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여성 대상 범죄 감형 논란
여성 의결권 묵살한 YMCA에 ‘헌법 위반 아냐’ 옹호
스토킹 살해 유족 국가배상금 청구소송에 ‘패소’ 판결
성범죄 가해자들에 ‘젊어서·성실해서’ 줄줄이 감형
여성계 “여성인권 퇴보시켜온 이균용 후보지명 철회해야”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1일 서울 서초구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1일 서울 서초구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오는 19일 인사청문회를 앞둔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판결에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성평등걸림돌’로 뽑힌 서울기독청년회(YMCA)를 옹호하는 판결부터 강간·음란물 제작·가정폭력 등 다수의 여성 대상 범죄에서 감형을 선고한 전적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신임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된 이균용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 후 30년 넘게 판사 생활을 해왔다. 윤석열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1년 후배이자 법원 내 엘리트 법관 모임인 민사판례연구회 출신이기도 하다. 이 후보자는 보수 법관으로 분류돼 그가 대법원장을 맡을 경우 ‘대법원의 보수화’가 가속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여성 의결권 묵살하는 단체에 ‘헌법 위반 아냐’ 옹호

1903년 창설 이후 서울YMCA 여성회원들은 100년 넘도록 단 1명도 총회원으로 선정되지 못했다. 이에 2003년 여성회원들은 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총회원으로 받아들여달라는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서울YMCA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여성회원들은 2005년 헌법 11조(성차별 금지)를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같은해 한국여성단체연합은 YMCA 이사진을 성평등 걸림돌로 선정하기도 했다.

2007년 재판부는 여성회원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여성회원들의 총회의결권이 박탈되는 것은 허용되지 않지만 헌법 11조가 사인 간 단체 내부관계에는 직접 적용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방법원 1심 재판부의 재판장이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당시 부장판사)였다.

해당 판결은 2년 뒤 항소심에서 파기됐다. 판결 이후 2010년 107차 서울YMCA 정기총회에서 여성도 총회원으로 인정받게 됐다. 서울YMCA는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으나, 2011년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며 여성회원들의 손을 다시금 들어줬다.

스토킹 살해 유족 국가배상금 청구소송에 ‘패소’ 판결

이 후보자는 2007년 서울중앙지방법원 재직 당시 스토킹 살인 피해자 유족들이 사건 당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의 조치가 미흡했다며 제기한 국가배상금 청구소송을 패소로 판결했다.

해당 사건은 경찰이 '계단에서 갑자기 여자가 살려달라 소리를 지르고 남자가 여자를 때리면서 끌고 들어갔다'라는 내용의 신고를 받아 출동했으나, '범죄 정황이 없고, 안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판단해 현장 진입을 거절한 사건이다.

그동안 가해자는 피해자를 흉기로 찌른 뒤 자살을 시도하며 가족에게 연락했고, 현장에 도착한 그의 가족들은 112와 119에 '자살기도자가 있다'고 신고했다. 현장에 도착한 119구급대가 창문을 열어 내부로 들어갔을 때 피해자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당시 이 후보자는 "범죄 정황을 확인하지 못하자 현장을 떠난 것이 최선의 조치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경찰이 범죄가 저질러진 주거에 강제로 진입해 범죄를 예방하지 못한 것이 현저하게 불합리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패소 판결 이유를 밝혔다.

반면, 1년 뒤 항소심 재판부는 1심을 파기하고 유족들의 손을 들었다. 당시 신고 내용과 현장 상황 등을 볼 때 성폭행 등이 일어날 가능성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고, 가해자의 전력 등을 볼 때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2009년 대법원 역시 2심 판결을 확정하며 이 후보자의 판결은 무효가 됐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성범죄 가해자들에 ‘젊어서·성실해서’ 줄줄이 감형

이 후보자는 서울고등법원에서 부장판사로 재직하면서 “젊어서”, “성실해서”, “뉘우치고 있어서”등의 이유로 성범죄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을 감경해 준 사실이 다수 발견됐다.

