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경 충북여성재단 대표이사
박혜경 충북여성재단 대표이사

최근 학생이나 학부모에 의한 교사 폭행 및 폭언, 그에 이은 교사의 극단적 선택이 일어나 우리를 우울하게 하고 있다. 대책을 궁리하면서 처음 제기된 문제가 학생인권조례를 겨냥하면서 이 문제가 학생인권 대 교권의 문제로 이야기되기도 한다. 이것을 진영 간 대립문제로 바꾸어 ‘진보’ 대 ‘보수’의 대립으로 몰아가는 이들도 있다.  

이런 식의 사고 틀은 둘 다 중요한 걸 상호대립시켜 놓아 해답을 찾아주기는 커녕 더 깊은 갈등 속으로 우리를 끌고들어간다. 그럼, 한 교실 안에서 종일 마주하며 생활해야 하는 교사와 학생들에게 서로 싸우란 것인가? 이러다 자녀학대 예방정책이 부모학대를 가져왔단 식의 논리도 가능하겠구나, 하는 걱정이 든다. 부모와 자녀가 그런 것처럼, 교사와 학생은 협력자이지 적이 아니다,

학생인권조례는 체벌 등 권위주의적이고 비민주적인 교육으로부터 아동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부족한 부분을 고칠 수는 있지만 조례 폐지가 능사가 아니다.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학생의 인권도 교사의 인권도 중요하다. 둘 다 중요한 것을 양자택일의 문제로 보는 것만큼 쉽고도 어리석은 것이 없다.

일본인 교수로부터 일본의 학교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학생들이 수업 도중에 소리를 지르고 별짓을 다해도 교사는 학생을 야단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당 학생의 학부모로부터 항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런 환경에서 교실은 교육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기 어렵고, 교사들은 좌절하여 학교를 떠난다. 교직은 점점 소신이 없는 사람들이 채우는 기피직종이 되고 교사에 대한 존경심은 더욱 옅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했다. 그런데 똑같은 이야기를 한국의 교사로부터 들은 지도 오래 되었다. 이로 인한 피해는 일차적으로 아이들, 학부모,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 전체가 입게 된다.  

20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 극단 선택으로 숨진 20대 교사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놓여 있다. ⓒ박상혁 기자
20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 극단 선택으로 숨진 20대 교사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놓여 있다. ⓒ박상혁 기자

 

솔직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알고 있을 것이다. 알고도 어물쩡하는 사이에 문제가 커져 버렸다. 잊어선 안 되는 건 교사들은 노동자이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돌봄 제공자라는 사실이다. 가정 안에서 하던 교육과 자녀돌봄이 사회와 나누어지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기대받는 곳이 학교다. 공교육제도를 지켜내고 잘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 사회는 힘써 왔다. 하지만 돌봄 제공자의 위치는 어떠한가? 집안에서도 집밖에서도 돌봄노동은 여성의 일로 여겨지고 가치절하되었다. 평교사의 대다수는 여성이고 초등학교로 갈수록 더한 현실은 이와 관련 있다.

어머니가 모성애 본능 때문에 자녀들을 가장 잘 돌본다는 통념은 근대에 만들어진 모성애 신화라고 여성주의자들은 비판해 왔다. 좋은 돌봄이 행해지려면 양육자가 놓여 있는 환경이 좋아야 한다. 좋은 어머니노릇은 어머니의 위신과 삶에 대해 지지하고 돌봄을 나누어 짐져 주는 사회 시스템에 의해 가능한 것이지 본능으로 되는 게 아니다.

지금 학교 현장의 충돌과 비극은 사실상 학부모와 교사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녀를 위해 돌봄 제공자로서 협력해야 할 두 주체가 갈등하는 것 같은 상황이다. 이것은 개별 가정과 돌봄노동자 교사에게 돌봄의 책임을 전가하고 그것을 잘 돕지 않았던 우리 사회가 만든 문제다.

아이들을 위한 교육과 돌봄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돌봄 제공자인 교사의 위신과 인권이 보호되는 환경을 더 촘촘히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돌봄과 교육의 대상인 아이들을 위한 길이다. 아이들로부터 학생인권조례를 빼앗는 일에 골몰할 게 아니라, 돌봄 제공자를 돌보는 사회 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해 더 궁리하고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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