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인 사이 자녀 나몰라라… 전세 보증금도 갈취
잠적 뒤에도 성폭력 자문 변호사로 활발히 활동
양육비 이행명령에도 아랑곳 않고 위장전입

ⓒ여성신문
잠적 뒤 양육비를 주지 않는 변호사 B씨는 교육청 성희롱·성폭력 외부전문위원, 성폭력통합지원 해바라기센터 국선변호사 등으로도 활동해왔다. 현재는 한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며 3억원 상당의 외제차를 몰고 있다.ⓒ여성신문

직장인 A씨는 새로 이직한 회사의 법무이사인 변호사 B씨와 교제를 시작해 사실혼 관계로 두 명의 자녀를 갖게 됐다. B씨는 둘째를 임신한 A씨에 “급히 갚을 돈이 있으니, 전세 보증금 1억 2000만원을 내게 주면 ‘변호사 대출’을 받아 우리가 살 집을 알아 보겠다”며 거액을 요구했다. A씨의 전세 보증금 대부분은 은행 대출이었고 만기가 몇 달 남지 않았지만, B씨가 아이 아버지기에 순순히 보증금을 넘겼다.

변호사 B씨는 보증금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A씨와의 모든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A씨는 둘째를 낳고 기력이 허해진 몸을 이끌고 사라진 B씨를 찾아다녔다. 그를 수소문한 결과, 이혼한 줄로만 알았던 B씨는 법적으로 혼인한 배우자가 있었고, 또 다른 사실혼 관계의 C씨를 포함해 세 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다섯 명의 아이들을 낳고 잠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잠적 후에도 변호사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교육청 성희롱·성폭력 외부전문위원, 성폭력통합지원 해바라기센터 국선변호사에 이름을 올려 인권 변호사로도 알려져 있다. 현재는 서울 강남의 한 법률사무소에 근무하며 3억원 상당의 외제차를 몰고 있다.

반면, A씨는 돈을 들고 잠적한 B씨에 충격을 받아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전세 대출금을 갚지 못해 빚더미에 나앉게 됐으며 시민단체들의 도움으로 겨우 기초수급자 자격과 임시 거처를 얻었지만, 어린 자녀를 키우기에는 벅찬 상황에 놓여 있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B씨에 수 차례 문의했으나, B씨는 어떤 답도 내놓지 않았다.

법원 명령에도 숨으면 그만…“나쁜 부모들의 위장전입은 전통”

지난 5월 A씨와 양해연 회원들이 B씨의 등본 상 거주지에 찾아가 시위를 진행했다. ⓒ양해연
지난 5월 A씨와 양육비해결총연합회 회원들이 B씨의 등본 상 거주지에 찾아가 시위를 진행했다. ⓒ양육비해결총연합회

양육비 안주는 ‘나쁜 부모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양해들)의 구본창 대표는 양육비를 요구하고자 B씨의 주민등록등본 상 거주지를 찾아갔다. 문을 두드리자 B씨의 모친이 나와 “내 아들은 여기에 살지 않고 연락도 안 된다”고만 했다. A씨와 양육비해결총연합회(양해연) 회원들이 집 앞에 찾아가 시위까지 했지만 B씨의 행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양육비 지급을 피하는 나쁜 부모들이 실거주지가 아닌 가족·친척 집으로 위장전입하는 문제는 일종의 ‘전통’이라고 했다. 양해연 자체 조사 결과, 양육비 미지급자 중 단 25%만 실거주지이고 나머지 75%는 위장전입 등 주거지 불분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나쁜 부모들 대다수가 위장전입을 선택하는 이유는 현재의 양육비 추심 제도로는 숨어있는 양육비 채무자를 추적하기 어려워서다. 양육비 채무자가 양육비 이행명령을 받아도 계속해서 양육비를 주지 않으면 신체를 구속하는 감치명령까지 내릴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감치명령 집행률은 5.6%로, 감치명령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신체를 결박당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원이 통지서를 피하는 채무자에게 감치 명령을 내리지 않는 등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겨우 감치명령이 결정돼도 나쁜 부모들은 양육비를 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제도상 양육비 채무자가 6개월 동안 감치 집행을 피하면 기간 만료로 명령이 해제된다. 경찰과 주민센터 직원들에게 양육비 채무자를 추적할 권한이 없어, 등본 상 주거지에 찾아가 문을 두드리고 부재 시 돌아가기를 6개월간 반복하면 양육비 채무자는 다시 자유의 몸으로 돌아간다.

