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움미술관, 김범 개인전 ‘바위가 되는 법’
지난 30년간 회화·조각·영상 등 70여 점 모아
27일부터 12월3일까지

김범, ‘자신이 도구에 불과하다고 배우는 사물들’, 2010, 일상적인 사물, 목재 의자, 목재 탁자, 형광등을 켠 칠판, TV 모니터에 단채널 비디오(21분 8초), 가변 크기. 개인 소장. ⓒ김범/촬영 이의록, 최요한/리움미술관 제공
김범, ‘자신이 도구에 불과하다고 배우는 사물들’, 2010, 일상적인 사물, 목재 의자, 목재 탁자, 형광등을 켠 칠판, TV 모니터에 단채널 비디오(21분 8초), 가변 크기. 개인 소장. ⓒ김범/촬영 이의록, 최요한/리움미술관 제공
김범, ‘바다가 없다고 배운 배’, 2010, 모형 배, 플렉시 글라스 상자, 목재 탁자, 12인치 평면 모니터에 단채널 영상(91분 41초), 가변 크기. 매일홀딩스 소장. ⓒ김범/촬영 이의록, 최요한/리움미술관 제공
김범, ‘바다가 없다고 배운 배’, 2010, 모형 배, 플렉시 글라스 상자, 목재 탁자, 12인치 평면 모니터에 단채널 영상(91분 41초), 가변 크기. 매일홀딩스 소장. ⓒ김범/촬영 이의록, 최요한/리움미술관 제공

일상 속 공상을 현실의 사물로 빚어내는 작가, 고정관념을 깨고 재치와 해학으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예술가, 김범(60)이 13년 만에 국내 개인전을 연다. 오는 27일부터 12월3일까지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열리는 ‘바위가 되는 법’이다.

작가가 지난 30여 년간 선보인 회화·조각·설치·영상 등 작품 총 70여 점을 선보인다. 1990년대 초기작부터 대표 연작 ‘교육된 사물들’, ‘친숙한 고통’, ‘청사진과 조감도’, 최근 디자인 프로젝트 등을 한자리에 모았다. 김범 작가의 단독 전시로는 최대 규모 전시다.

전시 제목 ‘바위가 되는 법’은 작가의 아티스트 북 『변신술』(1997)에서 따왔다. ‘나무가 되는 법’, ‘냇물이 되는 법’, ‘에어컨이 되는 법’ 등 인간이 자연이나 사물로 변신하는 법을 적은 지침서다. “움직이지 않고 숨소리를 죽인다”, “계절과 기후의 변화를 무시하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다” 같은 지침을 따라 하다 보면 바위로 변할 수 있을까? 작가의 흥미로운 상상을 따라가면서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고, 세상을 좀 다른 관점으로 들여다본다. 김범 작가 작업들의 특징이다.

김범, 「바위가 되는 법」, 『변신술』, 2007. ⓒ김범
김범, 「바위가 되는 법」, 『변신술』, 2007. ⓒ김범
김범, ‘무제’, 1995, 캔버스에 잉크, 31 × 31cm. ⓒ김범
김범, ‘무제’, 1995, 캔버스에 잉크, 31 × 31cm. ⓒ김범

소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는 관점에서 보이는 장면을 그린 ‘무제’(1995), 산의 능선처럼 보이지만 열쇠의 골을 확대해 그린 ‘현관 열쇠’(2001)는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What you see is not what you see)”라는 통찰을 수행한다. 캔버스를 오리는 등 작가의 행위가 개입된 ‘벽돌 벽 #1’(1994)과 ‘철망 통닭 #1’(1993)은 회화 평면 너머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김범 작가 특유의 소박한 표현과 진지한 유머도 돋보인다. 관객들에게 무심코 보던 것을 다시 관찰하고, 당연시했던 전제를 의심하도록 촉구한다. 사나운 개가 벽을 뚫고 달아난 흔적 같은 ‘두려움 없는 두려움’(1991), 난폭한 사람의 집에 초대돼 벌어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하나의 가정’(1995) 등이 그렇다. 캔버스에 미로 퍼즐을 그린 ‘친숙한 고통’ 연작은 일상 속 난관을 은유하는 한편 해결 본능을 자극한다.

