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강간죄 개정 쟁점 국회 토론회
2022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강간상담 통계
직접 폭행·협박 없었던 ‘비동의강간’ 62.5%
신고·고소 건 중 기소 36.4%뿐… “‘강간통념’ 작용”
현직 판사 “근본 문제는 성고정관념… 갈 길 멀다”
활동가 “비동의강간죄, 성폭력 패러다임 바꿀 것”

25일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비동의강간죄 개정 쟁점과 과제' 토론회가 열렸다. ⓒ이수진 기자
25일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강간죄 개정 쟁점과 과제' 토론회가 열렸다. ⓒ이수진 기자

강간죄가 제정된 지 7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폭행이나 협박’이 있어야만 인정돼 현실에 뒤쳐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동의 여부’로 개정해야 한다는 데 현장과 전문가들의 입장이 모였다. 다만 동의 여부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법실무 측면에서 변화를 만들기까지는 큰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아는 사람에 의해, 폭행이나 협박 없이 성폭력 피해를 입는다.

119개 기관에서 상담했던 총 4765건의 사례를 분석한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전성협)의 2022년 강간상담 통계에 따르면, 동급생·선후배·직장관계자·채팅상대자 등을 포함한 ‘아는 관계’로부터 피해를 겪은 경우가 57.9%(2757건)로 가장 많았다. 전·현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서의 피해도 13.6%(646건)였다.

직접적인 폭행·협박이 없었던 경우는 62.5%(2979건)에 달했다. 가해자 중 ‘채팅상대자’가 15.6%(464건)로 가장 많았는데,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 나무 활동가는 “‘술 마시고 강간하고 고소당하지 않는 법’ 등 성폭력(처벌)을 피할 방법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집단적으로 공유되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많은 피해자들은 성폭력 피해를 적극 경찰에 신고하고 있지만, ‘피해자다움’과 ‘강간통념’ 등으로 인해 송치 또는 기소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현저히 적었다.

전체 강간상담 건 중 신고·고소가 이뤄진 것은 3235건이었다. 이 중 1176건(36.4%)만이 기소됐다. 불송치 또는 불기소의 이유는 ‘폭행·협박 입증되지 않음(19.3%)’ ‘피해자 진술 신빙성 의심(17.6%)’ 등이었다. 판단 이유로는 ‘성관계 중 물고 빠는 것은 상해로 보기 어려움’ ‘피해 이후 다정하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음’ ‘항거를 불가능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등이 거론됐다.

25일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비동의강간죄 개정 쟁점과 과제' 토론회가 열렸다. ⓒ이수진 기자
25일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강간죄 개정 쟁점과 과제'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장은 참가자들로 가득 찼다. ⓒ이수진 기자

현직 법조인들은 한 목소리로 이미 재판 실무에서는 ‘동의 여부‘로 성범죄 유무를 판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비동의강간죄 도입의 효과를 놓고는 의견이 엇갈렸다.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이경환 변호사는 “현행 법제와 판례를 보면 절반 이상이 이미 (강간 등 성폭력을) ‘동의 여부’를 가지고 판단하고 있다. 완전히 새로운 판단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동의는 불명확한 개념이 아니다. BDSM(가학·피학적 성적 취향 또는 이를 기반으로 이뤄지는 성행위)도 폭력이 이뤄지지만, 동의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형법상으로는 죄가 안 된다”고 덧붙였다.

서울중앙지방법원 김동현 부장판사는 “이미 성범죄재판의 실무가 동의 여부 판단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비동의강간죄 도입으로 획기적 변화가 있을지는 확신하기 어렵다”며 “가장 문제는 젠더 고정관념과 강간통념이다. 이것이 ‘비동의’를 비동의로 포착하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판사들 중에서도 성인지 감수성 판례를 비판하는 논문을 내시는 경우도 있다. 젠더 고정관념 등을 극복하는 게 더 본질적인 문제 같다”고 말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A씨는 “법의 단어 하나를 바꾸는 일이 법조계에서 실무적으로는 큰일이 아닐지라도,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중심에 둘 수 있게 되고, 가해자도 행동하기 전 멈칫하게 될 수 있다”며 “매일 성폭력이 발생하는 현실에서는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논의를 더 확장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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