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발길을 옮기고 있다. ⓒ뉴시스
시민들이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발길을 옮기고 있다. ⓒ뉴시스

국민의힘과 정부가 실업급여를 축소·폐지하겠다며 연 공청회에서 “여성들, 청년들이 실업급여로 샤넬 선글라스 사고 해외여행을 간다” “달달한 ‘시럽(Syrup)급여’” 발언이 나와 논란을 빚었다. 만약 실업급여가 삭감되면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여성들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경남에서 공무직 행정사무원, 노인센터 사회복지사 등으로 일했던 여성 김모(30)씨는 살면서 두 번 실업급여를 받아봤다. 두 번 모두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에, 계약 만료를 이유로 각각 8개월과 5개월간 월 160만원의 실업급여를 받았다.

당시 자취를 하고 있었던 그는 “(퇴직 후) 소득 요건이 맞지 않아 지자체 월세 지원을 받을 수 없어 막막했는데, 월 100만원 이상이 나오는 실업급여를 통해 생활 안정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흔히 실업급여라 불리는 구직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고용보험 가입 기간이 180일 이상일 것, 근로의 의사와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취업하지 못한 상태일 것, 범죄나 법률 위반 등 중대한 귀책사유로 해고되거나 자발적 이직(퇴직)이 아닐 것, 재취업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할 것 등의 요건을 갖춰야 한다.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 제8차 회의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 제8차 회의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정부, 최저임금보다 실업급여 높아 도덕적 해이 우려... 생활임금에는 못 미쳐

원칙적으로는 퇴직 전 평균임금의 60%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하한액을 최저임금의 80%로 별도 규정하고 있어, 최저 구직급여는 184만7040원이다.

정부는 이 금액이 너무 많아 근로의욕을 고취시킨다는 구직급여 제도의 본래 의미가 퇴색된다는 입장이다. 올해 기준 최저시급인 9620원을 토대로 최저임금 근로자의 세후 월 근로소득을 계산하면 179만9800원이다.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가 실업급여를 임금보다 더 받게 되는 ‘역전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가 의식주만 간신히 때우는 수준을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려면 서울시 기준 월 233만원이 필요하다(2023 서울형 생활임금). 경기도는 월 약 240만원, 충청북도의 경우 약 230만원 등으로 규정하고 있어 실업급여와는 40만원 이상 차이가 난다.

ⓒ통계청
지난해 8월 기준, 고용보험에 가입하는 비정규직은 54%로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통계청

비정규직 중 여성 55%... 남성보다 직장에서 더 쉽게 잘리고 취업도 어렵다

무엇보다 실업급여 삭감은 여성 비정규직을 더 벼랑으로 내모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지난해 약 815만명의 비정규직 노동자 중 여성은 약 450만명(55%)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부가조사, 2022).

게다가 여성은 취업도 어렵다. 지난 6월 기준, 남성 고용률이 77.5%에 달할 때, 여성은 62.1%에 그쳤다. 전체 실업률이 2.7%일 때, 여성 실업률 3%로 0.3%p 높았다. 여성은 직장에서 더 많이 잘리고, 취업을 할 때도 더 높은 문턱을 넘어야 한다는 의미다.

애초에 고용보험에 가입하는 비정규직은 지난해 8월 기준 54%로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 해당하는 경우에도 대체로 근속연수가 짧기 때문에 실업급여 산정에서 불리한 측면이 있다. 같은 시기 비정규직의 절반 이상(54.8%)은 1년 미만으로 일했다. 이 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은 4개월이다. 만약 그 기간 내에 재취업하지 못하면 다시 저임금의 열악한 일자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김모씨의 경우에도 “(첫 번째 실업급여 수급이 끝난 후) 생계를 위해 일하다 보니 회사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고 급하게 (두 번째) 일자리를 구했다”며 “잔업이 많고, 쉬는 날에도 지시사항이 계속 오는 등 시달리다보니 결국 스트레스로 두통, 복통이 왔다”고 호소했다. 그는 결국 두 번째 직장에서 1년을 채 버티지 못했다.

14일 오전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당정의 실업급여 삭감 검토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수진 기자
14일 오전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당정의 실업급여 삭감 검토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수진 기자

“실업급여 삭감하면 비정규직 여성 생계 곤란 심화... 연속적 실업으로 노동시장 불안 커질 것”

노동계는 실업급여 삭감 시 특히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생계유지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실업 상태에서는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실업급여 뿐인데, 삭감한다면 생계 곤란을 더 심화할 것이다”라고 했다. 이어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는 비정규직 여성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만약 실업급여를 받는 대상이 된다고 해도, 더 낮은 실업급여를 받게 된다. 삭감을 감행한다면, 영향은 더 광범위하게 미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는 실업급여 삭감이 오히려 비정규직의 연속적인 실업을 불러올 수 있고, 고용보험 재정과 노동시장을 더 불안하게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실업급여가 삭감되면 생계를 위해 되는대로, 더 낮은 급여를 감수하고도 취업하는 현상이 벌어질 것이다. 그런 일자리에 노동자들은 만족하기 어렵고, 또 이직을 하게 된다”며 “결국 실업급여를 낮추면 노동자는 계속 실업하게 되고, (실업급여) 금액은 적더라도 지급횟수가 많아지게 된다. 이는 노동시장 전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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