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장
출생 미신고 아동 2123명 전수조사
249명 이미 사망...후속 대응 TF 꾸려

“위기임산부 도움 요청 놓쳐선 안 돼
임신·출산·양육, 엄마만의 문제 아냐
보호출산제 하루빨리 도입하되
최대한 직접 키울 수 있게 지원해야”

한국은 소멸해가는 저출생 국가다. 그리고 어린이가 불행한 나라다. 아동학대 사건에 공분하면서도 ‘노키즈존’ 논란이 끊이지 않는 사회다. 부모의 학대와 무관심 속 ‘유령’이 된 아이들이 최소 수천 명이라는 정부 발표가 최근 나왔다. 이 중 249명은 이미 숨졌다.

정익중(54) 아동권리보장원장은 할 이야기가 많다. 아동 관련 사안마다 담당 부처·기관과 언론이 의견을 경청하는 아동복지 전문가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서 강의·연구·자문에 힘쓰다가, 아동 정책·서비스를 통합 지원하는 공공기관의 수장이 된 지 막 100일을 맞았다.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아동권리보장원에서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장을 만났다. ⓒ아동권리보장원 제공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아동권리보장원에서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장을 만났다. ⓒ아동권리보장원 제공

출생신고가 안 된 ‘유령’ 아이들을 보호할 대책부터 물었다. 의료기관이 의무적으로 출생신고를 하도록 하는 ‘출생통보제’ 법안이 지난 6월30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이 시행되는 2024년 7월까지 약 1년간의 공백이 남았다. 사각지대를 막기 위한 ‘보호출산제’ 도입 논의도 한창이다. 아동권리보장원도 영아 사망·유기 조사·분석 TF, 출생통보제 후속 대응 TF를 각각 꾸려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왜 출생신고가 안 됐는지, 수천 가지 사례를 유형별로 정리하고 이분들께 무엇이 필요한지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위기임산부 등이) 동주민센터에 많이들 도움을 요청하는데, 놓치는 경우도 많아요. 일단 연결된다면 무시하거나 놓쳐선 안 됩니다. 기초 지원 정보 제공도 중요합니다. 위기임산부 지원 전화번호만 5가지가 넘어요. 전화했는데 다 다른 이야기를 하면 안 되잖아요. 어디로 연락해도 확실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준비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정 원장은 “보호출산제를 빨리 도입하지 않으면 엄마와 아이들이 죽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출생통보제만 시행되면 ‘병원 밖 출산’이 늘 수밖에 없습니다. 병원에조차 안 가는 사람들이 많아질 거예요. 엄마와 아이 모두 위험해지겠죠. 괜찮으니까 일단 오라고 유인해야 합니다. 아이를 마음대로 유기하게 하는 게 아니라, 여러 선택지를 주되 대안을 함께 고민하고, 최대한 직접 키울 수 있게 설득해야죠. 그러려면 한부모 등 위기임산부 지원대책도 강화해야 하고요. 입양을 선택한다면, 나중에 아이가 자기 뿌리를 알 수 있도록 정보 청구를 할 수 있어야죠. 따로따로 떼어 볼 문제가 아닙니다. 다 함께 가야 합니다.”

임신·출산·양육은 엄마만의 문제가 아니라고도 강조했다. “지금 나오는 대책들 전부 ‘친부’가 빠졌어요. 문제예요. 임신은 혼자만의 책임이 아닌데, 친부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의 대책은 나오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미국에선 1980년대 후반 자녀 양육비 이행 제도(Child Support)가 도입될 때 친자 확인, 아빠가 누구인지부터 확인하고 지원하면서 10대 미혼한부모가 급감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법안과 제언이 쏟아지지만 반짝 관심에 그쳐선 안 된다. 정 원장은 ‘복기’와 ‘예방’을 강조한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재난’이예요. 재난 예방에 초점을 맞춰야지, 사후 수습에 더 노력하면 되나요. 버려지거나 죽는 아이들이 없도록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일을 지원하는 게 저희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아동권리보장원에서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장을 만났다. ⓒ아동권리보장원 제공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아동권리보장원에서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장을 만났다. ⓒ아동권리보장원 제공

“코로나19 대응, 아동 관점서 적절했나 되짚어야
‘노키즈존’ 같은 한국사회...
아동을 ‘권리 주체’로 존중하는
‘아동권리기본법’ 제정 필요”

코로나19의 교훈도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최근까지 정 원장은 코로나19가 아동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대응 과제를 논의해 왔다.

