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윤석열 정부 1년을 맞아 정책을 평가하는 자리인 ‘윤석열 정부 1년 정책 평가 및 제언 토론회 - 표류하는 성평등 정책 방향키 잡기’를 마련했다. 참가자들은 △총론 △젠더폭력 △노동 △가족/돌봄/복지 △평화 △정부를 주제로 발제했다. 토론회에서 나온 발제를 요약해 싣는다.

‘성폭력 무고죄 강화’를 ‘청년 공약’으로 발표한 정부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2021년 10월 21일 청년 정책 공약이라며 “사법질서를 훼손하는 무고죄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무고조항을 신설해 거짓말 범죄를 근절하겠다”고 했다.

무고 사건 추이를 보면 ‘거짓말범죄’가 늘어난 것이기 보다 상대가 나를 고발했는데 거짓이라는 주장과 맞/역고소가 늘어난 것이라는 해석이 합리적이다. 그럼에도 윤석열 후보는 성폭력으로 고발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그룹을 ‘청년’으로 호명하고, 피해자/여성의 거짓말이 심각하다고 주장하고 분노하는 정동을 ‘공정’으로 표명했다. 성폭력으로 고발되지 않을까 걱정이 아니라 성평등, 성폭력 예방대책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시민들은 배제됐다.

‘무고한 남성을 여성이 무고한다’는 강간통념, 강간신화를 정부가 확산하는 것은 심각한 잘못이다. 성폭력 피해자들의 권리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서 가해자들의 기획성, 보복성 역고소를 부추긴다. 폭행·협박 없는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들이 수사기관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침묵하게 만들 수 밖에 없다.

이기순 여성가족부 차관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 등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이기순 여성가족부 차관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 등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형법상 강간죄 개정 및 성폭력 개정과제 반대 : 제3차 양성평등기본계획 번복

2023년 1월 26일, 법무부는 당일 이미 통과된 제3차 양성평등계획 중 ‘강간죄 개정검토’를 반대하고 나섰다.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은 “이 법이 도입되면 합의해 성관계를 하고도 상대방 의사에 따라 무고당할 가능성이 있다”며 “여가부 폐지 이유”라고 주장했다. 여성가족부는 9시간 만에 추진계획 없다고 뒤엎었다.

문제는 법무부가 제3차 계획 중 피해자 중심 제도적 기반 구축 5개 과제 모두 반대한 것이다. 서면으로는 ‘삭제’ 의견이 아니고 모두 ‘검토’로 답변하고 나서 나중에 ‘반대’하게 된 것. 그러나 이는 그동안의 법무부 입장과도 모순된다.

<피해자 중심 제도적 기반구축> 5개 과제에 대한 법무부 말과 기존 입장을 보자. 첫째, ‘형법 32장 제목을 성적자기결정권 침해의 죄로 개정 검토’. 2023. 2. 8.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형법 32장 장제목을 성적자기결정권 침해죄로 개정할 필요가 있는지 질의한 류호정 의원에게 한동훈 장관은 “이미 장제목이 그렇지 않은가?”라고 답했다. 둘째, ‘형법 제 297조 강간죄 구성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여부’로 개정 검토‘. 이 역시 같은 질의에서 한 장관은 “동의없는 성관계는 당연히 범죄다”라고 말했다. 셋째 ’성폭력처벌법에 피해자 과거 성이력 증거채택 금지조항 신설 검토‘. 법무부는 성폭력처벌법 입법예고 (법무부공고 제2022-105호)에서 제29조의2 2항 6호에 관련 내용 (“범죄와 관련되지 않은 피해자의 성적 이력 또는 사생활과 관련된 불필요한 질문 방지”)을 구성한 바 있다. 넷째, ’성폭력처벌법상 온라인 성폭력 관련 조항 개정검토‘. 법무부 보도자료(2022.3.24.) 『성적 수치심? 이제는 바꿉시다』에서 성범죄 처벌 법령상 부적절한 용어 개정 필요성을 밝힌 바 있다. 마지막 ’온라인상 성적 괴롭힘과 메타버스 내 괴롭힘 등에 대한 처벌 신설 검토‘. 역시 법무부 보도자료(2022.1.28.) 『신종 플랫폼 공간에서의 성범죄 방지 등을 위한 성적인격권 침해범죄 신설 및 보호관찰 개선』에서 필요성과 권고내용을 발표한 바 있다.

