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여성살해 사건’ 이후 대책은?]
​​​​​​​흉기 사고 여성 타깃 계획범죄
젠더 기반 여성폭력 대응 중요
정치인들, 차별‧혐오 제재하는
‘사회적 메시지’ 내놔야

사건이 발생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 생태공원 둘레길에는 사망한 피해자를 기리는 꽃과 편지가 나무에 걸려 있다. 편지에는 “항상 행복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좋은 일만 가득하길”, “기억할게”, “거기선 아프지 말고 행복하세요” 등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박상혁 기자
사건이 발생한 서울 관악구 생태공원 둘레길에는 사망한 피해자를 기리는 꽃과 편지가 나무에 걸려 있다. 편지에는 “항상 행복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좋은 일만 가득하길”, “기억할게”, “거기선 아프지 말고 행복하세요” 등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박상혁 기자

또 다시 한 여성이 살해당했다. 서울 관악구 한 공원에서 16일 발생한 성폭행 사건 피해자가 이틀 뒤 끝내 사망했다. 평일 대낮에 동네 공원에서 벌어진 이번 사건에 여성들은 “누구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며 불안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은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고 분석했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정부의 기조 아래 정책에서 ‘여성’과 ‘성평등’이 삭제되고, ‘여성안심귀갓길 폐지’를 구의원의 성과로 내세우는 분위기가 정부의 젠더 기반 여성폭력 대응에 공백을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공원 여성살해 사건은 철저한 계획범죄다. 피의자 최윤종(30)은 지난 4월 범행을 위해 금속 재질 흉기인 너클을 미리 구매했다. 범행 수일 전부터 휴대전화로 인터넷 포털에서 '강간'을 여러 차례 검색했고, 범행 현장에 폐쇄회로(CC)TV가 없는 점을 노렸다. 범행 당일에는 오전 9시55분 서울 금천구 독산동 집에서 나온 뒤 걸어서 오전 11시쯤 신림동 공원 둘레길 입구에 도착했다. 1시간가량 둘레길을 걸으며 불특정 여성을 기다리며 범행 대상을 물색한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강간을 하고 싶어 범행했다”고도 했다. 성폭행을 하기 위해 여성을 타깃 삼고 흉기까지 구입한 전형적인 젠더 기반 여성폭력이다.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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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이어 흉악범죄가 발생하자 정부는 당정 협의와 대국민담화를 통해 대응하고 있다. 23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발표한 대책에는 의무경찰(의경) 부활, 가석방 허용하지 않는 무기형 도입, 사법인원제 도입 검토 등이 담겼다. 공원 여성살해 사건 관련한 대책은 빠져 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 사건은 최근의 흉악범죄보다는 ‘부산 돌려차기 사건’과 더 비슷하다”고 봤다. 돌려차기 사건 피의자는 피해자가 의식을 잃을 정도로 폭력을 행사했고, 경찰에 붙잡히자 ‘강간하려고 했는데 실패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교수는 공원 여성살해 사건을 “일종의 ‘추종범죄’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신 교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사적인 원한과 폭력 행사가 정당화되고 있다”며 “정부도 ‘여성가족부 폐지’ 등 발언으로 여성혐오를 조장했다는 점에서는 한 몫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관할 구의회 의원은 ‘여성안심귀갓길 폐지’를 성과로 내세운다. 이는 직간접적으로 여성을 더 불안하게 만들고, 일상생활을 위축시켜 삶의 질을 떨어지는 데 영향을 준다”면서 “게다가 해당 발언은 이런 범죄를 공식적인 담론 영역에서 정당화하는 것과 다름없다. 온라인에서 끝날 얘기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다른 남성들의 이성을 흐리게 하는 것으로 매우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무차별 폭력에 대해 공통 원인을 조사하고 대책을 마련하고, 정부는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새로운 유형의 범죄에 대해 적절한 대응책을 만들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특히 구의원 등 정치인들은 자신의 혐오나 차별 발언이 사회를 얼마나 위태롭게 만들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여성 혐오를 부추기는 정치인과 그것을 이용해 이익을 창출하는 집단이 등장하면서 여성 혐오적 사회적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정숙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발생하는 여성 대상 범죄들은 여성에 대한 혐오와 분노감이 있고, 여성이 자신(남성)을 거부하는 것에 대해 적개심을 가져 벌어졌다”고 했다. 또 “신림역 사건 피의자인 조선은 타깃으로 남성을 골랐지만 흉기난동의 절대 다수 피해자는 여성”이라며 “여성을 왜곡하는 분위기가 있고 그런 분위기를 온라인 커뮤니티 에서 공유하고, 정치적 의제로 표출되는 상황에서는 젊은 여성이 범죄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윤 선임연구위원은 “범죄 예방을 위해서는 이런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사회적 메시지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통합의 메시지를 논할 단계를 넘어 여성 혐오를 부추기는 정치인이 등장했고, 그것을 어젠다로 이용해 이익을 창출하는 집단이 생겼다.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도 ‘사회적 메시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소장은 “시민들 사이에 ‘안전망이 없어진다’는 불안감이 생기면 이런 범죄는 ‘효능감’이 더 커진다”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손쉽게 범행 대상이 되는 계층에 더 많은 안전망이나 유대를 부여하고, 사회가 ‘이런 기획은 모두가 환영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줘서 다른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정부 정책은 이런 사회적 메시지 대신 강력한 처벌에만 집중돼 있다는 지적이다.

이나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에 대해 “‘강남역 사건’, ‘미투 운동’ 이후에도 여전히 여성의 일상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짚었다. 2016년 ‘강남역 사건’, 2018년 ‘미투 운동’은 일상화된 성차별과 폭력에 저항하는 사회적 연대 움직임이었다. 당시 여성들은 정부와 국회에 안전하고 평등한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정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이 교수는 정부가 발표한 대책에 대해서는 “‘강남역 사건’ 때 단순히 화장실 분리하고, CCTV 몇 대 더 놓으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며 “성폭력 사건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성차별과 연결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여성을 단순히 약자로 보고 보호하라는 것이 아닌 누구든지 안심하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단체들은 22일 '공원 여성살해 사건 피해자 추모 및 여성폭력 방치 국가 규탄 긴급행동'을 구성하고 24일 오전 범죄 현장에서 '성평등해야 안전하다'를 주제로 추모에 나선다.

긴급행동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정부의 기조 하에 최소한에 불과했던 성평등 정책은 지속적으로 축소되어왔으며, 국민을 지켜야 했을 국가는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묵살하고, 관련 정책을 축소‧폐지하거나 엉뚱한 대책을 내놓는 행태 끝에 결국 또 다른 죽음을 막지 못한 것"이라며 "'각자 조심해서', '운이 좋아서' 살아남는 사회가 아닌, 누구나 평등해서 신뢰하고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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