“코로나19가 아이들에게 미친 영향이 커요. 학업성취도 저하, 미디어 중독, 사회성 감소, 정서적 발달 지연 등 다양한 문제가 나타났죠.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코로나19 대응이 적절했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봐요. 학교가 이렇게 일찍 닫고 늦게 여는 게 맞았나? 오히려 가장 늦게 닫고 일찍 열어야 하지 않았나? 또 학교와 어린이집은 쉬었지만 학원과 지역아동센터는 쉬지 않았거든요. 다시 팬데믹이 온다면 돌봄은 어떻게 이뤄져야 할지, 필수종사자들의 처우 문제, 아이들 문화예술체험 교육을 유지할 수는 없을지 등을 고민하고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팬데믹이 또 오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이야기를 이어가던 정 원장은 “우리 사회 전체가 ‘노키즈존’ 같다”고 탄식했다. “아동 친화적이지 않고, 부모 입장에선 아이가 불편하니까 낳지 않고, 아이가 환대받지 못하는 우리 사회부터 돌아봐야 해요.”

그래서 아동에 대한 차별과 혐오라는 본질적 문제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가 오랫동안 ‘아동권리기본법’ 제정을 촉구해온 이유다. ‘아동은 보호-돌봄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라는 인식의 전환을 강조했다.

“아무리 어려도 자기 의견을 갖고 이야기하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요. 그런 훈련을 해야 성인이 됐을 때 제대로 결정할 수 있고요. 아이들이 디지털 환경에서 범죄와 착취의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미디어 리터러시’를 갖고, 기후위기 당사자로서 환경 문제에 직접 목소리를 낼 권리까지도 아우르는 법입니다. 저희는 나아가 아이들이 다양한 정부 위원회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제안할 계획입니다. 그러려면 주요 정보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쉬운 단어, 그림, 표시 등으로 설명해서 이해를 도와야겠죠. 더 아동친화적인 사회를 만들 준비에도 도움이 될 거고요. 노인과 장애인 등도 함께 사는 데 필요한 변화라고 봅니다. 100년 전에는 우리가 아동권리 측면에선 제일 앞서가는 국가였어요. 1923년 소파 방정환(1899~1931) 선생이 ‘어린이 해방 선언’을 발표했잖아요. 이제 우리가 그런 비전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출범 네 돌을 맞은 아동권리보장원은 아동보호체계 개선, 입양 실무 총괄 지원, 자립준비청년 지원까지 폭넓은 사안을 다루는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정 원장은 취임하면서 세 가지를 약속했다. “인지도를 높이겠다, 건강한 조직문화를 만들겠다, 증거에 기반한 정책운영·지원 기능을 강화하겠다.”

“복지부와 현장의 가교로서 정책이 잘 집행될 수 있도록 돕는 게 저희 역할입니다. 현장 종사자들의 역량 강화를 지원하고, 이분들이 안정된 상황에서 오래 일할 수 있도록 처우 개선 관련 정책 제안 등을 하는 것도 저희 일이고요.

아동권리보장원은 젊은 조직이예요. ‘고인 물’이 없어요. 모두가 열정과 사명감으로 일합니다. 그만큼 쉽게 지치기도 하지요. 취임 후 직원 168명을 한 명 한 명 만나고 있습니다. ‘경주마처럼 달리면서도 옆을 봐야 한다, 중앙기관과 현장의 역할을 고민하고 분배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그간 정책 자문과 조언만 하다가 실제로 실행하는 위치에 왔습니다. 쉽진 않지만 앞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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