성폭력 개정과제는 법무부가 필요성과 현실가능성을 모두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스스로 ’검토‘했고, 법안으로도 만들어온 과제들이다. 시민들의 인식, 감수성, 요구는 이미 변화하고 있고 비동의강간죄는 일상권력과 성폭력을 해소하기 위해 세계가 가고 있는 체계다. 누구를 위해 눈 가리고 역행하는가?

디지털 성폭력 삭감안 제출, 증액 제안 거절한 여성가족부

여성가족부가 2023년 예산안을 적게 잡아 국회가 되려 증액을 권유한 ‘뒤바뀐 밀당’은 언론에서도 보도됐다. 문제는 이 모든 예산이 매우 약소하다는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제출한 디지털성폭력 지역특화상담소 10개 지역에서 14개 확대 사업의 예산안은 ‘22년 4억 2천만원 → ’23년 정부안 5억 9천 5백만원으로 1억 7천 5백만원에 불과하다. 국회 권유로 여가부가 수용한 디지털성폭력 지역특화상담소 인력 1명 충원 예산까지도 2억 1200만원에 불과하다. 여성가족부가 삭제했다가 국회의 권유로 복구한 디지털 성범죄 인식개선 홍보 예산안도 1억 600만원 수준이다.

예산안 논의과정에서 확인한 여가부의 태도는 매우 문제적이다. 디지털 성범죄 인식개선 홍보예산을 예년 수준으로라도 확보하라는 제안에 “올해 제작하는 영상으로 내년에 홍보”하겠다는 부처가 또 있을까. 전국 10개 디지털성폭력 지역특화상담소가 2022년 10개월간 1만 4,311건의 피해지원을 했는데, 이에 인력 2명을 3명으로 보완하라는 예산 추가안을 받고도 여가부는 “지역별 운영 성과 등을 전반적으로 점검한 후에 (인력 충원 여부와 규모 등을)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소한의 예산에도 성과 평가 운운하는 모습이 부끄럽다. 대통령 공약이었던 전국 지자체 산하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마련도 예산안에 없어서 국회가 권유했는데 여가부는 거절하며 “자체적으로 지원센터를 운영하는 지자체가 있는 상황에서 어디는 국비를 지원해주는 게 형평성에 맞지 않다”라고 답했다. 왜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대통령 공약임에도 적극적으로 안 나서는가. 여성가족부 폐지에 나섰던 모습과 대조적이다. 성평등 확산, 여성폭력 방지와 피해자 지원 예산은 최소한의 안전망과 직결되어 있다.

관점 없는 포퓰리즘 정책은 대안인가? 젠더폭력에 대한 처벌, 예방, 인식개선이 우선

정부는 성평등 정책을 지우고 ‘흉악범죄 처벌 강화’로 대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흉악범죄로부터 국민을 확실하게 보호’하는 방안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감독제 운영’, ‘중형 선고와 결합된 보호수용 조건부 가석방제 도입’ 등이 주장된다. 그러나 ‘흉악범죄’를 강조하며 시작된 정책은 극소수의 ‘흉악범’을 선별하느라 일상적인 폭력과 차별에 교육, 홍보, 연구, 예방으로 대응하는 사회적 투여를 외면하고 방기한다. 2010년대 초반 아동성폭력의 대책이라며 도입된 ‘화학적 거세’는 9년간 단 70명에게만 해당됐다.

‘흉악범’에 대한 ‘최첨단’ 전자정책을 도입하기 전에 해야 할 것은 젠더폭력을 구조적으로 이해하는 개입, 처벌, 예방이다. 강간 피해상담의 71.4%를 차지하는 폭행협박 없고 동의 없는 성폭력에 대한 경청과 개입, ‘강압적 통제’에 기반한 스토킹, 살인, 가정폭력, 온라인 괴롭힘과 협박에 대한 예방이다. 인력과 예산이 투여되는 장기적 대책마련이 절실히 필요하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본인 제공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본인 제공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