2019년 이 후보자가 재판장을 맡은 재판부는 출장 마사지를 나온 여성들에게 마약과 수면제가 섞인 커피 등을 먹여 정신을 잃게 한 후 수차례 금품을 갈취한 남성에 “알콜 사용 장애가 있고, 진지한 반성을 하고 있다”며 징역 5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3년형을 선고했다.

또한 2020년 같은 버스에 탄 여성의 아파트까지 쫓아가 강제추행한 남성에 “성실하게 회사생활하고 일하는 와중에 대학에 입학했다"며 징역 1년 3개월 실형을 선고한 1심의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1년 3개월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했다.

같은해 평소 가정폭력을 일삼다 아내의 배를 여러 차례 발로 밟아 사망하게 해 살인 혐의로 기소된 남편에게는 징역 10년을 선고한 1심 판결을 깨고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아내를 죽여버리겠다, 이것 좀 죽여 놓고’라는 취지의 발언이 고의로 살인했다는 징표로 볼 수 없어 살인이 아닌 상해치사 혐의만을 인정한 까닭이다.

2021년에도 이별을 요구한 여성을 폭행하고 강간한 남성에 “피해자의 상처가 중하지 않다”며 징역 7년형을 선고한 1심의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5년형을 선고했다. 검찰의 전자발찌 청구도 “피고인이 대학에 재학중이고 저축하는 등 장래를 준비하고 있다”며 기각했다.

이 후보자는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들에도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며 관대한 태도를 유지했다.

이 후보자가 재판장을 맡은 재판부가 2020년~2021년 선고한 아동·청소년 대상 음란물 제작 및 성적 학대 행위 등 판결문을 보면, 범죄의 심각성을 인정하면서도 “제 3자에게 영상이 유출되지 않았다”, “범행을 깊이 뉘우치고 있다” 등의 이유로 1심보다 형량을 낮춘 판결이 다수 존재했다.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12살 피해자를 세 차례 성폭행하고 가학적인 성행위를 한 20대 남성에게는 “20대의 비교적 젊은 나이고 전자발찌를 착용하게 된다”며 징역 10년형을 7년형으로 줄였다.

여성계 “여성인권 퇴보시켜온 이균용 후보지명 철회해야”

이 후보자가 여성 대상 범죄 가해자들에 관대한 태도를 보여온 이력이 밝혀지자 지난달 30일 50여개 여성단체는 성명서를 내고 “윤석열 대통령은 대법원장 후보자를 다시 지명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이 후보자는 그간 여성폭력 사건 가해자를 엄중히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형하고, 여성 인권을 퇴보시키는 행보를 보여왔다”며 “윤 대통령이 밝힌 ‘현대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이해관계를 조화롭게 포용하고 조정할 수 있는 리더십과 추진력을 겸비하고 있어 차기 대법원장으로서 더 없는 적임자’라고 할 수 있는지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간 대법원은 여러 성범죄 사건에서 과거와는 다른 관점의 판결로 변화의 단초를 제공한 바 있다“며 ”재판 과정에서 성차별을 외면하고,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등 여성인권을 퇴행시키는 판결을 해온 이 후보자가 대법원의 수장이 된다면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대법원장에게 성평등을 위한 사회적 책임을 다할 의무가 있음을 잊지 말고 제대로 된 후보자를 다시 지명하라. 또한 국회는 적절한 후보자가 그 소임을 맡을 수 있도록 책임을 다하라”고 강조했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아직까지 성범죄 사건에서 판사의 재량에 따라 유죄 여부와 형량이 엇갈리고 있다. 재판부의 성인지감수성이 지금보다 더 발전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기준을 정립하는 대법원의 역할은 무척 중요하다”며 “그러나 이 후보자가 쌓아온 판례를 보면 대법원의 성인지감수성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한편, 과거 판결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자 이 후보자는 '양형요인을 신중히 고려한 결과이며, 성범죄 사건에서 형량을 높이기도 했다'는 입장이다. 인사청문회는 오는 19일~20일 열릴 예정이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