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하진순 작가 ‘작은 그림 전시회’를 다녀와서

몸꿈춤공간 미류 대표 이미숙 박사의 어머니가 작품 전시회를 연다는 소식이 들렸다. 할머니들이 그림을 그린다는 이야기는 종종 들어봤어도 단독 전시회는 쉽지 않다. 무조건 축하해야겠다고 단숨에 달려갔다. 전시회를 했으니 어머니를 하진순 화가라고 불러야겠다.

가부장제 사회는 특히 나이든 여자에 대해 부정적이다. 필자가 2016년에 만났던 철학자 로빈왕(Robin Wang)은 말했다. ‘지금 세계적으로 K드라마가 퍼져가고 있다. 드라마속의 시어머니에 대한 묘사는 너무 끔찍하고 젊은 여자는 모두 예쁘게만 나온다’ 물론 직접 만나보니 한국 여자들이 용감하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 말이다. 그러나 그의 지적이 틀린 것은 아니다. 나이든 여자는 두 가지로 묘사된다. 호랑이처럼 무섭거나 불쌍하거나. 성차별과 나이차별이 교차하며 할머니들을 전형성에 가둔 것이다.

하진순 작가의 ‘작은 그림 전시회’ 홍보 포스터 앞에 선 이미숙 박사. ⓒ최형미
하진순 작가의 ‘작은 그림 전시회’ 홍보 포스터 앞에 선 이미숙 박사. ⓒ최형미

꿈을 꾸고 꿈을 실천한 여자, 하진순

올해 나이 85세인 하진순의 삶을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역경을 극복한 인간 승리 이야기 아니다. 그게 무슨 돈이 되냐고 사람들이 조롱할 때, 늦어 공부하며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는 쓴소리를 내는 세상에 저항하며 다른 꿈을 꾼 여자의 이야기다.

가난한 나라에서 여자들이 영양실조에 먼저 걸린다. 좋은 건 남겨뒀다가 남자들 상에 오른다. 교육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진순은 우리 부모님 세대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 못 한 그는 한탄만 하고 살지 않았다. 공부하고 싶어서 달리는 차 뒤에 매달려 야학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 가서도 창밖에서 수업을 들어야 했다. 그에게 사회는 어떤 길도 열어주지 않았다.

부지런한 남자와 결혼해 함께 가게와 농장을 운영했다. 농사일은 손 가는 만큼 소출이 나오니 일이 끊이지 않았고 가게 정리며 일들로 젊은 하진순은은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아이가 넷이나 있으니, 꿈은 사치이고 아이들 잘되는 것만 바라는 여자로 살아갈 운명이었다. 하진순은 아이들이 입시에 정신이 없을 때 자신의 공부를 시작했다. 주변의 비난은 보이지 않아도 본 듯하다.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른다고 찔러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초등학교 검정고시, 중학교 검정고시,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해 갔다. 이미숙 박사가 영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것도 이 시기인 것 같다. 그는 아이들에게 잔소리하기보다 자신의 길을 간 것이다. 그리고 예순이 되어 남서울 대학에 들어가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이후 대학원 과정까지 마쳐 석사학위까지 취득했다. 그때 그의 나이 74세였다.

가족들

공부는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서적 안정과 경제적 기반이 될 수 있는 주변의 양보와 도움이 필수적이다. 열심은 물론이고 집중과 창의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총명하고 든든했던 맏딸이 28살에 유방암 판정을 받고 3일 만에 유방제거 수술을 받았다. 이미숙 박사의 이야기다. 자식보다 더 아픈 것이 부모 마음이었을 텐데. 두려움에 흔들렸을 텐데, 그는 길을 찾아 나섰다. 근심에 묶이지 않고 함께 공부하는 것을 선택했다. 전시실에서 만난 아버지는 그때의 어머니를 기억했다. “남들은 일하고 지쳐 쓰러졌을 텐데 아내는 학교로 달려갔어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 지금이야 그렇게 말했지만 얼마나 갈등이 많았었을까? 그러는 과정에 그가 아끼고 사랑한 맏딸은 영문학 박사가 되었다. 함께 걷는 엄마의 발소리를 들으며 견뎠던 시간이었으리라. 하진순은 석사를 따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후 미술치료사 2급 자격증, 사회복지사, 그리고 한자 3급을 따며 배움을 이어갔다.

