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바비인형 제조사 마텔이 2020 도쿄올림픽 기념 컬렉션에서 아시아계 인형을 제외해 논란이 일었다. 사진 = 바비 트위터 캡처
미국의 바비인형 제조사 마텔이 2020 도쿄올림픽 기념 컬렉션에서 아시아계 인형을 제외해 논란이 일었다. 사진 = 바비 트위터 캡처

최근 개봉한 영화 ‘바비’에는 현실의 다양한 여성만큼이나 다양한 바비가 등장한다. 인형을 가지고 노는 여성과 바비랜드에 사는 인형이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바비와 연결되는지 영화를 본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하게 된다.

하나만 고르기 어려울 정도로 선택지는 다양하다. 1959년생으로 올해 64세인 바비는 패션모델로 데뷔해 의사, 군인, 발레리나, 대통령, 우주인으로 전직을 거듭했다. 개중에 2020년 도쿄 올림픽을 기념해서 출시한, 금메달리스트인 가라테 바비에 눈길이 갔다. 흰색 도복에 블랙 벨트를 매고 핑크 글러브를 낀 바비의 모습은, 주짓수 도장에서 수련하는 주짓떼라(주짓수를 수련하는 여성)를 닮았다.

바비의 재현도가 높은 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바비를 만드는 마텔사는 정교한 복장과 소품으로 현실 반영을 중요시한다. 예를 들어 군인 바비는 걸프전에 참전했는데 그가 입은 군복은 국방부의 정식 허가까지 받았다. 가라테 바비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와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금메달리스트 바비는 운동이 낯설고 싫은 여자아이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될 수 있다. 이를테면 여섯 살 조카는 피겨와 체조는 알아도 격투기가 뭔지 잘 모르는데 가라테 선수인 바비를 보면 분명 관심을 가질 것이다. 여기에 ‘너도 바비처럼 메달리스트가 될 수 있어!’하고 영업 멘트까지 덧붙이는 거다.

그런데 바비를 운동하는 여성의 롤모델로 삼자니,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한마디로 말해서 조금만 더 선수다운 모습이면 좋겠다. 일단 포니테일 스타일로 묶은 긴 머리는 스파링 중에 한 움큼씩 뽑혀서 절대 바비처럼 풍성한 숱을 유지할 수 없다. 또 립스틱과 눈 화장이 뭉개질 거고 상대 선수의 도복까지 화장품 범벅이 된다. 가장 이상한 건 바비가 신은 핑크 하이힐이다. 저대로 매트 위에 서면 금메달은커녕 경기 규정 위반으로 실격이다.

이러한 바비의 모습과 현실의 ‘미녀 선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격투기를 모르는 조카가 가라테 바비에 관심을 보이듯, 여성 선수가 뛰어난 역량을 보여도 주목받기 어려운 스포츠계에서 외모가 아름다운 선수는 대중의 관심을 끈다는 점이다. 여기에 조직위나 연맹이 선수의 외모를 흥행에 이용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일례로 윔블던 테니스 대회는 지난 2009년 외모로 코트를 배정한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영국의 ‘데일리 메일’은 “센터 코트에 실력보다 예쁜 선수의 경기가 주로 배정된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윔블던 대회 조직위 대변인이 “외모도 코트를 배정할 때 고려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라고 답하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란의 소라야 아게히 하지아가는 히잡에 긴팔 상의, 레깅스를 착용한 채 여자 배드민턴 단식 경기에 참가했다. ⓒ뉴시스
이란의 소라야 아게히 하지아가는 히잡에 긴팔 상의, 레깅스를 착용한 채 여자 배드민턴 단식 경기에 참가했다. ⓒ뉴시스

국내에서도 최근 실업배드민턴연맹이 배드민턴 대회를 개최하면서 여성 선수에게 ‘치마만 입어야 한다’는 규정을 제시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실업배드민턴연맹이 지난해 10월 이듬해 2월에 열릴 대회 개최를 공고하면서 여성 선수에게만 치마를 입어야 한다는 규정을 신설했다가 ‘여성만 치마를 입도록 하는 건 성차별’이라는 진정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됐다.

인권위의 조사가 시작되자 연맹은 해당 규정을 삭제했다. 지금까지 여성 선수의 복장에 대한 규정이 없다가 황당한 규정이 새로 생긴 이유가 뭘까? 일각에서는 이번 대회부터 텔레비전 중계가 이뤄지면서 연맹이 흥행을 의식한 게 아니냐고 추측한다.

현실에 미녀 선수가 있다면 SNS 세상에는 피트니스 인플루언서들이 있다. 인플루언서처럼 되고 싶은 팔로워들은 기꺼이 다이어트 식단을 따라 하고 그들이 파는 운동 기구, 건강 식품, 운동복을 사들인다.

만약 어떤 여성이 미녀 선수나 인플루언서를 선망하다가 운동에 더 관심을 갖는다면 그 또한 순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도로 상업화된 스포츠계와 SNS 세상에서 ‘운동하는 여자’는 ‘운동’보다 ‘여자’로서 더 주목받고 소비를 부추기는 현상을 부정할 수 없다. 마치 영화 ‘바비’의 주제 의식보다 바비가 선보인 바비코어룩(선명한 핑크 컬러에 1980년대의 레트로하고 페미닌한 스타일)이 더 많이 회자되는 것처럼 말이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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