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고용부 ‘외국인 가사근로자’ 시범사업 공청회
필리핀 유력, 통근형, 서울시 초기 정착비용 지원도
시민사회단체, 현장서 ‘노예제 도입중단’ 피켓 시위
양육자들도 ‘외면’… “근로시간 단축이 근본 대책”

31일 고용노동부 주최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사업 관련 공청회'에서 시민사회단체가 '노예제 도입중단'이라고 적힌 피켓을 놓고 항의하고 있다. ⓒ이수진 기자
31일 고용노동부 주최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사업 관련 공청회'에서 시민사회단체가 '노예제 도입중단'이라고 적힌 피켓을 놓고 항의하고 있다. ⓒ이수진 기자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가사근로자’ 시범사업이 하반기 시행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실수요자로 예상되는 양육자들조차 도입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누구를 위한 시범사업이냐”는 비판이 나온다.

31일 오전 10시 고용노동부 주최로 서울 중구 로얄호텔서울에서 ‘외국인 가사근로자’ 시범사업 관련 공청회가 열렸다.

이날 고용부가 발표한 시범사업 계획안에 따르면, 가사근로자 송출국으로는 의사소통의 용이성을 고려해 영어권인 필리핀이 유력하며, 근로 형태는 거주형이 아닌 출퇴근 방식으로 추진 중이다.

근로자들의 숙소는 협의에 따라 서비스 제공기관(사업주)이 마련하며, 초기정착 비용은 서울시가 추경을 통해 1.5억을 외국인 가사근로자의 교통비나 숙소비로 지원할 방침이다.

지난 토론회에서 지적됐던 이용자 소득 편중 현상에 대해서는 맞벌이 부부나 저소득층 등 실제로 필요한 이들에게 고루 제공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서비스 기관 선정은 공모를 통해 이뤄지고, 잠재 이용자를 대상으로 수요조사도 진행할 예정이다.

고용부는 3분기에 시범사업 계획안을 확정하고, 연말에는 사업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상임 고용부 외국인력담당관 과장은 “이번 공청회는 지금까지 정부가 검토한 내용에 대해 의견을 듣는 자리다. 확정된 안이 아니라, 참가자들과 국민들의 의견 듣고 더 보완해야할 부분 있다면 반영하겠다”고 덧붙였다.

토론 패널들은 공청회가 ‘기습’적으로 이뤄졌다는 비판과 함께, 기존 국내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뺏는 등 업계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 우려를 표했다.

최영미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은 “이번 공청회에 대해 강력히 항의한다”며 “외국인력 도입이 앞으로 늘어날 퇴직자, 60대 중·고령 구직자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돌봄 인력인데 제조업과 달리 얼마나 세심한 준비가 됐는가, 여기에 대한 답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누가, 얼마나, 왜, 어떤 비용으로 외국인력을 필요로 하는가에 대한 답이 없다. 이런 공청회를 여는 건 마치 부정선거를 하고서 ‘이런 공약 내걸었어, 언제 할까?’ 하는 것과 같다. 절차적 민주주의도 중요한데, 하나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31일 고용노동부 주최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사업 관련 공청회'에서 최영미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이수진 기자
31일 고용노동부 주최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사업 관련 공청회'에서 최영미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이수진 기자

실수요자인 ‘워킹맘’과 ‘워킹대디’들은 외국인 근로자의 신뢰성 문제나 문화적 차이 해소가 어려울 것이라며, 근본적으로는 근로시간 조정 등을 통해 부모가 직접 육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37개월 쌍둥이를 키우는 워킹맘 김고은 씨는 “(제도 도입에) 회의적인 입장”이라며 “근본적으로는 내 아이 내가 키울 수 있게 단축근무나 유연근무를 할 수 있게 근로시간 조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7세, 5세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워킹대디 김진환 씨도 “저출산 고령화가 문제는 맞지만, 부모가 아이를 돌볼 수 있는 환경이 되는 게 본질이다”며 “중요한 건 신뢰인데, 외국인 근로자의 신원을 증명할 수 있는가, 문화적 차이를 해소할 수 있는가, 저 또는 아내의 육아관과 합치를 이뤄낼 수 있는가(를 고려했을 때 부정적인 입장이다)”고 말했다.

토론이 끝나고 주어진 질의시간에는 청중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전반적으로 급하게 밀실에서 진행되는 느낌이다”며 “국내 근로자가 좋은 일자리에서 일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좋지 않은 일자리에선 아무도 일하고 싶지 않다. 외국인 가사 근로자 도입은 돌봄의 공공성만 해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사서비스 매칭 업무를 해왔다는 한 참가자는 “왜 가사근로자 인력이 감소됐는지 아시냐. (사회적) 인식, 인권의 문제였다”며 “이용자들도 매칭 시 ‘혹시 외국인이 오냐’고 묻는다. 아이와 문화적 차이, 정서가 다르다는 걸 우려한다. (이번 사업에서) 그들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한 것인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 활동가는 “정주 노동자의 노동협상권을 낮추고 더 싼 값으로 해외노동자 부리려는 의도는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이번 사업은 저출산 대책으로 나온 것인데, 오세훈 서울시장은 돌봄과 보육에 중요한 사회서비스원 예산을 100억 이상 깎았다. 모두의 필요를 충족할 정책과 사업이 있음에도 왜 이 사업을 추진하는지 의문이다”고 비판했다.

고용부는 제공기관에서 실시하는 교육의 질이나 근로자 인권침해 문제에는 적절히 개입한다는 방침이다.

고용부 이상임 과장은 “인증기관(제공기관)에 맡기는 게 아니라 (고용부가) 모니터링 할 예정이다”며 “고용부도 가사근로자법을 토대로 외국인도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현장에는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시범사업을 강행하는 정부와 서울시에 항의하는 의미로 ‘노예제 도입중단’이라는 피켓을 들고 서있기도 했다. 이들은 이날 공청회 시작에 앞서 시범사업을 규탄하며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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