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과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 중국, 일본의 관계가 최근 미묘한 변화 흐름을 보이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16일 중국을 방문해 4년8개월 만에 베이징 고위급 회담을 갖는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달 김정일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으며 북한도 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못 만날 이유가 없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윤석열 정부들어 남북관계는 극도로 악화됐다. 최근 한국과 중국은 정상적인 외교 관계에서는 보기 어려울 정도로 막말을 주고 받고 있다. 미국과 일본에 경도된 외교를 펼치면서 고립될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블링컨 미 국무 중국 방문…"지금은 외교의 시간"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15일(현지시각) 국무부에서 '인신매매 실태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미 국무부 홈페이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미 국무부 홈페이지

지난 2월 중국 정찰풍선의 미국 본토 영공 침입사태로 전격적으로 연기됐던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의 중국 방문이 4개월 만에 재성사됐다.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은 "지금이 정확히 치열한 외교를 할 시간이다. 이것은 전략적인 전환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16일(현지시각) 워싱턴DC를 출발해 19일까지 베이징을 방문한다.

블링컨 장관은 오는 18∼19일 이틀간 베이징에서 중국 고위 관리들과 만나 미중 관계를 책임 있게 관리하기 위해 양국 간 열린 소통 채널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국무부가 발표했다.

중국 외교부도 이날 "중국과 미국의 쌍방 협의를 거쳐 블링컨 장관이 18∼19일 중국을 방문한다"고 밝혔다.

미국 국무장관의 방중은 블링컨 장관 취임 후 처음이자, 전임 트럼프 행정부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이 지난 2018년 10월 다녀온 뒤 약 4년8개월만이다.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은 고위급 소통 재개가 바이든 행정부 중국 정책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서로의 의도에 대한 명확한 그림이 중요한 진전이며 특히 현재 미중관계에서는 그렇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미중 양국은 작년 8월 낸시 펠로시 당시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관계가 급랭하면서 대립했으나 작년 1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표면적으로는 대화의 장으로 이동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 관리들은 블링컨의 방문이 앞으로 몇 달 안에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과 지나 레이몬도 상무장관의 방문 가능성을 포함한 더 많은 양자 회담을 위한 길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캠벨 조정관은 "앞으로 몇 차례의 방문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최근 미중 간 고위급 접촉이 재개된 가운데 미국 외교사령탑이 중국을 오랜만에 방문하게 돼 미중 관계의 변화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대화 가능성 뜸들이는 북한 일본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AP/뉴시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AP/뉴시스

박상길 북한 외무성 부상(차관)은 지난달 29일 선중앙통신에 공개한 담화에서 “만일 일본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변화된 국제적 흐름과 시대에 걸맞게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대국적 자세에서 새로운 결단을 내리고 관계 개선의 출로를 모색하려 한다면 조·일 두 나라가 서로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공화국 정부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박 부상은 “지금 일본은 ‘전제조건 없는 수뇌회담’에 대하여 말하고 있지만 실지에 있어서는 이미 다 해결된 납치 문제와 우리 국가의 자위권을 놓고 그 무슨 문제해결을 운운하며 조·일 관계개선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데 대한 북한 측 반응이다. 

기시다 총리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북일 정상회담을 조기에 실현하기 위해 북한과 고위급 협의를 갖기를 원한다고 밝혔다고 교도통신이 27일 보도했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도쿄에서 열린 일본인 납북자의 귀국을 촉구하는 국민 대집회에서 일본인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김 위원장과 조건 없이 만날 의사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2002년 북일 정상회담 이후 북한에 의한 일본인 피해자의 귀국이 실현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 대해 "통한의 극치"라며 "정부로서는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북·일 대화가 성사되기까지는 각종 난관이 놓여있다. 일본의 주요 현안인 납북자 문제를 놓고 북한은 이미 해결됐다는 입장이라 접점을 찾기 쉽지 않아 보인다. 

일본은 자국민 17명이 납북됐으며 2002년 일시적 귀환 형태로 돌아온 5명을 제외한 12명이 북한에 남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12명 중 8명은 사망했고, 나머지 4명은 아예 북한에 오지 않았다며 해결할 납치 문제가 지금은 없다는 입장이다.

대통령까지 나서 중국 공세

윤석열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각) 발리 한 호텔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윤석열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각) 발리 한 호텔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지난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나 미·중 패권 경쟁을 두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중국의 패배를 배팅하는 이들이 반드시 후회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발언이 알려진 뒤 윤석열 대통령은 중국대사의 최근 한국 외교 비판 발언은 외교적으로 부적절했다며 불쾌해 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13일 오전 대통령실에서 열린 비공개 국무회의에서 "싱하이밍 대사의 태도를 보면 외교관으로서 상호 존중이나 우호 증진의 태도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하면서 "우리 국민이 불쾌해 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이날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최근 발언에 문제를 지적하면서 “중국 측에 숙고해 보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상대국에 이런 강경발언을 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외교적인 사태해결을 위한 해법은 봉쇄될 수 있다.

