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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보호해 줄 동반자 관계에 대한 법적 지위를 주는 제도가 필요하다.  ⓒPixabay

한국의 가족이 다양한 형태로 변화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제는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가족 다양성 수용 문제를 두고 학계에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최근 가족 관련 학술서적에서 가족의 형태는 다양하다는 설명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가족 다양성의 폭, 관련 법과 정책의 변화 등에 관한 논쟁은 지속되고 있다. 그래도 분명한 건 지금은 가족 다양성 자체가 거부되기보다는 그것을 어디까지 수용할 것인가에 관한 논쟁이 일어나는 중이란 점이다. 더 분명한 건 어쨌든 가족은 점점 다양한 형태로 변화해 왔다는 사실이다.

가족 다양성이 이만큼 수용되기까지의 변화과정을 돌이켜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지금은 매우 일상적으로 수용되는 것이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1인 가구와 여성가구주 가구 증가추이가 인구센서스에 지속적으로 나타났고 이를 1990년대 후반 무렵 한 세미나에서 지적했다가 일축당한 적이 있다. 그건 서구사회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응수였다. 어떤 여성단체는 1인가구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1인가구와 여성가구주가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한국가족 변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되었다. 2000년대 중반 무렵에는 이혼증가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이혼에 대한 질타와 편견이 논란이 되었다. 그래도 이혼은 증가했고 이제 이혼에 대한 허용의식도 높아졌다.

이처럼 가족 다양성 논쟁은 1인 가구, 여성가구주 가구, 이혼 가구처럼 지금은 특별하게 여겨지지 않는 가족 형태들을 둘러싸고 일어났다. 이런 가족 형태들을 두고 한때는 받아들이면 사회 근간이 무너질 것처럼 걱정했었던 것이다.

가족 변화에 대응하여 법과 정책도 달라져 왔는데 논쟁을 통해서였다. 이혼으로 인한 모자가구나 부자가구 또는 1인가구를 위한 경제적 정서적 지원정책이 이혼이나 비혼을 부추긴다는 반대가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번 양보해서 이혼가정에 대한 지원정책이 이혼에 대한 허용적인 문화를 조장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이혼가정을 정책의 사각지대에 방치한다면 그 안에서 성인은 차치하더라도 자라나야 할 아이들의 삶은 어찌할 것인가. 법과 정책은 사회변화에 대응해야만 한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시민동반자법이 논란이 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동성 파트너 관계 등 성소수자 이슈가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시민동반자법과 같은 새로운 친밀한 관계에 관한 제도는 성소수자의 권리와만 연관되어 있지 않다. 더욱이 이 문제를 섹슈얼리티 이슈로 축소하여 이해하는 것은 이해의 폭을 좁힌다. 이것은 친밀성의 문제이고,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또 이 문제는 서구사회를 흉내내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서구화를 맹목적으로 따를 이유가 없지만, 사회의 많은 변화들이 ‘서구화’라는 질타를 통과해 왔던 사실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차이와 다양성을 맞닥뜨리게 되는 문화혼융의 시대에 걸맞은 역량과 성찰이 필요하다.

한국사회에도 보살핌이라는 매일매일의 생존문제 때문에 시민동반자법과 같은 새로운 제도를 필요로 하는 삶들이 많다. 현실적인 이유에서 동거하는 커플들이 많기 때문인데, 이것은 젊은 층에 국한되지 않고 노인층에도 많다. 노인의 동거는 사별이나 이혼 후에 동거하는 경우들인데 재혼에 대해서는 유산상속과 양측의 의부모자녀 관계 발생 등의 문제 때문에 자녀들이 반대하는 경우가 많고, 노인 당사자들도 가족관계의 재편보다는 파트너와의 친밀한 유대만을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수술 동의서 등 중요결정과 중요 정보제공 등의 문제에서 이들 반려관계는 소외되어 실질적인 어려움이 발생한다.

이에 이런 맥락에서 서로를 보호해 줄 동반자 관계에 대한 법적 지위를 주는 제도가 필요하다. 한국사회 변화가 빠르고 가족변화도 빠르다. 성평등과 자녀 돌봄제도를 제대로 만들지 못해 저출산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처럼, 지금 변화에 대응할 기회를 또 놓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돌봄공백과 실종을 우려하는 시대에 그나마 이뤄지고 있는 다양한 돌봄 관계들을 지원하기 위한 숙고에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 

박혜경 충북여성재단 대표이사
박혜경 충북여성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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