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구본창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 대표 ①
양육비 못 받아 밥 굶는 코피노에 활동 결심
유흥업소·조폭과 육탄전 벌이기도
"나쁜 부모 신상공개, 사적 제재 아닌 사회 고발...
양육비 미지급자 고발 막히면 학폭 고발도 막혀"

구본창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 대표 ⓒ박상혁 기자
잘나가는 입시학원 원장이었던 구본창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 대표는 필리핀에서 양육비를 받지 못해 밥을 굶는 코피노들을 만나며 그들을 대신해 양육비 소송을 지원하기로 마음 먹었다.  ⓒ박상혁 기자

구본창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양해들) 대표는 애초에 양육비 문제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잘나가는 입시학원 원장으로 큰 부를 얻었으며, 아내, 두 자녀와 돈독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40대 이른 나이에 경제적 자유를 얻은 그는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연인’이 되고 싶어 학원장 직을 내려놓고 쉴 곳을 찾아다녔다.

그러던 그가 돌연 태도를 바꿔 양육비를 주지 않는 ‘나쁜 부모’들의 신상을 인터넷에 공개하고, 때로는 직접 찾아가 양육비를 받아내는 등 ‘나쁜 부모 저격수’를 자처하기 시작했다. 초상권 침해와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29건의 고소를 당한 그는 1심에서 신상 공개의 공익성이 인정돼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2심에서는 유죄로 뒤집혀 벌금 100만원에 선고유예를 선고받았다.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구 대표는 “신상공개는 사적 제재가 아닌 사회 고발”이라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구 대표는 4년에 걸친 재판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워지자 대법원에 판결을 서둘러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또한 양육비 구제 활동에 지쳐 ‘이제 정말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을 매일같이 하고 있다. 자연인을 꿈꾸던 그가 법적 분쟁과 번아웃에도 불구하고 양육비를 받지 못한 아이들을 계속해서 돕는 이유는 무엇일까.

잘나가던 입시학원 원장, 코피노 양육비 받으려 육탄전도

구본창씨가 2017년 필리핀 앙헬레스 지역 빈민가 아동들에게 무료 급식을 나눠주는 모습. ⓒ구본창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 대표
구본창씨가 2017년 필리핀 앙헬레스 지역 빈민가 아동들에게 무료 급식을 나눠주는 모습. ⓒ본인 제공

1963년생인 구본창 대표는 입시 학원 영어강사로 이름을 알리며 12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다 2003년 서울 강서구에 대성학원을 차리고 7년가량 원장으로 일했다. 19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13시간씩 일하다 보니 ‘이게 무슨 삶인가’ 싶어 48세 젊은 나이로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강원도 산에 들어가 외부와 단절한 채 자연인으로 살아가려고 했으나, 아내의 권유에 따라 유학을 목적으로 아내와 두 딸이 머물고 있는 필리핀으로 행선지를 정했다. 

필리핀에는 한국인 아빠한테 버림받은 코피노(한국인과 필리핀인 사이의 혼혈아)가 5만 명 정도 있다. 코피노 맘들은 한국인 아빠에 양육비를 청구하고 싶어도 연락이 닿지 않거나 소송 비용이 없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구 대표는 우연히 "살면서 들어본 적 없는" 필리핀 여성의 서러운 울음 소리를 듣게 됐다. 필리핀 여성은 대학 시절 한국인 유학생과 교제하며 유학생을 본인 집에 들이고 아이를 낳았다. 한국인 유학생은 결혼 허락을 받고 오겠다고 한국으로 떠난 뒤 종적을 감췄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는 병에 걸려 세상을 뜨고 말았다.

필리핀 여성은 아이 아빠가 한국 거주지 주소를 적어주고 갔다며 구 대표에게 그를 찾을 수 있는지 물었다. 쪽지에는 ‘guegyol minni 18 Korea(그걸 믿니 18 한국)’이라고 적혀 있었다. 구 대표는 차마 필리핀 여성에게 쪽지의 뜻을 말하지 못하고 아이 아빠를 찾아보겠다고만 말했다. 구 대표는 이 사건을 계기로 2013년 시민단체 WLK(We Love Kopino)를 설립해 양육비 소송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구본창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대표로 전송된 메시지 ⓒ구본창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 대표
구본창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대표로 전송된 메시지 ⓒ구본창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 대표