중국은 싱하이밍 한국주재 중국 대사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한 한국의 조치 요구를 사실상 거부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한국의 조치 요구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즉답을 피한 채 싱 대사의 발언은 다양한 인물들과 만나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히려는 대사 본연의 임무에 따른 것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왕 대변인은 "일부 한국 매체가 싱하이밍 대사 개인을 겨냥해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심지어 인신공격성 보도를 한 점에도 주목한다"며 "유감스럽다"라고 말했다.

싱 대사가 부인과 함께 울릉도 리조트 무료 숙박을 제공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한 한국 신문의 보도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왕 대변인은 싱 대사가 한국 측 인사와 만난 건 직무일 뿐이란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크게 부각할 화제가 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한국이 9일 싱하이밍 대사를 외교부로 초치해 항의하자 하루 뒤인 중국도 정재호 주중 한국 대사를 불러 항의했다.

눈에는 눈...남북공동선언일에 화력 대결

15일 경기 포천 승진훈련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참관한 가운데 실시된 '2023 연합·합동 화력격멸훈련'에서 K2 전차가 기동하며 포사격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15일 경기 포천 승진훈련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참관한 가운데 실시된 '2023 연합·합동 화력격멸훈련'에서 K2 전차가 기동하며 포사격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경기 포천 승진훈련장에서 실시된 2023 연합합동화력격멸훈련을 참관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참관은 "강한 국군이 지키는 평화를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합합동화력격멸훈련은 한미 연합전력과 육해공 합동전력이 최신 무기를 동원해 벌이고 있는 일종의 화력시범이다. 지난달 25일부터 이날까지 모두 5차례 열렸다.

북한은 이날 는 오후 7시 25분부터 37분까지 동해로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북한은 탄도미사일 발사 직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국방성 대변인 명의로 ‘경고 입장’을 발표했다. 국방성 대변인은 “남조선 주둔 미군과 괴뢰군은 각종 공격용 무장 장비들을 대대적으로 동원하여 우리 국가를 겨냥한 ‘련합합동화력격멸훈련’이라는 것을 벌려놓고 있다”며 “이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6월 15일은 사상 최초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로 탄생한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된지 꼭 23년이 되는 날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지난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는 등의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14일 북한의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해 447억원을 배상하라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했다. 원고는 대한민국이고 피고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정부가 북한 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천치바보'라고 비난하는 등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정부도 한치 물러섬이 없이 강대강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조선중앙TV 갈무리
ⓒ조선중앙TV 갈무리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국회에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23주년 기념 토론회' 기조연설에서 "이제 더는 미루지 말고 남북, 한미, 북미가 이미 합의했고 중국도 동의한 '4자 평화회담'을 개최를 (한국이) 주도해 군사 정전체제를 평화 체제로 전환하는 '평화 만들기' 과정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 전 장관은 2000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특사로 방북해 남북정상회담과 '6·15 남북공동선언'을 끌어냈다. 

임 전 장관은 먼저 "한국은 6·15 정신을 살려 남북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면서 "북한을 적대시하고 전쟁 불사, 흡수 통일 등을 주장하며 실패한 '선(先) 핵 폐기, 후(後) 관계 개선'을 고집한다면 남북 관계는 개선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은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며 "평화를 보장하고 핵무기가 필요하지 않은 안보 환경과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북한에는 "핵 무력을 완성했다며 무리한 모험을 할 것이 아니라 다시 협상에 나서야 한다"면서 "핵 강국 소련의 붕괴로 핵무기가 체제와 경제 발전을 보장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임 전 장관은"세계가 진영 중심의 패권 경쟁에 돌입한 상태에서 긴 안목으로 보면 국익을 지키고 평화를 살피는 '균형 외교'가 나아갈 지향점"이라고 강조했다.그러나 현재의 남북관계는 대화를 논하기에는 너무 강하게 대치하고 있다. 북한에 가장 영향력 있는 중국과 한국과의 관계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처럼 멀어져 있다.

미국과 중국, 일본과 북한의 관계가 이른 시일안에 개선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개선될 조짐을 보인다면 한국의 입장은 아주 난처해질 수 있다는 것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북한이 통미봉남(通美封南. 미국을 통해서 한국을 봉쇄) 정책을 펼 가능성이 있으며 중국은 경제, 외교적인 측면에서 한국을 압박할 수 있다.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갖고 있는 상임이사국이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