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전통시장에서 한 시민이 달걀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서울 시내의 한 전통시장에서 한 시민이 달걀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누구에게나 기억으로 찾는 맛이 있다.

겨울날 조개탄 난로에 데워먹던 도시락이 그럴까? 기억으로는 3교시쯤 난로 주변에 도시락이 쌓이고 교대로 난로 위에 도시락을 올려놓고 데웠다. 양은도시락 안에 김치와 밥, 참기름이 들어있기에 고소한 냄새가 교실 가득 번져 수업은 엉망이고 머릿속엔 어서 점심시간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마침내 점심시간, 제 도시락을 찾아 숟가락으로 뒤섞으며 먹는 맛이란.

몇 해 전, 가족과 함께 가평 남이섬에 갔을 때 어느 식당에선가 양은도시락을 팔았다. 난 아내를 졸라 기어이 도시락 두 개를 주문해 나눠 먹었는데 기억 속의 그 맛은 아니었다. 심지어 아이들은 이게 무슨 맛이냐며 옆 가게 소시지를 기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싸구려 소시지 반찬도 있다. 분홍색 소시지에 계란옷을 입혀 기름에 튀겨낸 반찬은 당시의 빈부를 나누는 척도에 가까웠다. 소시지 반찬을 싸 온 친구들은 있는 집, 침만 흘리며 부러워하는 우리들은 없는 집.

오래전 나도 몇 차례 커다란 분홍소시지를 사봤다. 그 옛날의 밀가루 함량이 많은 싸구려가 아니라 꽤나 고급 소시지이건만 그 시절 친구한테 한 입 얻어먹었을 때의 감흥은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더이상은 소시지에 눈길을 주지 않는데 아무래도 내가 그리워한 것은 기억이지 맛이 아닌 탓이었으리라.

그중 제일 기억나는 음식이 날달걀비빔밥이다. 비빔밥이라지만 그저 더운 밥 위에 날달걀과 간장 한 스푼 넣고 비비는데 불과하다. 내 나이 다섯 살에 어머니가 집을 나간 후 어린 동생들을 돌보던 누이가 자주 해주던 음식이었다. 시골이라 다들 닭을 키웠기에 달걀 구하기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프라이가 아니라 날달걀인 이유는, 식용유든 돼지기름이든 당시 중학생이던 누이에게는 사기도 다루기도 만만치 않았을 듯싶다.

서른 즈음 제주도에서 혼자 살면서 제일 많이 해먹은 요리도 날달걀비빔밥이다. 날달걀비빔밥은 당시의 내게 제일 값싸고 제일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이었다. 큰돈도 필요 없고 요리 솜씨도 필요 없다. 날달걀이기에 밥맛 없을 때는 목 넘김도 좋았다. 하기야 장돌뱅이처럼 떠돌던 시절이었으니 밥인들 제대로 넘어갔으랴.

오래전 아내와 아이들한테 똑같이 해줬더니 느끼하고 끈적여 싫다며 계란프라이로 해달라고 했다.

“맛있는 음식에는 노동의 땀과, 나누어 먹는 즐거움의 활기, 오래 살던 땅, 죽을 때까지 언제나 함께 사는 식구, 낯설고 이질적인 것과의 화해와 만남, 사랑하는 사람과 보낸 며칠,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궁핍과 모자람이라는 조건이 들어 있으며, 그것이 맛의 기억을 최상으로 만든다.” 황석영 작가의 말이다.

날달걀비빔밥은 그러니까 내 “궁핍과 모자람”의 상징인 셈이다. 난 지금도 종종 날계란비빔밥을 만들어먹는다. 안 하는 요리는 있어도 못 하는 요리는 없다고 큰소리치는 요즘이지만 기억의 맛은 어느 산해진미보다 유혹이 강하다.

역시나 양은도시락이나 밀가루소시지처럼 기억의 맛이겠지만 그런 메뉴와 달리 이 음식만큼은 당시의 맛을 그대로 재현해준다. 그 음식으로 소환해야 할 기억이 가난, 외로움밖에 없어서일까? 지금도 그때처럼 나 혼자만 먹어야 하는 음식이어서?

아내와 아이들이 싫어하는 게 어쩌면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그들에게 외롭고 가난한 기억이 없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조영학/ 번역가, 『상차리는 남자! 상남자!』 저자
조영학/ 번역가, 『상차리는 남자! 상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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