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연 1주기 추모전 6~9일 열려
‘그대안의 블루’ 이현승 감독
심재명 명필름 대표가 말하는 강수연

고(故) 강수연(1966~2022) 배우. 그를 그리워하는 영화인들이 지난 6일~9일까지 서울 마포구 한국영상자료원, 성동구 메가박스 성수에서 1주기 추모전 ‘강수연, 영화롭게 오랫동안’을 열었다.  ⓒ강수연추모사업위원회 제공
고(故) 강수연(1966~2022) 배우. 그를 그리워하는 영화인들이 지난 6일~9일까지 서울 마포구 한국영상자료원, 성동구 메가박스 성수에서 1주기 추모전 ‘강수연, 영화롭게 오랫동안’을 열었다. ⓒ강수연추모사업위원회 제공

한 편의 영화를 기획·투자 단계부터 끌고 가는 힘을 지닌 몇 안 되는 대배우. 배우로서 예민한 감각을 유지하면서도 영화 현장을 잘 이해하고 아우르는 ‘대장’. 영화인들이 기억하는 강수연(1966~2022)은 ‘한국영화의 보물’이었다.

그가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난 지 1년이 지났다. 강수연을 그리워하는 영화인들이 지난 6일부터 9일까지 서울 마포구 한국영상자료원, 성동구 메가박스 성수에서 1주기 추모전 ‘강수연, 영화롭게 오랫동안’을 열었다. 8일 오후 메가박스 성수에선 1992년작 영화 ‘그대안의 블루’ 상영에 이어 백은하 배우연구소장, 이현승 감독, 심재명 명필름 대표가 ‘강수연을 이야기하다’라는 주제로 스페셜 토크를 벌였다.

8일 오후 메가박스 성수에선 1992년작 영화 ‘그대안의 블루’ 상영에 이어 백은하 배우연구소장, 이현승 감독, 심재명 명필름 대표가 ‘강수연을 이야기하다’라는 주제로 스페셜 토크를 벌였다. ⓒ강수연추모사업위원회 제공
8일 오후 메가박스 성수에선 1992년작 영화 ‘그대안의 블루’ 상영에 이어 백은하 배우연구소장, 이현승 감독, 심재명 명필름 대표가 ‘강수연을 이야기하다’라는 주제로 스페셜 토크를 벌였다. ⓒ강수연추모사업위원회 제공

1990년대에 강수연은 관습과 사회적 압력에 순응하기보다 삶을 스스로 이끌어나가는 생동감 넘치고 야망 있는 여성을 주로 연기했다. 특히 ‘그대안의 블루’는 여성에게 일과 사랑 중 양자택일을 요구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고민하는 여성상을 제시해 시대를 앞서간 ‘페미니즘 영화’로 꼽힌다.

극중 ‘유림’(강수연)은 일과 사랑 모두 잘 해내고 싶어 하는,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여성이다. 결혼식장에서 탈출해 도산대로 8차선 도로 한복판에 서서 웨딩드레스 끝자락을 과감히 잘라내는 강수연의 모습은 그 자체로 파격이었다. 유림의 동료이자 친구인 ‘호석’(안성기)도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남성 캐릭터는 아니다. 유림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가 일하는 여성으로서 사회에서 입지를 다지길 바라고 돕는다.

이현승 감독은 “여성학 관련 책을 많이 읽게 되면서 한국 영화 속 여성 이미지를 벗어나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강수연과도 많이 의논했고, 좌충우돌하다가도 점점 주도권을 잡아가는 캐릭터가 됐다”고 설명했다. “남녀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꼭 사랑에 빠져야만 하는 건 아니다. 함께 일하면서 동지애, 동료의식 등을 나누는 다양한 관계를 보여주고 싶었다”고도 덧붙였다.

안성기 배우 캐스팅 일화도 객석의 웃음을 자아냈다. “처음엔 고사하셨다. 여자 캐릭터가 왜 이렇게 도발적이고 좌충우돌하냐, 이해가 안 간다고 하시길래 제가 세 시간을 붙잡고 설득했다. 거의 토론을 벌였다. (안성기 배우가) ‘너 나한테 여성학 강의하는 거야?’ 하시더라. 하하하.”

강수연, 안성기 주연 영화 ‘그대안의 블루’ 포스터.
강수연, 안성기 주연 영화 ‘그대안의 블루’ 포스터.

당시 강수진은 한국 연예계에서 여성 연예인 최초로 억대 개런티를 받던 스타였다. 세 살 때 연기를 시작해 인기 아역배우를 거쳐 한국영화계 간판스타에 올랐다. 심재명 대표는 “그 시절 강수연은 독보적인 스타, 홀로 한국 영화계를 이끌어가는 사람이자 그 시대의 아이콘이었다”라고 회상했다. 또 “영화사에서 처음 대면한 날, 저보다 세 살 어린데도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느꼈다. 아름답고 성숙했다”며 “저는 ‘그대안의 블루’ 시나리오의 페미니즘적인 서사가 낯설고 놀라웠는데, 이 작품을 선택한 강수연은 많이 외로웠을 텐데도 도전적이고 새로운 영화에 자신을 던지길 두려워하지 않았던 배우”라고 했다.

영화인들이 기억하는 강수연은 단호하고 당당하게 의견을 말하는 배우, 그래서 만만치 않지만 정 많고 털털하고 인간미 넘치는 배우였다. 촬영장에서는 제작실장 역할을 했고 막내 스태프까지 살뜰히 챙겼다.