양육비이행법 개정으로 감치명령 결정된 뒤에도 양육비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 이들에 △운전면허 정지 △명단공개 △출국금지 △형사 처벌 등의 제재를 가할 수 있다. 이러한 조치들을 피하려 밀린 양육비를 지급한 사례가 나오기도 했으나, 밀린 양육비를 지급해 제재들을 해제한 뒤 다시 잠적해 앞으로 지급할 양육비에 침묵하는 문제는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다.

대안은 이미 나와 있다, 입법이 되지 않을 뿐

양육비이행법 및 양육비대지급법 최근 의안 현황 ⓒ국회 홈페이지 캡처
양육비이행법 및 양육비대지급법 최근 의안 현황. 사진=국회 홈페이지 캡처

현재의 양육비 제도의 가장 큰 맹점은 “나쁜 부모가 악의를 품으면 얼마든지 양육비 지급을 회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보완하는 다양한 법안이 발의되어 있으나, 실제 입법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2021년 6월 9일자 전주혜 의원의 대표발의안은 양육비 채무자의 동의 없이도 소득·재산 조회를 가능하게 하고, 양육비 청구 및 이행에 대해 공시송달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시송달이 적용되면 위장전입 등으로 거주지 확인이 불가능할 때 주민등록상 주소로 서류를 보내면 받은 걸로 간주하고 감치명령 절차를 집행할 수 있다.

실효성이 낮은 감치명령을 내리기 전부터 제재조치를 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올해 1월 18일자 유정주 의원 대표발의안은 운전면허 정지, 출국금지, 신상공개 등 감치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내려지던 조치들을 양육비 지급 이행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때부터 내릴 수 있게 바꾸는 내용이다. 감치명령 절차를 생략하면 현재보다 1년가량 빨리 비양육자에 제재를 가할 수 있게 된다.

국가가 양육자에게 양육비를 먼저 지급하고 비양육자에 청구하는 ‘양육비대지급제’도 나온다. 올해 3월 23일자 장경태의원 대표발의안은 비양육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2회 이상 양육비 지급을 이행하지 않으면 국가가 양육비를 대신 지급하고 양육비 채무자에게 통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후 불이행이 있으면 국가가 국세 강제징수의 예에 따라 채무자로부터 양육비를 징수한다.

이들은 모두 소관위인 여성가족위원회에 계류 중에 있다. 한부모와 지원단체들은 양육비가 아이들의 생존권과 직결됨을 고려해 이 같은 발의안들을 조속히 입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부모 A씨는 “양육비 미지급 문제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아동이다, 비양육자가 아동의 권리를 대신 받아주는 일을 왜 막느냐. 우리 애를 짐짝 취급하고, 양육자를 죄인 취급하는 느낌이 든다”고 토로했다.

이영 양해연 대표는 “감치 집행율과 양육비 지급 이행율 모두 극도로 낮은 상태에서 아이들은 성장기 전반에 걸쳐 피해를 입고 있다. 양육비 채무자가 양육비를 줘야 한다는 사실과 장기간 미지급하면 처벌받는다는 사실 모두 모를 리가 없는데, 채무자에게 불이익이 갈 수 있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필요한 발의안들을 보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 유튜브 캡처
ⓒ윤석열 대통령 유튜브 캡처

구본창 양해들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양육비선(대)지급제를 공약했으나 당선 후 한 마디 말도 없이 파기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짧은 영상으로 공약을 소개하는 '59초 쇼츠' 21번째 시리즈에서 악의적으로 양육비를 주지 않는 나쁜 부모 사례에 대해 정부가 피해자에게 우선 양육비를 지급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구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양육비대지급제를 약속했으나 인수위원회 핵심과제에서는 빠졌다”면서 “이후 정부는 양육비대지급제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공약을 파기할 수는 있지만, 왜 파기하게 됐는지 양해를 구하는 과정이 있어야 했다”고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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