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1일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 앞에서 열린 이주노동자 차별철폐 집회 현장. 민주연합톨게이트지부몸짓패 ‘민패’가 공연을 하고 있다. ⓒ정보라 작가 제공
지난 4월21일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 앞에서 열린 이주노동자 차별철폐 집회 현장. 민주연합톨게이트지부몸짓패 ‘민패’가 공연을 하고 있다. ⓒ정보라 작가 제공

4월과 5월은 몹시 바빴다. 4월25일~27일까지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열리는 보고타 도서전에 참석했다. 보고타는 서울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비행기로 약 11시간 걸리는데 또 7시간 남짓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정말로 머나먼 도시였다.

떠나기 직전인 4월21일 이주노동자 차별철폐 집회에서 한영 통역을 했다. 이 집회는 ‘비정규직이제그만 공동투쟁’이 비정규직 임금인상과 노란봉투법 입법 등을 위해 기획한 전국순회 투쟁의 하나다. 대구경북이주연대회의와 함께 주최한 집회로 대구시 출입국외국인사무소 앞에서 진행됐다. 집회를 여는 동안에도 이주노동자들이 계속 찾아왔다. 출입국사무소 위층엔 미등록이주민(‘불법체류자’가 아니다)들이 억류돼 있었다. 취약한 위치에서 고통받는 분들께 이주노동자센터와 이주노동자연대회의, 노동조합 등 이주노동자들이 부당하거나 위험한 일을 겪으면 도움을 청할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려고 영어 통역을 프로그램에 추가한 것이다. 

집회의 주요 의제는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새로 거론되는 이주민 가사노동자법에 대한 반대운동이었다. 이중 이주노동자 차별철폐 의제의 구체적인 요구사항은 고용허가제를 철폐하고 노동허가제로 바꾸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노동비자를 가지고 한국에 합법적으로 입국했으면 노동자 본인이 일하고 싶은 사업장을 선택할 자유를 달라는 것이다.

이것은 오래된 문제다. 현재 이주노동자는 고용허가제 때문에 사업주가 허락하지 않으면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다. 코미디 프로그램 때문에 “사장님 나빠요”라는 말이 유명해졌지만 실제 이주노동자들의 삶은 농담이 아니다. 노동환경과 악덕 고용주 때문에 건강을 해치는 건 물론, 목숨이 위험해지는 경우도 많다.

2020년 12월 사망한 30세의 캄보디아 노동자는 혹한의 날씨에 냉난방이 안 되는 비닐하우스에서 지내다가 얼어 죽었다. 농장주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냉난방 장치가 없는 비닐하우스를 “기숙사”랍시고 내주고 “기숙사비”를 월 15만원씩 월급에서 떼 가며 매출 연 10억원을 올렸다. 이달에는 태국인 노동자가 돼지농장에서 일하다 건강이 나빠져 사망하자 농장주는 사망신고도 장례도 없이 시신을 쓰레기처럼 내다 버렸다. 이 농장주는 유가족과 합의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전에 경주이주노동자센터 의뢰로 이주노동자 통역을 하면서 공장주가 노동자들에게 폭언, 욕설은 기본이고 자기 기분이 나쁘면 수시로 때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때리고 욕하고 죽이는 고용주를 떠나려 해도 이주노동자들은 바로 그 고용주에게 다른 사업장으로 옮겨도 좋다는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주노동자는 노예가 아니다. 개명한 21세기에, 한국이 이제는 못 먹고 못 사는 나라도 아닌데 남의 나라에서 귀한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때리고 짓밟고 얼어 죽게 방치하면서 지옥 같은 일터에서 탈출할 권리도 주지 않다니 이것은 현대판 노예제도이고 너무 사람답지 못한 짓이다.

지난 4월21일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 앞에서 열린 이주노동자 차별철폐 집회 현장. ⓒ정보라 작가 제공
지난 4월21일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 앞에서 열린 이주노동자 차별철폐 집회 현장. ⓒ정보라 작가 제공

이주노동자 투쟁대회의 또 다른 의제였던 가사노동자법도 마찬가지다. 월 100만원 이내의 월급만 주면서 외국인 ‘여성’을 가사노동자로 고용하도록 법으로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의 현재 평균 물가를 생각하면 이런 월급을 받고 이주민 가사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정작 돌봄·가사노동 지원이 필요한 저임금 노동계층은 월 100만원을 주고 가사노동자를 고용할 여력이 없다. 월 100만원 가사노동자법은 결국 부자들이 쥐꼬리만 한 월급을 주고 1960년대처럼 ‘식모’를 부릴 수 있게 해 주겠다는 끔찍하게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2000년부터 약 2010년대 초반까지 중앙아시아 출신 여성들이 일명 ‘연예인 비자’로 알려진 예술흥행비자(E6)로 한국에 입국한 뒤에 강제로 성매매에 종사하게 되거나 인신매매를 당한다는 괴담 같은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경찰이 서울과 부산 주요 번화가의 유흥업소들에서 실제로 잠입수사를 했다. 그 결과가 2011년~2014년 무렵까지 형사정책연구원과 국가인권위원회 등 여러 기관에서 보고서로 발간됐다.