구 대표는 양육비를 받아내기 위해 육탄전도 서슴지 않았다. 유흥업소에서 일하거나 조폭 출신의 한국인 아빠들은 코피노 맘들을 찾아가 소송을 취하하라며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는데, 구 대표는 운동선수 출신의 용병을 고용해 코피노 맘들을 보호하거나 양육비 미지급자들이 운영하는 업소에 찾아가 실랑이한 끝에 양육비를 받아냈다. 그는 “물리적 개입은 엄밀히 따지면 사적 제재지만, 이 방법 말고는 양육비 미지급자들이 돈을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필리핀에 거주하는 한인 커뮤니티에서 구 대표는 깡패로 소문났다. 7~8년 전 한국 방송에서는 그를 “양육비 브로커”로 소개하며 수수료를 명목으로 막대한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구 대표는 “코피노 맘들에 수수료를 받은 것은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다만, WLK의 도움으로 양육비를 지급받은 이들에 한정해서 수수료를 받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변호사 선임과 용병 고용, 양육비 추심 과정에는 큰 돈이 드는데, 코피노 맘이 이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구 대표 사비로 사건을 진행한 뒤 양육비를 받아내는 데 성공하면 그 중 일부를 수수료 명목으로 받아 활동가들의 인건비를 지불한다.

양육비를 받아내지 못하면 일체 수수료를 받지 않기 때문에, WLK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수익구조를 가졌다, 지속 가능한 활동을 위해 WLK는 필리핀 민다나오섬에서 활동하는 이슬람 반군들이 납치한 사람들을 구해내는 용병 사업으로 손해를 보전하는 방식을 취했다.

‘나쁜 부모 신상공개‘는 사적제재 아닌 사회고발

구본창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 대표 ⓒ구본창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 대표
구본창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 대표 ⓒ구본창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 대표

아내와 두 딸이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구 대표는 WLK 활동을 계속했다. 그러다 2018년 아이들을 보러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양육비 미지급자 신상공개 사이트 ‘배드파더스’ 개설을 준비 중인 운영진들을 만났다. 양육비이행관리원과 여성단체 출신 여성들로 구성된 이들은 사이트 개설 시 신상이 공개된 양육비 미지급자들이 폭력을 행사할까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논의 끝에 구 대표가 외부 활동을 맡고 운영진의 정체는 비밀로 숨기는 것으로 배드파더스 활동을 시작했다.

배드파더스는 2021년 10월 활동을 종료할 때까지 천여 건의 양육비 문제를 해결했다. 여성가족부에서 양육비 체납자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발표하자 사이트의 소명을 다했다고 판단해 문을 닫았으나, 사진 없이 일부 정보만 공개하는 여가부의 정책은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해 지난해 2월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로 이름을 바꾸어 활동을 재개했다. 구 대표는 “이제는 나쁜 부모에 신상 공개 사전 고지만 해도 양육비를 지급하는 사례가 많다”며 본인들의 활동이 양육비 해결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배드파더스부터 양해들까지, 이들의 나쁜 부모 신상 공개에 국가가 처벌해야 할 문제를 민간이 나서서 처벌하는 ‘사적제재’가 아니냐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사적제재는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어 중범죄로 취급된다. 범죄자 신상공개에 나선 다른 사이트들은 명예훼손 등의 이유로 대부분 폐쇄 당했다. 양해들은 사이트 폐쇄조치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구 대표는 초상권 침해와 사실적시 명예훼손 등으로 29명에 고소를 당해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2심에 불복한 구 대표는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양해들의 신상 공개는 사적제재가 아닌 사회고발’이라고 단언한다. 양육비를 지급하라는 법원의 명령을 듣지 않는 이들에 한해 신상 공개를 결정하고 있으며, 그마저도 공개 전 사전 고지를 통해 양육비를 지급할 기회를 주고 있어 타 사적제재 사례와 다르게 봐야 한다는 이유다.

그에게는 양해들의 정당성을 밝히는 일 외에도 무죄를 받아야만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미투 운동이나 학교폭력 피해자들은 자기들이 피해당한 사실을 외부에 알리면서부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양해들이 유죄 판결을 받아 나쁜 부모들을 고발할 수 없게 되면 다른 피해자들의 고발도 막히게 되기 때문이다.

구 대표는 4년에 걸친 재판과 싸움에 지쳐 ‘매일같이 활동을 그만둘까 생각한다’면서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거룩한 신념 같은 건 없다. 양육비만 받으면 꼬마들이 밥을 먹을 수 있는데, 외제차 끌고 금목걸이 끼는 이들이 자신들에게는 큰돈도 아닌 양육비를 주지 않아 아이들을 굶기는 게 너무 잔인하다”며 나쁜 부모들을 고발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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