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일러스트  ⓒshutterstock
성평등 일러스트 ⓒshutterstock

 

한국사회의 특징을 묘사하라면 국내인, 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단연코 ‘빨리빨리’를 꼽을 것이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것처럼 한국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엄청난 속도로 빠르게 성장하여 선진국 대열로 들어섰다. 휴전 후 지금까지 약 70년 동안, 한국에게 있어 선진국은 추구해야 할 이상이었고, 언젠가는 따라잡아야 할 지향체이기도 했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소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유럽연합(EU) 등에 소속된 국가들과 대등한 수준이 되기 위해, 이들 선진국의 좋은 정책들을 빠르게 벤치마킹하고, 배우고, 제도화 시키는 노력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은 1950년대 순위도 매길 수 없었던 변방의 국가에서 국내총생산(GDP) 세계 10위, 국민총소득(GNI) 세계 10위의 중심부 국가로 도약했다.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 빨리 성장한 국가는 없을 것이다.

국내총생산 세계 10위로 도약
성평등은 세계 105위 하위권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성평등의 성장 속도는 느리다 못해 뒤로 가고 있다. 지난 6월 20일 세계경제포럼(WEF)이 내놓은 세계 젠더격차 보고서(Global Gender Gap Report)에 따르면 한국의 젠더격차 지수는 0.680으로, 전체 146개 국가 중 105위에 머물렀다. 젠더격차 지수는 해당 국가별 남녀간 격차가 얼마나 벌어졌는가를 계산하는 방식으로 하며, 경제적 참여 및 기회, 교육성취도, 보건(건강과 생존), 정치권력 분배에서의 격차가 전체적으로 합쳐진 값이다. 따라서 젠더격차 지수는 그 자체로 한 사회의 성평등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성평등 수준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하위 30%에 해당된다. 다른 부분에서는 선진국을 따라 잡으려고 안간힘을 써서 상위, 최상위권에 도달한 것에 비교하면, 한국사회 성평등의 수준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경제 참여·정치권력분배 가장 퇴보
구조적 불평등 해결 방안 강구해야

더욱 심각한 점은 우리나라의 성평등 지표가 나아지지 않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에서는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가 없다는 것이다. 세계경제포럼에서 조사를 시작한 2006년 이후,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100위권 안팎에 머물러 있다. 최근 몇 년 조금씩 올라가는 추세를 보였는데(2019년 108위, 2020년 102위, 2021년 99위), 이제 다시 105위로 밀려났다. 이와 같이 명백한 수치가 제시되는데도 불구하고 최근 한국사회에서는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고 개인적 차원의 문제만 남아 있다는 식의 발언들이 정치권에서 무책임하게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과의 비교 속에서 어디까지 왔는가를 진단하고, 보다 더 높은 순위로 올라가기 위해 선진국의 법률과 제도를 적극적으로 배우고, 정책적 논의를 통해 제도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변화를 만들어냈던 다른 분야와는 대비된다.

특히 2023년 세계경제포럼 발표는 한국 정부에게 두 가지 과제를 던졌다. 우선 경제적 참여 및 기회 부문은 부문별 순위에서도 가장 낮은 114위였다. 여성의 노동참여율, 임금평등지수, 예상 근로소득에 있어서의 성불평등이 매우 심각함을 보여준다. 또 세계경제포럼은 한국을 피지, 미얀마와 함께 정치권력분배에서 가장 퇴보한 국가로 지적했다. 현 정부는 이제라도 한국 여성이 처한 경제적 취약성과 정치적 주변화가 구조적 불평등에서 비롯됐음을 겸허히 인정하고, 이를 빠르게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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