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효도상품권'을 보면서…
아이의 '효도상품권'을 보면서…
  • 여성신문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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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인가 어버이 날 선물로 초등학생이던 두 아이에게서 '효도쿠폰'을 받은 적이 있다. 알록달록한 색종이를 오려서 만든 효도쿠폰에는 심부름하기, 안마하기, 방 청소 등의 효도 내용과 유효기간이 삐뚤빼뚤하게 써있었다. 재미로 그 효도쿠폰을 몇 번 사용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세월이 흘러 중학생이 된 큰아이가 이번에는 도덕시간 숙제로 '효도상품권'을 만든다고 색도화지와 색연필, 사인펜 등을 마루에 한가득 널어놓았기에 어깨 너머로 슬쩍 들여다보니 책에 '효도권 작성의 예'가 나와있었다. 그 견본을 보고 자신의 독창성을 더해 멋있게 잘 만들어서 제출하는 거라고 했다.



견본을 보니 '효도권'이란 제목 아래 유효기간과 부모님 은혜에 감사 드린다는 효도권 발행 취지, 발행인 이름을 쓰는 자리가 있었다. 그리고는 가운데에 좀 더 큰 글씨로 '방 청소하기' '설거지하기' '15분 안마' '자유이용권'이라고 적혀있었다. 특별히 눈에 띈 것은 '자유이용권'이라고 적힌 종이에 덧붙여 놓은 글귀였다. '분부만 하시옵소서!' 방 청소나 설거지, 안마라고 딱 정해 놓지 않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 드린다는 뜻일 것이다. 효도 자유이용권에 분부만 하시옵소서라니, 재미있어서 웃음이 나왔다.



내가 관심 있어 하니까 아이가 자기의 아이디어를 스케치해놓은 것을 선뜻 보여준다. '자기 방은 자기가 청소하기'상품권은 놀랍게도 유효기간이 평생이었다. 내 입에서 '우와!' 소리가 저절로 나올 수밖에. 숟가락과 포크를 그려 넣은 '식탁 차리기' 상품권 역시 유효기간이 평생이었다. 이럴 수가. 그 외에 '윤슬(동생)이랑 하루 동안 안 싸우기' '웃음짓게 해 드리기'등이 있었다.



자기 방 청소야 하도 잔소리를 들으니 자동적으로 떠올랐을 것이고, 식탁 차리기는 아무래도 시간이 많은 동생이 엄마를 도와 수저도 놓고 컵에 물도 따르고 하니까 좀 미안하지 않았을까. 아무튼 집안 일을 도와야겠다는 마음이 한 구석에 있구나 싶으니 고마웠다.



그러나 유효기간이 평생이라니, 그 과장과 허풍에는 솔직히 피식 웃음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동생이랑 싸우지 않기'상품권에서 '하루 동안'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을 보면 영 자신 없는 일인 듯하다. 그러나 한 번도 안 싸우고 지나가는 날이 없는 연년생 자매 사이에 하루 동안 안 싸우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마지막 '웃음짓게 해 드리기' 상품권이 미완성인 것은 그만큼 어렵다고 여겨서 아직 고민 중인 것 같았다.



아이는 부모가 언제 웃음짓는다고 생각할까. 공부를 잘하거나, 말을 잘 듣거나, 남들에게 칭찬 받을 때가 아니라 어느 순간 이 부족한 어미에게 저렇게 예쁘고 착한 아이를 주시다니, 하면서 고마움에 저절로 웃음짓고 눈물 글썽인다는 것을 아이는 아마 꿈에도 생각지 못할 것이다.



내친김에 아이의 교과서를 들춰보니 공자가 말한 '효'가 실려있었다. “요즘은 부모를 물질로써 봉양하는 것을 효도라고 한다. 그러나 개나 말도 집에 두고 먹이지 않는가. 공경하는 마음이 여기에 따르지 않는다면 무엇으로써 구별하랴” 그리고는 아래에다 설명해놓았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물질적 봉양도 중요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반드시 공경과 정성된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효도의 핵심이다.



어른인 내가 부모님을 위해 '효도상품권'을 만든다면 무엇을 담을 수 있을까. 자주 찾아 뵙기, 하루에 한 번 문안 전화 드리기…. 아니, 아무래도 부모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헤아려보는 것이 먼저일 것 같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것, 사랑과 마찬가지로 효도에도 적용되는 기본 원칙일 테니 말이다.





유경/

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cafe.daum.net/gerontology

treeapp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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