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극장 무대로 돌아온 창작뮤지컬 ‘프리다’
‘쇼’로 풀어낸 프리다 칼로의 삶과 사랑
실력파 여성 배우들만 서는 무대
김소향·김히어라·알리 등 열연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신한카드아티움에서 열린 뮤지컬 ‘프리다’ 프레스콜 현장. (왼쪽부터) 박시인, 스테파니, 김히어라, 정영아 배우.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신한카드아티움에서 열린 뮤지컬 ‘프리다’ 프레스콜 현장. (왼쪽부터) 박시인, 스테파니, 김히어라, 정영아 배우. ⓒ뉴시스·여성신문

한국 뮤지컬 시장엔 여성을 누군가의 연인, 어머니, 딸, 뮤즈의 자리에만 남겨두는 작품이 너무 많다. 창작 뮤지컬 ‘프리다’는 그 뻔한 길을 걷지 않는다. 프리다 칼로라는 불세출의 여성 영웅을 다루니 당연하다. 17세 때 교통사고로 치명상을 입고 평생 죽음의 그림자에 맞선 여성. 연인들의 배신, 상실의 고통에 몸과 마음이 부서져도, 다시 일어나 여성의 삶과 꿈을 독창적으로 표현한 페미니스트 예술가. 

동시에 ‘믿고 보는’ 배우들이 100분간 펼치는 ‘연기 차력쇼’다. 오직 여성들만 무대에 선다. 실력 있는 여성 배우들이 남성서사의 들러리에 머무는 무대가 지겨웠던 관객들에겐 단비 같은 작품이다.

지난해 300석 규모 소극장에서 관객과 만났던 작품이 올해 1000석 규모 대극장 공연으로 ‘업그레이드’돼 돌아온 비결이다. 쟁쟁한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들과의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고 티켓 판매 랭킹 상위권을 지키는 중이다. 개막 첫 주부터 한 작품을 반복 관람하는 ‘회전문 관객’들이 눈에 띈다. 여성이, 여성의 이야기를, 여성을 소외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들려주는 작품에 관객들이 얼마나 목말라 있는지 보여준다. 올 초 조기 매진 신드롬에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던 국립창극단 ‘정년이’를 떠올리게 한다. 기다렸다는 듯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보여주는 여성 배우들이 느끼는 해방감과 즐거움이 고스란히 객석으로 전해지는 작품이다.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신한카드아티움에서 열린 뮤지컬 ‘프리다’ 프레스콜 현장. 김소향, 황우림 배우.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신한카드아티움에서 열린 뮤지컬 ‘프리다’ 프레스콜 현장. 김소향, 황우림 배우. ⓒ뉴시스·여성신문
창작 뮤지컬 ‘프리다’가 1000석 규모 대극장 공연으로 ‘업그레이드’돼 돌아왔다.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창작 뮤지컬 ‘프리다’가 1000석 규모 대극장 공연으로 ‘업그레이드’돼 돌아왔다.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프리다가 ‘더 라스트 나이트 쇼(The Last Night Show)’라는 TV 예능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해 직접 자기 삶과 사랑, 예술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용이다. ‘쇼’의 형식을 취하면서 ‘프리다 칼로 위인전’이나 신파극이 아닌 흥미진진한 드라마가 됐다. 추정화 연출은 지난 10일 열린 프레스콜에서 “너무나 힘든 고통 속에서 삶을 마감했지만 ‘Viva la vida’를 외치며 살아간 한 인간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었다”며 “프리다에게 휠체어와 의족이 아닌 예쁜 옷과 신발을 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사실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일종의 토크쇼 형식으로 만들어야겠더라”라고 밝혔다.

재능 많고 야심 찬 젊은 여성에게 삶은 잔인했다. 육체는 완전히 망가졌고 결혼생활은 실패했다. 죽음의 유혹을 번번이 뿌리치고 삶을 택해도, 삶이 좋은 것만 주진 않았다. 그래서 철로 만든 코르셋을 차고 일어나 주먹을 흔들며 노래하는 프리다의 투지는 더 웅장하다. 척추가 내려앉고 다리가 썩어가는 순간에도 붉은 꽃잎을 흩뿌리며 추는 춤은 더 숭고하다.

주인공 ‘프리다’(김소향·알리·김히어라 분)의 존재감이 압도적인 극이다. 지난 11일 무대에 선 김히어라 배우가 연기한 프리다는 매혹적이고 강렬하면서도 마음속 끝없는 갈등과 고투를 숨길 수 없는 여성이었다. 여유롭고 사랑스러운 자태로 탄성을 자아냈다가, 쓸쓸하고 비통한 표정과 몸짓으로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10년 이상 연극·뮤지컬 무대에서 인상 깊은 연기와 출중한 노래 실력으로 두터운 팬층을 확보한 배우다. 2년 만의 뮤지컬 복귀작이다. ‘더글로리’, ‘경이로운 소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TV 드라마에서만 김히어라의 연기를 접했던 관객에게는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초연부터 극찬받은 김소향의 프리다는 명불허전이고, 새로 합류한 알리도 시원한 가창력과 섬세한 연기로 호평받고 있다.

프리다 외에 세 배우가 무대에 올라 일인 다역을 소화한다. 쇼의 진행자 ‘레플레하’ 겸 애증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전수미·리사·스테파니), 교통사고 이후 프리다 곁을 맴도는 사신(死神) ‘데스티노’(임정희·정영아·이아름솔), 유쾌한 장난꾸러기였던 유년 시절의 프리다이자, 프리다가 상상해 낸 완벽한 자신인 ‘메모리아’(최서연·박시인·허혜진·황우림)다. 박정자 배우가 쇼 연출자로 ‘목소리 기부’를 했다. 프리다가 느꼈을 죽음에의 유혹을 강렬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또 해학적으로 묘사한 데스티노 역 정영아 배우는 이번 재연에서도 좌중을 압도하는 연기와 가창력을 보여줬다. 깜찍하고 생기발랄한 연기를 펼치면서도 고통받는 프리다에게 끝까지 삶의 의지를 놓지 말라고 호소하는 메모리아 역 박시인 배우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신한카드아티움에서 열린 뮤지컬 ‘프리다’ 프레스콜 현장. (왼쪽부터) 허혜진, 알리, 전수미, 이아름솔 배우.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신한카드아티움에서 열린 뮤지컬 ‘프리다’ 프레스콜 현장. (왼쪽부터) 허혜진, 알리, 전수미, 이아름솔 배우. ⓒ뉴시스·여성신문

‘부서진 기둥’(1944), ‘두 명의 프리다’(1939) 등 프리다 칼로의 대표작이 주요 장면마다 대형 스크린에 등장한다. 이엄지 무대디자이너, 이수경 영상디자이너가 거대한 거울(세트 맵핑 면)을 활용해 만든 무대는 간결하면서도 화려하다. 주요 장면에선 비누방울, 꽃잎이 날리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10월15일까지 서울 강남구 코엑스 신한카드아티움.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