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돌봄노동자 건강권 보장 제도개선 방향 모색’ 토론회
근골격계 질환, 폭언·폭행은 산재로 인식 못하는 경우 많아
“돌봄노동 관련법, 서비스 대상자 보호만 강조... 개정 필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정의당 강은미 의원 주최로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돌봄노동자 건강 실태조사 발표 및 돌봄노동자 건강권 보장 제도개선 방향의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강은미 의원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정의당 강은미 의원 주최로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돌봄노동자 건강 실태조사 발표 및 돌봄노동자 건강권 보장 제도개선 방향의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강은미 의원실

한국 사회가 저출산·고령화 국면에 접어들며 돌봄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돌봄을 제공하는 노동자들은 아파도 제대로 쉬지 못하거나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며 오히려 병을 얻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정의당 강은미 의원 주최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돌봄노동자 건강 실태조사 발표 및 돌봄노동자 건강권 보장 제도개선 방향의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이날 자체적으로 진행한 ‘돌봄노동자 건강 실태조사’의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는 지난 6월7~30일 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지원사 등 526명의 돌봄노동자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응답자 526명 중 여성은 92%였고 연령은 50~60세가 62%로 가장 많았다. 5년 미만 근무자가 40.3%로 대다수를 차지했고, 15년 이상 근무한 사람은 8.1%에 불과했다.

연차나 병가, 휴직 등 사용시 대체인력이 투입되는지에 대해서는 39.4%가 투입된다고 답했지만, 투입되지 않는 경우도 35.6%로 나타났다. 현재 보육교사에 한해 대체인력 지원제도가 운영되고 있지만 그 외 직종에는 지원되지 않는다.

이용자 폭력 피해 47%, 유급병가 제도는 “유명무실”

산업재해를 경험했다고 응답한 사람은 18.8%였다. 적지 않은 수지만 노조는 조사결과에 나타나지 않은 ‘숨은 산재’는 더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대진 공공운수노조 정책국장은 “산재가 예상보다 적어 의아했는데, 인터뷰와 간담회를 통해 노동자 스스로 산재로 인식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허리디스크 등 근골격계 질환을 퇴행성 질환으로 여기거나 서비스 이용자(수급자)의 폭언·폭행 등을 산재로 인식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비스 대상자인 어린이, 어르신, 장애인 등 이용자로부터 폭력을 당해본 경험이 있는 노동자는 약 47%에 달했다. 갈등이 발생했을 때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참으라고 하거나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 경우는 34.1%, 서비스 이용자나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경우도 10.5%였다.

‘아프면 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장기요양급여에 유급병가 제도가 마련됐지만, 이를 실제로 시행하는 사업장은 49%로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장기요양급여 세부사항에 따르면, 사업장이 받는 수가에는 돌봄노동자의 유급병가를 위한 비용이 포함돼 있다. 박 정책국장은 “수가로 돈만 받고 주지 않는 곳이 많다. 사실상 횡령에 해당하지만, 건강보험공단에서 전혀 관리·감독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혜란 보육교사가 돌봄노동 현장에서 겪은 일을 증언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제공
신혜란 보육교사는 “산재 신청을 하면 퇴사를 종용하거나 조용히 해고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제공

이런 상황에서 현직 돌봄노동자들은 아파도 참고 버티며 일하고 있다.

최연혜 요양보호사는 “100킬로가 넘는 어르신들도 있는데, 휠체어에 착석할 때 어마어마한 힘을 요구한다. 손목 보호대, 허리 보호대 착용은 기본이고, 땀 닦을 시간도 없어 머리를 손수건으로 질끈 묶기도 한다”며 “연차휴가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내 자리를 동료가 메꿔야 하기 때문에 미안해서 쉴 수 없다”고 말했다.

신혜란 보육교사는 “아이들을 두고 화장실을 갔다가 사고라도 나면 아동학대나 과실치상 등 형사고소가 난무한다. 혹여나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될까봐 물을 마시지 않는 경우가 허다해 많은 교사들이 방광염, 신우신염 등을 앓는다. 하지만 산재 신청을 하면 퇴사를 종용하거나 조용히 해고시키기도 한다”고 호소했다.

권임경 장애인활동지원사는 “이용자가 언제든 호출하면 달려가야 하고, 업무 범위가 정해져 있지 않아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이다. 하지만 시간제라 이 직업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들어 투잡, 쓰리잡을 뛰는 분들이 많다. 바우처 제도보다는 일정한 시간을 일하는 월급제 직업이 돼야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 “법에 돌봄노동자 건강권 포함, 돌봄노동자도 산업안전교육 받도록 개정해야”

전문가들은 돌봄노동과 관련된 법·제도가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여성이 대다수인 돌봄노동 특성을 반영한 성인지적 돌봄안전체계 구축 필요성도 제기됐다.

권남표 직장갑질119 공인노무사는 “2021년 기준 근골격계 질환 산재 승인율은 52%로 전체 평균 70.5%에 비해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성별로는 남성이 72.84%일 때, 여성은 60.44%에 그쳤다”며 “산재심사위원회 위원 중 남성이 95%고, 산재 인정 기준이 남성 중심으로 설정돼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돌봄노동 관련 모든 법령이 서비스 대상자의 보호만 강조하고, 돌봄노동자의 건강권에 대한 내용을 담지 않고 있다. 법안이 치우쳐 있다”며 “법안에 돌봄노동자의 건강권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시행령으로 제외한 산업안전교육을 돌봄노동자들도 받을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은 “호출형 노동의 경우, 시간제더라도 1년의 고용이 보장되는 쪽으로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용자와 연계가 끊어지는 시기에는 교육을 받는 등의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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