E6 비자는 외국인 모델이나 연예인, 많은 경우 놀이공원이나 유람선 등에서 퍼레이드나 공연을 하는 근로자에게 발급된다. 보고서를 보면 2010년대 초반까지 E6 비자를 받아 한국에 온 이주민들이 공연흥행 업무와 상관없는 분야에 종사하게 되는 비율이 높았다. 당사자가 일부러 다른 분야에 취업한 게 아니다. 업주가 근로계약서를 체결하지 않고 상관없는 업무를 시키거나, 근로계약서를 쓰긴 썼는데 당사자가 영어도 한국어도 잘 못 해서 무슨 일을 하라는 건지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근로계약서에 서명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더 위험한 것은 어떤 국가 출신은 미성년자 비율이 너무 높다든가, 어떤 국가 여성들은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취업 알선 중개업자에게 여권을 뺏기고 폭행이나 임금 갈취를 당하는 사례가 이상하게 많은 경우였다. 피해자들은 외국에서 모델로 일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꼬임에 속아 비싼 입국료를 내거나 앞으로 버는 돈을 대부분 알선업자에게 뜯길 것을 감수하고 한국에 왔다가 여권을 뺏기고 욕설과 폭력에 시달리며 유흥업소 등에서 강제로 일하게 되는 일들이 정말 많았다.

이주민 여성을 싼값에 가사노동자로 고용할 수 있게 하는 법 제정은 그 자체로도 노동권 침해이고 인권침해이다. 예술흥행비자 피해자 사례와 지난날 한국의 ‘식모’들이 겪었던 일들을 고려하면 앞날이 더욱 걱정스러워진다. 가사노동자법은 결과적으로 ‘월급 백만원 줄 여유가 있는 한국인’이라면 성범죄나 인신매매 등 관련된 여러 가지 범죄들을 ‘이주노동자 여성’에게는 저질러도 좋다는 일종의 국가 공인 면죄부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아주 추악한 나라가 될 것이다.

최초 여성·성소수자 시장이 이끄는 보고타 시정부
성소수자 인권 성평등 정책 펼치는데
서울시, 퀴어축제 서울광장 사용 불허

4월23일 보고타로 떠났다.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환승을 위한 입국심사를 기다리다가 영화 ‘너에게 가는 길’ 미국 대학 투어를 떠나는 성소수자 부모모임 활동가들을 만났다. 

보고타 도서전에서 참여한 대담 프로그램 중 로스 안데스(Los Andes) 대학교 강당에서 성소수자 인권동아리와 함께 진행했던 다양성과 문학에 대한 행사가 있었다. 놀랍게도 보고타 시청의 성다양성 분과(Department of Sexual Diversity)에서 주최한 행사였다. 보고타시 성다양성 분과는 도서전에 부스도 열고 성소수자 인권과 성평등을 위한 여러 정책을 홍보하고 있었다. 행사 후 콜롬비아 성소수자 인권투쟁 40년 역사를 담은 『나의 행진』(Mi Marcha)이라는 아름다운 책을 선물로 받았다. 이 훌륭한 올컬러 책의 총 책임편집자는 클라우디아 로페즈 헤르난데즈(Claudia Lopez Hernandez) 보고타 시장이다. 2020년 취임한 보고타 최초의 여성·성소수자 시장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서울시청이 올해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서울광장을 내주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보고타시가 너무 부러워서 조금 눈물이 났다. 지난 20일 2023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행사에 참여했다. 우리는 차별금지법 제정, 혼인평등 법제화, 트랜스젠더 인권법 제정, 학생인권조례 확대 등의 요구사항을 외치며 혜화역 일대를 행진했다. 

콜롬비아 성소수자 인권투쟁 40년 역사를 담은 책 『나의 행진』(Mi Marcha). 보고타시가 제작했다. ⓒ정보라 작가 제공
콜롬비아 성소수자 인권투쟁 40년 역사를 담은 책 『나의 행진』(Mi Marcha). 보고타시가 제작했다. ⓒ정보라 작가 제공
콜롬비아 성소수자 인권투쟁 40년 역사를 담은 책 『나의 행진』(Mi Marcha). 보고타시가 제작했다.   ⓒ정보라 작가 제공
콜롬비아 성소수자 인권투쟁 40년 역사를 담은 책 『나의 행진』(Mi Marcha). 보고타시가 제작했다. ⓒ정보라 작가 제공
지난 5월20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일대에서 열린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투쟁대회 현장. ⓒ정보라 작가 제공
지난 5월20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일대에서 열린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투쟁대회 현장. ⓒ정보라 작가 제공

차별에 반대한다는 것은 유토피아적 상상도 뜬구름 잡는 이론도 아니다. 차별은 살인이다. 이주노동자는 제도적 차별 때문에 일하던 곳에서 얼어 죽고 일하다 죽고 앓다 죽고, 시신은 야산에 아무렇게나 버려진다. 성소수자는 사회의 차별적 인식과 제도적 차별 때문에 가족에게 버림받고 학교를 그만두거나 이 직장 저 직장 떠돌며 불안정한 삶을 이어가고 극단적인 선택에 내몰린다.

무엇보다도, 차별해도 된다는 사회적 인식과 제도가 존재하면, 어떻게든 기를 쓰고 차별하고 혐오하려는 사람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정말 지긋지긋하다. ‘불법 사람’은 없다. 차별받아도 되는 사람도 없다.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 이제 한동안 해외에 나갈 일이 없으니 차별사회를 조금이라도 뒤흔들기 위해 데모를 열심히 해야겠다.

세계적 권위 문학상 ‘부커상’ 국제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정보라 작가가 우리 사회 곳곳의 차별과 폭력에 대한 저항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월간데모’로 독자들을 만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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