그의 작품 세계에서 사물은 살아있다. ‘임신한 망치’(1995)부터, 돌에게 정지용의 시를 낭송해 주는 ‘정지용의 시를 배운 돌’(2010), 모형 배에게 지구가 육지로만 돼 있다고 가르치는 ‘바다가 없다고 배운 배’(2010) 등 ‘교육된 사물들’ 연작이 대표적이다. 교육과정의 맹점과 교육된 현실의 ‘부조리’를 독특한 방식으로 보여주며 우리는 어떻게 교육되고 있는지, 교육된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지 돌아보게 한다. 이러한 모순과 해학은 흥미로운 상상으로 그치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관습과 체제를 의심스러운 것으로 만든다.

‘보고 읽는’ 상상화인 ‘청사진과 조감도’ 연작도 흥미롭다. 학교와 등대의 일반적인 구조를 제시한 듯하나, 자세히 보면 비관적 세계관을 드러낸다. 작가는 2016년부터 ‘폭군을 위한 인테리어 소품’ 프로젝트를 시작해 불의한 권력자를 위한 인테리어·생활 소품을 제작, 판매하고 수익금을 기부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도 벽지 설치와 리움 스토어와 협력해 제작한 다양한 소품을 만나볼 수 있다.

김범은 예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반성해 온 작가이기도 하다. ‘노란 비명 그리기’(2012)는 힘껏 소리 지르며 한 획씩 추상화 그리는 법을 가르치는 튜토리얼 영상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해학적인 상황은 손에 잡히지 않는 이상과 관념을 포착하는 불가능한 과업에 기꺼이 매진하는 예술가의 애환을 드러낸다.

김범, ‘임신한 망치’, 1995, 목재, 철, 5 × 27 × 7cm. 개인 소장. ⓒ김범
김범, ‘임신한 망치’, 1995, 목재, 철, 5 × 27 × 7cm. 개인 소장. ⓒ김범
김범, ”노란 비명” 그리기, 2012,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31분 6초. ⓒ김범
김범, ”노란 비명” 그리기, 2012,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31분 6초. ⓒ김범
김범 개인전 ‘바위가 되는 법’, 2023. 전시 전경. ⓒ김범/촬영 이의록, 최요한/리움미술관 제공
김범 개인전 ‘바위가 되는 법’, 2023. 전시 전경. ⓒ김범/촬영 이의록, 최요한/리움미술관 제공

전시를 기획한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김범은 1990년대 한국 동시대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작가이다. 그의 작업은 보이는 것과 그 실체의 간극에 대한 끊임없는 탐색의 결과라 할 수 있다”라며 “특유의 재치로 우리를 웃게 만들지만 농담처럼 툭 던진 의미심장한 이미지는 자기성찰의 장을 열어주고 세상을 다르게 보는 법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다양한 전시 연계 프로그램도 열린다. 김범 작가,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 주은지 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SFMOMA) 큐레이터가 토크를 열고 이번 전시와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오은 시인은 작가의 아티스트북 작품들을 문학적 관점으로 읽어보는 강연을 열 예정이다. 작가의 작품 세계를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보는 비평 및 연구프로그램 ‘크리틱 서클’도 열린다. 시각예술분야의 비평과 연구에 관심이 있는 20세 이상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고, 8명을 선정해 연구모임을 진행, 성과를 연구집으로 제작할 예정이다. 한국 동시대미술 연구자, 비평가, 작가 등이 다양한 시각으로 김범의 작품 세계를 연구한 글을 묶은 ‘연구서 형식의 출판물’도 펴낼 계획이다. 청소년을 위한 ‘전시 감상 워크북’도 제작, 초등학교 5학년~고등학교 3학년 단체 관람객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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