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헤라, ‘멘탈 헬스 좋지 않아보이는 사람’ 신조어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여성 찾는 남성들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 환상 품고 접근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극단적 선택 과정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생중계한 10대 여성이 활동한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디씨) ‘우울증 갤러리’에서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만연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우울증 갤러리 외에도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정신질환을 겪는 여성을 대상으로 그루밍 성폭력을 모의하거나 소위 ‘멘헤라’라고 부르며 성애화하는 글들이 다수 발견됐다.

‘멘헤라(メンヘラ)’는 일본의 인터넷 신조어다. ‘멘탈 헬스(Mental Health)가 좋지 않아 보이는 사람’을 일컫는다. 디시인사이드와 트위터 등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멘헤라라는 표현을 쓰며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여성들을 성적 대상으로 소비하고 있다. 멘헤라는 가정폭력, 집단 괴롭힘, 부모의 이혼 등 어두운 과거로 인해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일삼고 타인에 애정을 갈구하는 등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일부 남초 커뮤니티에는 정신적으로 취약하거나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가진 어린 여성들을 멘헤라로 지칭하며 성적으로 소비하기 쉬운 대상으로 취급하는 문화가 자리 잡혀 있다. 디시인사이드 내 다수의 갤러리에서는 “미소녀 멘헤라 만나고 싶다”, “멘헤라들은 애정결핍이 심해 성욕에 미쳐있다”, “멘헤라 1명 작업 치고 있다. 자기 외로움 채우려 해서 성관계 맺기 쉬울 것 같다” 등의 게시물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우울증 갤러리가 대표적이다. 자신의 극단 선택 과정을 SNS로 중계한 10대 여성은 당시 동행한 남성 A씨를 우울증 갤러리에서 만났다. 경찰은 우울증갤러리에 글을 올리고 사람을 모집하는 과정과 대화 내용이 구체적 극단선택 계획에 해당한다고 보고 A씨를 자살방조 및 자살예방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사건이 알려진 뒤 우울증 갤러리를 통해 성인 남성들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피해자들의 고발이 쏟아지고 있다. 우울증 갤러리에서 활동하는 이용자들이 만든 모임인 ‘신대방팸’도 미성년자 성착취 의혹을 받고 있다. 실제 이들에게 피해를 입었다는 10대 피해 여성의 고발도 나왔다. 

피해자와 제보자들은 우울증 갤러리 안에서 정신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는 여성들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척하며 신뢰관계를 형성한 뒤 착취·통제하는 ‘그루밍 성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막 다뤄도 된다고 하더라”…결핍 이용한 성범죄 모의

Ⓒ직장인 익명 앱 '블라인드' 캡처
Ⓒ직장인 익명 앱 '블라인드' 캡처

온라인을 매개로 10·20대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성착취는 수십년 전부터 반성폭력단체가 꾸준하게 지적해온 문제다. 우울증 갤러리 이전에는 ‘N번방’이 있었고, 그 전에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이 있었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집단적으로 성폭력을 모의하고 노하우를 공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는 우울증 갤러리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이들의 범죄행위가 점점 심해져 지금은 여성 초등생까지 성착취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우울증 갤러리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여성들을 성범죄의 대상으로 지목했다는 점에서 대중들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현숙 아동·청소년성폭력상담소 탁틴내일 대표는 “범죄자들이 심리적으로 취약한 여성들에게 친구 또는 연인이 되어준다며 접근하는 경우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메시지 등 개인 메신저로 연결되는 경우 심각한 상황이 더 자주 발생한다”고 말했다.

우울증·불안장애·애정결핍 등을 겪는 여성들을 성착취의 대상으로 여기는 문화는 우울증 갤러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달 익명 직장인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의 한 게시판에 “정신적으로 불안한 이쁜여자 찾으려면 어디 가야해?”라는 제목의 글이 게시됐다.

해당 게시물에는 “아는 잘나가는 형님에게 듣기로 정실질환이 있는 여자를 만나면 온갖 성적 판타지를 실현할 수 있다”, “좀 가까워지면 막 다뤄도 된다고 하더라” 등 성착취를 목적으로 정신질환을 겪는 여성을 찾는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카카오톡 대화방과 텔레그램 등 온라인 대화 플랫폼에서도 우울함을 호소하는 여성들을 찾는 남성들을 다수 찾을 수 있다. 카카오톡 1:1 오픈 채팅방에는 “우울증 여자친구 구한다”, “정신질환 있는 여자만 들어와라”, “존잘남(잘생긴 남성)이 당신을 발전시켜주겠다” 등의 제목으로 다수의 채팅방이 개설돼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캡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캡처

“취약 여성 노리는 그루밍 성범죄
적극적인 규제와 처벌 필요”

전문가들은 심리적으로 취약한 여성 청소년들이 성착취를 겪게 될 경우 더욱 큰 절망감에 빠지게 된다고 입을 모았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나를 알아줄 사람을 애타게 찾다 겨우 신뢰하게 된 상대방이 자신을 성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면 너무 큰 충격을 받고 삶의 의미가 없다고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다.

조진경 대표는 "성착취로 상처입은 청소년이 성인이 된다고 갑자기 극복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상생활이 안돼 병원에 가거나 자살 시도를 하는 청소년들을 수없이 많이 봐왔다"며 계속해서 피폐해지는 청소년들을 걱정했다.

이러한 문제들을 줄이기 위해서는 플랫폼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게시물들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이현숙 대표는 “많은 플랫폼들이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모욕성 게시물을 방치하고 있다.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게시물까지 표현의 자유라고 할 수는 없다. 정부·플랫폼·시민사회가 함께 이를 규제하고 인식 개선을 진행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피해자의 취약성을 이용한 성폭력 가해자들에 법적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성폭력위기센터는 "현행법상 장애 판정을 받지 않은 한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놓였다는 이유로 성범죄 인정 범위를 넓히거나 가해자를 가중 처벌하는 경우는 없다. 법률을 개정하지 않더라도 있는 법을 잘 해석해 그간 협소하게 해석돼온 폭행과 협박, 장애 이용한 성범죄를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온라인을 통한 만남에서 성적인 피해를 입은 여성들은 신속히 성폭력보호단체를 찾아가 자신이 지닌 권리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 대표는 “사회적·경제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놓이기 쉬운 청소년들은 범죄에 노출되기도 쉽고 피해를 정확히 인식하기도 어렵다. 성적인 피해를 입었을 경우 가능한 빨리 성폭력상담소과 연락해 자신이 입은 피해를 객관화하고 변호사 지원 등의 서비스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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