그림 그리는 하진순

자식들은 공부하던 엄마의 모습을 기억했다. ‘엄마의 팔에는 항상 뭔가 잔뜩 쓰여 있었어요. 팔에 한자를 써서 외웠던 거지요. 화장실에는 꼼꼼하게 영어를 써서 붙여놓고 공부했어요.’ 그렇게 바쁘게 살면서 어떻게 시간을 내서 그림전시회까지 하게 되었을까? 하진순은 대학교 때 미술반 동아리에 들어가 활동을 했다. 까마득하게 어린 청년들 사이에서 그림을 그리는데 선생님이 칭찬하셨단다. 그의 그림에는 그의 어린 날의 모습이 있다. 민속 그림, 다림질하는 모습, 방망이질하는 모습, 약탕기 끓이는 그림, 물레질하는 모습, 명절날 전 부치기, 널뛰기…. 배움에 갈증 내며 달리며 살아온 그가 그리워한 풍경이다.

음악가는 귀가 좋아야 한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사물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 하진순은 그림을 그리면 그릴수록 관찰력이 좋아졌다. 사람들의 표정을 그리려고 몰입했다. 그 몰입은 세상만사 걱정에서 벗어나는 구도의 길과 같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또 다른 전략이었다.

이미숙 박사는 특히 어머니의 그림 중에 호랑이가 빨간 혀를 내밀고 개울물을 마시는 그림을 설명했다. “엄마는 이 그림을 통해서 배움에 대한 갈증과 열망을 표현했어요.” 하진순 화가는 스스로 노력파라고 말한다. 꿈을 그저 꿈으로 남겨두지 않고 짬을 내고 시간을 내서 어려움을 헤쳐나간 것이다. 그림을 완성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힘든 세상을 살아온 그는 자신의 인생을 완성하듯 그림을 완성해온 것이다. 

하진순 화가의 가족 ⓒ최형미
하진순 화가의 가족 ⓒ최형미

“10년 뒤에 한번 전시회 열자구요”

처음 전시회를 하자고 제안했을 때 하진순 화가는 마다했다. 그게 뭐 사람들에게 보여줄 만한 것이겠냐고. 하지만 그럼 액자는 어디서 구하나? 물었단다. 세상을 향해 힘껏 발을 내밀었던 그는 늘 그렇게 용감했다. 그림 속에는 하진순화가의 절망도 있고, 울음도 있고, 욕망도 있고, 다짐도 있고, 그리움도 있고 하진순화가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전시회가 열린 곳은 작은 사무실이다. 두 딸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사무실을 정리하며 의미 있는 일을 벌인 것이다. 자식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더 생생하고 어머니의 의미를 세상에 알라고 그들의 마음에 새길 것이다. “어머니 10년 뒤에 한 번 더 전시회 열어요.” 삶을 예술로 가꿔온 어머니를 응원하는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진순 화가는 야수파 마티스의 아네모네의 자주빛 드레스를 모작했다. 그 내면의 야성이 느껴진다.  ⓒ최형미
하진순 화가는 야수파 마티스의 아네모네의 자주빛 드레스를 모작했다. 그 내면의 야성이 느껴진다. ⓒ최형미
빨간 혀로 개울물을 마시는 호랑이는 공부에 대한 하진순 화가의 열정을 보여준다. ⓒ최형미
빨간 혀로 개울물을 마시는 호랑이는 공부에 대한 하진순 화가의 열정을 보여준다. ⓒ최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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