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국문학관 ‘삼국의 여인들, 새로운 세계를 열다’전
10월29일까지 은평역사한옥박물관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서 개막한 전시 ‘삼국의 여인들, 새로운 세계를 열다’ 전시 전경. ⓒ이세아 기자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서 개막한 전시 ‘삼국의 여인들, 새로운 세계를 열다’ 전시 전경. ⓒ이세아 기자

우리의 삼국시대사(三國時代史)는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은 선덕여왕을 두고 “늙은 여자가 규방에서 나와 나라의 정사를 처리한다”고 힐난했다. 편협한 남성중심적 사관을 깨고 보는 삼국의 여인들은 어떨까. 국립한국문학관(관장 문정희)이 연 전시 ‘삼국의 여인들, 새로운 세계를 열다’가 하나의 단서다. 

“한국문학의 원류인 『삼국유사』의 가치와 의미를 전달하는 동시에 역사에 빠져있거나 기록되지 않은 계층의 대표주자인 여성들을 재조명하고자” 기획한 전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살았지만 무지하거나 온순하기만 한 여성들은 아니었다. 자신들의 욕망과 의지를 표현했던 적극적인 여성 주체의 모습도 엿보인다.

ⓒ국립한국문학관 제공
ⓒ국립한국문학관 제공

1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다’에서는 우리 민족의 어머니인 고조선의 ‘웅녀’, 고구려 주몽의 어머니인 지모신 ‘유화’, 신라 선도산의 산신이자 시조모(始祖母)로 알려진 ‘사소’를 살펴본다. 우리 건국 설화 속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여성의 강인함과 따뜻함을 느껴볼 수 있다.

2부 ‘운명을 개척하다’에서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한 여성들을 만날 수 있다. 『삼국유사』는 신라 최초의 여왕이었던 ‘선덕여왕’이 예견한 세 가지 일화를 통해 그의 성스러움과 슬기로움, 왕으로서의 권위를 강조한다. 아유타국에서 배를 타고 가야로 건너 온 ‘허황옥’은 공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고 수로왕과 함께 나라를 통치하며 백성을 어질게 보살핀 왕후로 칭송받는다. 가야와 신라를 잇고 신라의 삼국통일에까지 기여한 ‘문희’는 신라 김유신의 둘째 누이이자 가야 왕족의 후손이다. 언니의 비범한 꿈을 사 훗날 태종 무열왕이 되는 춘추와 결혼한다.

3부 ‘낯선 존재와 만나다’에서는 현실 세계를 넘어 낯선 존재와 조우했던 신비로운 여성들을 통해 고전문학의 상상력을 만나본다. 먼저 화랑 김현과 호랑이 처녀의 사랑을 다룬 ‘김현감호(金現感虎)’ 설화다. 호랑이 처녀는 인간과 사랑을 나누고, 오빠들의 벌을 대신 받는 동시에 연인이 벼슬을 받을 수 있도록 희생한다.

‘헌화가(獻花歌)’와 ‘해가(海歌)’의 주인공 ‘수로 부인’, ‘처용의 아내’는 모두 빼어난 미인으로 인간뿐 아니라 낯선 존재들과 교류했다. 수로부인은 바다의 용에게 끌려갔다가 나오고, 처용의 아내는 용의 아들인 처용과 결혼하고 역신(疫神)과 동침한다. 남편을 두고 바람을 피운 ‘간통녀’로만 보는 것은 편협한 해석이다. 이들은 인간이 아닌 존재를 부정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현실 밖 세계를 인정하고 인간이 아닌 존재와 공생의 삶을 지향하는 불교적 세계관이 드러난다. 동시에 여성들의 대범함과 열린 마음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서 개막한 전시 ‘삼국의 여인들, 새로운 세계를 열다’ 전시는 삼국시대의 여성들을 다룬 근현대 한국 문학작품도 소개한다.  ⓒ이세아 기자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서 개막한 전시 ‘삼국의 여인들, 새로운 세계를 열다’ 전시는 삼국시대의 여성들을 다룬 근현대 한국 문학작품도 소개한다. ⓒ이세아 기자

 

삼국시대의 여성들을 다룬 국내 회화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다.  ⓒ이세아 기자
삼국시대의 여성들을 다룬 국내 회화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다. ⓒ이세아 기자
(왼쪽 위부터) 한국문학관 전시 ‘삼국의 여인들, 새로운 세계를 열다’에서 볼 수 있는 『삼국유사』, 『삼국사기』, 『대동운부군옥』, 『고려사악지』 원본 자료. ⓒ국립한국문학관 제공
(왼쪽 위부터) 한국문학관 전시 ‘삼국의 여인들, 새로운 세계를 열다’에서 볼 수 있는 『삼국유사』, 『삼국사기』, 『대동운부군옥』, 『고려사악지』 원본 자료. ⓒ국립한국문학관 제공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서 개막한 전시 ‘삼국의 여인들, 새로운 세계를 열다’ 전시 전경. ⓒ이세아 기자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서 개막한 전시 ‘삼국의 여인들, 새로운 세계를 열다’ 전시 전경. ⓒ이세아 기자

4부 ‘이야기를 남기다’에서는 한국문학관의 대표 소장 자료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삼국유사』, 『삼국사기』, 『역옹패설』 등 중요한 문학 원본 자료, 향가와 설화를 모티프로 재해석한 근현대 작품,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된 다양한 버전의 ‘삼국유사’ 등이다.

관련 미술 작품과 이를 활용한 미디어콘텐츠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전시장에선 이만익 화백의 작품 ‘처용가무도’(1984)와 ‘헌화가’(1999)가 눈길을 끈다. 유엔(UN) 창설 50주년 기념우표로도 제작된 김원숙 화백의 ‘보름달 여인’(1995)도 볼 수 있다. 「그림으로 보는 삼국유사」와 ‘수로부인영접도’(1995-2008), ‘웅녀현신도’(2003), ‘하백일가도’(1999)를 활용한 미디어콘텐츠 작품도 관람객을 기다린다.

한국문학관이 주최, 한국문학관과 은평구가 공동 주관하며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한다. 문정희 한국문학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고대 사회 여성의 힘과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며 “향후 개관될 한국문학관의 중요한 컬렉션을 미리 엿볼 수 있는 기회”라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를 공동 주관한 김미경 은평구청장은 “앞으로 국립한국문학관의 개관과 예술마을의 조성으로 수색역세권부터 한옥마을까지 은평구 중심축을 따라 은평문화관광벨트가 구축될 것”이라며 한국문학관과의 지속적인 협력을 강조했다. 10월29일까지 은평역사한옥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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