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애 연극 ‘우리 읍내’ 개막
26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21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 연극 ‘우리 읍내’ 프레스콜 현장. ⓒ국립극장 제공
21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 연극 ‘우리 읍내’ 프레스콜 현장. ⓒ국립극장 제공

배우들이 웃으며 노래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합창하는 이들 사이에서 두 배우가 빠르게 손을 움직여 노래했다. 객석에도 옆 사람에게 손을 움직여 수어로 대화하는 이들이 여럿이었다. 음성언어와 수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통역하는 이들도 있었다. 120분 동안 무대에서도, 객석에서도 수어와 음성언어가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뒤섞였다. 커튼콜 때는 박수치는 손들, 양 손바닥을 펴고 위로 향한 채 ‘반짝반짝’ 흔드는 손들이 조명 아래 함께 빛났다. 섞일 수 없을 줄 알았던 두 세계가 이곳에선 하나였다.

지난 22일 개막한 국립극장 연극 ‘우리 읍내’는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무는 유쾌하고 즐거운 공연이었다. 농인(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청각장애인) 배우 2명과 청인(음성언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비장애인) 배우 14명, 총 16명이 함께 무대에 섰다. 배우들은 수어와 음성언어로 대사를 주고받으며 작은 마을의 평범한 일상을 빚어낸다.

미국 극작가 손턴 와일더의 동명 희곡이 원작이다. 1938년 발표해 퓰리처상을 받은 이후 세계무대에서 꾸준히 공연된 작품이다. 미국 뉴햄프셔주 작은 마을의 일상을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던진다. 총 3막으로 1막은 마을의 하루, 2막은 성장과 결혼, 3막은 죽은 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번 공연은 임도완 연출가가 각색과 연출‧음악을 맡아 원작의 큰 틀은 유지하되 시대‧지역적 배경, 등장인물 설정을 바꿨다. 그렇게 탄생한 ‘우리 읍내’는 1980년대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 읍내를 배경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공존하는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송대관의 ‘해뜰날’을 부르며 동네를 도는 우유 배달부, 유학파 성악가 출신으로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고초를 겪은 성가대 지휘자 등 시대의 분위기를 드러내는 설정을 더했다. 극을 여닫는 주제가는 임 연출가가 만든 곡으로, 삶과 죽음을 아름답게 노래한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가사로 썼다.

21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 연극 ‘우리 읍내’ 프레스콜 현장. ⓒ국립극장 제공
21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 연극 ‘우리 읍내’ 프레스콜 현장. ⓒ국립극장 제공

무대 장치와 소품은 극히 적다. 배우들의 연기가 빛나는 극이다. 특히 농인 배우 최초로 제58회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여자연기상 후보에 올랐던 박지영(황현영 역) 배우, 신문배달부 겸 수어 통역을 맡은 김우경 배우의 활약이 놀랍다. 농인 예술단체 핸드스피크 소속 김 배우는 맑은 눈빛과 장난꾸러기 같은 이미지로, 임 연출이 보자마자 캐스팅했다고 한다.

작품 제작 단계에서 전문 수어 통역사 10명이 참여 농인 배우와 청인 배우, 제작진 간 대화를 통역했다. 극중 황현영의 가족 황혁찬(성원)‧유혜종(이정은)‧황현창(임채현), 연인 김민규(안창현) 역 배우들도 수어를 익혀 농인 가족의 일상을 생생히 연기했다. 3막에서 째깍거리는 시계, 마당의 해바라기, 포근한 이불 등 일상의 순간을 포착하는 황현영의 독백이 침묵 속 수어로 펼쳐지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21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 연극 ‘우리 읍내’ 프레스콜 현장. ⓒ국립극장 제공
21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 연극 ‘우리 읍내’ 프레스콜 현장. ⓒ국립극장 제공
21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 연극 ‘우리 읍내’ 프레스콜 현장. ⓒ국립극장 제공
21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 연극 ‘우리 읍내’ 프레스콜 현장. ⓒ국립극장 제공
21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 연극 ‘우리 읍내’ 프레스콜 현장.
21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 연극 ‘우리 읍내’ 프레스콜 현장.

전지적 관점의 해설자로 작품을 이끄는 무대감독 역은 연극 ‘보이첵’, ‘휴먼 코미디’ 등으로 임 연출가와 호흡을 맞춰온 구본혁 배우가 맡아 진행, 연기, 노래, 랩까지 다재다능한 면모를 보여준다. 무대디자이너 정승호, 조명디자이너 신호, 의상·장신구 디자이너 이주희 등 관록의 제작진이 합세했다.

“농인 배우들과 청인 배우들이 함께 작품을 만들어 가는 작업이 쉽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그만큼 많이 고민하고 소통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무대에서 느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박 배우) “음성언어나 수어, 어떤 형태든 언어를 알아듣는다고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각색 과정에서 농인 가족을 등장시켜 침묵이 흐르는 수어의 순간에 서로의 마음속 헤아림의 언어를 들려주고자 했다.” (임 연출가)

무장애 공연이다. 모든 회차의 무대에 수어 통역사 5명, 음성 해설사 1명이 올라 실시간으로 통역한다. 누구나 현장에서 FM수신기를 빌려 음성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남녀노소 누구나 즐겁게 관람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공연이다. 6월25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예매·문의 02-2280-4114 www.ntok.go.kr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