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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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누구나 유행가 한 구절처럼 도시의 답답한 콘크리트 공간을 벗어나 멋진 곳에서 살고 싶은 소망이 있을 것이다. 천편일률적인 성냥갑 아파트보다는 좀 더 개성 있는 나만의 집을 갖고 싶을 것이다. 은퇴 시점이 다가올수록 긴장된 도시를 떠나 자연과 벗하며 전원의 삶을 누리는 공간 이동을 꿈꾼다. 일부 용기 있는 사람들은 ‘언덕 위의 하얀 집’ 꿈을 이루기 위해 행동으로 옮긴다. 그러나 대부분은 체념한 채 도시 아파트에서 그냥 하루하루를 산다.

은퇴자들은 조용한 단독주택이나 전원주택으로 이주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한 연구 조사 결과를 보면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 중에 은퇴자들(48%)이 가장 많고, 다른 지역으로 거처를 옮길 때 고르는 주택 유형도 주로 아파트다. 아파트살이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내의 반대가 큰 요인이다. 전원주택살이는 ‘주부의 동선이 짧아지는 주거 역사’의 흐름에 역행하기 때문이다. 전원주택에서 살면 쇼핑도 너무 힘든 데다 수다를 떨 이웃이 없어 여성들이 꺼린다. 사실 전원주택살이는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부의 노동을 대가로 나머지 가족이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전원주택에서는 자연과 맞부딪혀 살아야 하는 만큼 집주인의 잔손이 많이 간다. 아파트에서는 관리사무소나 경비 아저씨들이 잡일을 대신 처리해 주지만, 전원주택에서는 그 일을 집주인이 직접 해야 한다. 눈이 오면 주인이 직접 치워야 한다. 그만큼 집을 유지하는 데 시간과 노력이 더 많이 들어간다. 집주인을 대신해 주택을 관리해 주는 주택임대관리회사가 우리나라에서는 활성화되지 않은 것도 아파트 문화 때문이다. 단독주택은 집주인이 부지런해야 살 수 있지만, 아파트는 게을러도 살 수 있는 공간이다.

물론 남자가 먼저 주도적으로 집안 살림을 분담한다면 여성의 노동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남자들이 어디 그런가. 한두 번 집안일을 도와주곤 일을 전부 다 한 것처럼 으스대는 게 남자다. 한 인터넷 쇼핑몰의 공구(工具) 구매 고객 중 여성 비율은 높게는 36%에 달한다. 만약 남자들이 집안일을 열심히 한다면 전동 드릴 구매 고객 중 여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한 잡지에서 땅콩주택을 지어 전원생활을 하는 부부의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주부는 남편의 게으름과 무관심에 불만을 털어놨다.

“이곳으로 이사만 오면 뭐든지 다 해주겠다더니 전등 하나 갈지 않아요.”

대체로 전원주택은 천장이 높아 사다리를 놓고 전등을 갈아야 한다. 이런 일은 남편이 해야 하지만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고 푸념하는 것이다. 주위를 보면 전원생활을 시작한 남자들은 텃밭을 가꿀 때 처음에는 열성적이다. 막 시작한 텃밭 가꾸기는 취미이자 소일거리이기에 기쁨을 맛본다. 씨를 뿌려 싹이 트면 녹색과 생명의 신비에 감탄한다.

하지만 3~6개월을 기점으로 상당한 변화가 일어난다. 소일거리가 아니라 노동으로 바뀌는 시점이다. 이때쯤이면 호밋자루가 남자에게서 여자로 넘어간다. 전원생활로 옮기기 전 많은 남자가 텃밭 가꾸기의 환상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본다. 그 사람들에게 “텃밭을 제대로 가꾸려면 100평만 넘어도 경운기를 사야 한다”라고 말하면 깜짝 놀란다. 그 넓은 논밭을 다 삽이나 괭이로 일굴 수 없는 노릇이다.

많은 남자가 구름 위의 꿈과 냉엄한 현실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 전원주택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남자들이 꿈에서나 그리는 삶의 로망일 뿐이다. 전원주택 생활을 결심했다면 반드시 아내의 동의를 받고 가사노동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 체크리스트를 작성하라. 그러지 않으면 전원주택 생활은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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