“영화(‘베를린 리포트’) 촬영 중 서로 기분이 상하는 일이 있었는데, 강수연이 값비싼 와인을 들고 제게 먼저 찾아와 미안하다고 하더라. 둘이 술을 마시면서 화해했다. ‘그대안의 블루’ 중 강수연·안성기가 옥상에서 술 마시는 장면을 찍는데 갑자기 비가 왔다. 고민하다가 ‘비가 오네’ 대사를 하면서 이어가자고 하니까 강수연이 단호히 거절했다. ‘아니 감독님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대사를 이으라고?’ 결국 비 그친 후 촬영을 재개했다. 그 시절에 신인감독인 저는 선배들 눈치를 보느라 디렉터실에 앉아서 디렉션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강수연이 최고참이던 정광석 촬영기사에게 ‘(이현승 감독님이) 앉아서 디렉션해도 되겠는데요?’ 하더라. 강수연이니까 할 수 있었던 말이다. 그 뒤로 저는 디렉터실에 앉아서 일했다.” (이현승 감독)

“강수연은 누구보다 영화에 대한 자긍심이 컸고, 누구보다도 영화를 사랑했던 사람이다. 1980~90년대에 가장 중요했던 배우다. 그를 더 많은 스크린에서 봤으면 했는데, 너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떴다. 연극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황망하다.” (심재명 대표)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부산국제영화제 등에서 직책을 맡아 책임감을 발휘했던 강수연이 떠오른다. 허투루 주어지는 배역은 단호히 거절하는 배우였다. 한국영화가 그에게 새롭고 좋은 캐릭터를 제안하지 못한 시절도 있었다. 강수연의 역사가 지워지지 않길, 강수연이란 배우가 계속 말해지고 기억되기를 바란다.” (이현승 감독)

강수연 배우가 비구니 역할로 출연한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의 한 장면. 강수연은 이 작품으로 모스크바영화제 최우수여자배우상을 수상했다. ⓒ강수연추모사업위원회 제공
강수연 배우가 비구니 역할로 출연한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의 한 장면. 강수연은 이 작품으로 모스크바영화제 최우수여자배우상을 수상했다. ⓒ강수연추모사업위원회 제공
강수연 배우 1주기 추모전 ‘강수연, 영화롭게 오랫동안’ 티저 영상 캡처. ⓒ강수연추모사업위원회 제공
강수연 배우 1주기 추모전 ‘강수연, 영화롭게 오랫동안’ 티저 영상 캡처. ⓒ강수연추모사업위원회 제공
지난 7일 저녁 메가박스 성수에서 열린 강수연 배우 1주기 추모전 ‘강수연, 영화롭게 오랫동안’ 개막식. 안성기, 박중훈 배우가 고인을 추억하고 있다. ⓒ강수연추모사업위원회 제공
지난 7일 저녁 메가박스 성수에서 열린 강수연 배우 1주기 추모전 ‘강수연, 영화롭게 오랫동안’ 개막식. 안성기, 박중훈 배우가 고인을 추억하고 있다. ⓒ강수연추모사업위원회 제공

임권택·김동호·박중훈·예지원 등
영화인 29명 추모사업 추진위 발족
추모집도 출간 예정

이번 추모전은 강수연추모사업위원회(추모위),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상자료원이 주최하고 추모위, 메가박스중앙(주)이 주관했다. (주)넥스트월드, 용인공원아너스톤이 후원했다. 추모위는 고인의 동생 강수경 씨를 비롯해 명예위원장 임권택 감독, 김동호 추진위원장, 박중훈·예지원 부위원장 등 생전 고인과 함께 활동했던 영화인 29명으로 구성됐다.

지난 7일 저녁 메가박스 성수에서 열린 추모전 개막식엔 배창호, 이장호, 정지영, 권칠인, 이현승, 임순례, 신수원, 방은진, 이정향, 윤제균, 연상호, 김한민, 박정범 감독, 문성근, 이정현, 엄정화, 전도연, 문근영, 박상민, 임하룡, 이용녀, 박희본, 이채은 배우,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문화·영화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유지태가 사회를 맡고, ‘그대안의 블루’ 동명 주제가를 가수 김현철과 배우 공성하가 부르는 특별 공연도 열렸다. 

배우 대표로 인사를 전한 안성기는 “우리 수연 씨, 어디에서든지 보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라고 고인을 추억했다. 박중훈은 “강수연은 내가 본 사람 중 외형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인 동시에 실제 생활에선 검소하고 어려운 곳에는 선뜻 마음을 쓰는 통 큰 사람이었다”고 했다. 

영상으로 고인을 추모한 배우들도 있었다. 문소리는 “굉장히 큰 책임감을 갖고 임했던 것 같다. 어려운 순간도 많았을 텐데 절대 약한 소리를 한 적이 없다”고 회상했다. 최희서는 “배우는 죽을 때까지 최고를 향해서 갈 뿐이야. 그때까지 참고 견뎌야 해”라는 강수연 배우의 말이 사무친다고 했다. 이정현, 박지현, 김혜준, 정우성, 이정재, 김아중도 강수연 배우를 떠올리며 추모전의 의의를 전했다.

추모전에선 강수연의 대표작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처녀들의 저녁식사’, ‘달빛 길어올리기’, ‘씨받이’,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아제아제 바라아제’, ‘경마장 가는 길’, ‘그대 안의 블루’, ‘송어’, ‘주리’, ‘정이’가 상영됐다. 출연 배우·감독 등의 관객과의 대화(GV), 스페셜 토크 등 행사도 열렸다. 공식 추모집인 포토아트북 ‘강수연’도 발간돼 이달 중순 서점가에 배포될 예정이다. 감독 겸 영화평론가 정성일, 각본가 겸 소설가 정세랑, 봉준호 감독, 배우 설경구, 김현주 등이 참여했다. 영화인들은 매년 강수연을 다양한 방식으로 기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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