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전시다. 2021년 숨프로젝트가 런던에서 연 첫 전시에 이은 두 번째 해외 순회전으로, 당시 주요 작가 5인에 새로운 작가 7팀을 초청해 새롭게 꾸몄다.

라인업이 화려하다. ‘미디어아트의 아버지’ 카스텐 니콜라이(Carsten Nicolai)의 대표작 ‘유니컬러(Unicolor, 2014)’는 폭 20m에 달하는 강렬한 대형 영상 작업이다. 생명체의 움직임을 공학적으로 재해석한 네덜란드 팀 드리프트(DRIFT)는 16개 키네틱 꽃으로 구성된 ‘메도우(Meadow, 2020)’를 선보인다.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로비 천장에 설치된 그 작품이다. 사람의 움직임에 반응해 벌어졌다 오므라드는 모습이 해파리, 우산 같기도 하다.

드리프트, 메도우(Meadow), 2020. ⓒ숨프로젝트 제공
드리프트, 메도우(Meadow), 2020. ⓒ숨프로젝트 제공
유니버설 에브리씽, 트랜스피규레이션(Transfiguration). ⓒ숨프로젝트 제공
유니버설 에브리씽, 트랜스피규레이션(Transfiguration). ⓒ숨프로젝트 제공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 개막식을 빛낸 중국계 미디어 아티스트 카오 유시(Cao Yuxi)의 ‘AI 산수화(Shanshui by AI, 2022)’도 8폭 병풍 버전으로 만날 수 있다. 2021년 DDP 서울라이트(SEOUL LIGHT) 전시로 주목받은 박제성 서울대 교수의 ‘유니버스(Universe, 2019)’도 관람객을 기다린다. 이외에도 대자연의 신비로움과 웅장함을 영상으로 전달하는 런던 기반의 아티스트 팀 마시멜로 레이저 피스트(Marshmallow Laser Feast), 다양한 인터랙티브 작품으로 모든 연령층의 관심을 끄는 유니버설 에브리씽(Universal Everything) 등의 대규모 시청각 설치 작품 총 16점을 볼 수 있다.

“현대미술 큐레이터의 중요한 역할은 오늘날의 미술, 앞으로 만들어져야 할 미술을 먼저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미디어아트는 이미 시작된 미래의 작품들이지요. 이번 전시에서 선보일 작품들은 이 시대의 해상도(resolution)와 주파수(frequency)가 만들어 내는 한 편의 시라고 봅니다. 우리 시대의 새로운 재료로 만들어진 미술작품을 통해 예술이 주는 종교적인 장엄함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이 대표는 “멋진 ‘K건축’의 시대를 기대하며 헤더윅 전시를 기획했다면, 다음 세대의 작가들이 세계 최고 미디어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보고 좋은 작품과 전시를 만들길 바라며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고 했다.

다음 순회전에선 한국의 유망한 미디어 아티스트들을 더 많이 소개할 계획이다. 한국·영국 작가로 구성된 미디어아티스트 그룹 ‘김치앤칩스’(Kimchi and Chips), 한국 작가 최초로 영국 빅토리아앤드앨버트미술관(V&A) 레지던시 작가로 선정된 강이연 등에도 러브콜을 보냈다. “수준 높은, 아주 단단한 개념과 기술을 겸비한 중요한 작가들이죠.” 전시는 12월31일까지 DDP뮤지엄 전시2관과 일부 디자인 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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