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미 CEO SUITE 대표
1980년대 호주로 떠나
1997년 인도네시아서 창업
중국·싱가포르 등 11개국 진출
암 투병 후 탱고 매력에 빠져

1980년대에 한국을 과감히 떠났다. 외국에서 치열하게 일하다가 30대에 임신한 몸으로 자기 회사를 차렸다. 이제는 아시아 전역을 누비는 사업가다. 암 투병 이후 ‘탱고 전도사’가 됐다. 김은미 CEO SUITE 대표의 일과 삶, 탱고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은미 CEO SUITE대표가 20일 서울 서초구 더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제66차 WIN 문화포럼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김은미 CEO SUITE대표가 20일 서울 서초구 더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제66차 WIN 문화포럼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김 대표는 1세대 공유오피스 사업가다. 1980년대에 한국을 과감히 떠나 호주에서 치열하게 근무해 실력을 인정받았고, 차별에 부딪히자 회사를 박차고 나와 1997년 창업했다. CEO SUITE는 기업·개인 고객에게 비즈니스를 위한 사무공간과 컨설팅·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1997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1호점 설립을 시작으로 25년 넘게 아시아 11개국에서 프리미엄 비즈니스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2011년 펴낸 회고록 『대한민국이 답하지 않거든, 세상이 답하게 하라』을 통해 자신의 창업 여정을 국내외 독자들과 나눴다.

자타공인 ‘탱고 전도사’이기도 하다. “탱고를 알기 전과 후로 인생이 나뉜다”고 단언한다. “일이 안 풀리고 힘들 땐 상담을 받았어요. 지금은 탱고를 춰요. 한 곡 추면 다 잊게 돼요.”

앞만 보고 달리다 위기를 맞은 적 있다. 갑상선암 수술 후 1년간 안식년을 가졌지만 공허했다. 아르헨티나 여행 중 들린 밀롱가(Milonga, 사람들이 탱고를 즐기기 위해 모이는 장소나 시간)에서 탱고에 눈을 떴다. 춤추다 보니 만성 불면증과 우울증이 사라졌다. ‘사는 게 참 신나 보인다’는 말도 들었다.

사업가로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탱고에 열정을 불태우는 까닭은 “삶의 안정궤도에서 또 다른 도전”을 받아들이는 일이고, 춤추는 기혼 여성, 삶을 즐기는 여성에 대한 색안경과 “정면으로 마주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살면서 마지막으로 설렌 적이 언제였나요? 탱고 신발 하나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든 갈 수 있어요. 현지인들과 어울리고 친구를 만드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죠.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데 보약보다 좋은 게 춤이에요. 두려워 말고 시작해 보세요.”

김은미 CEO SUITE 대표가 20일 서울 서초구 더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제66차 WIN 문화포럼에서 에밀리오 안드레스 아라야(Emilio Andres Araya) 명지대 미래교육원 교수와 함께 아르헨티나 탱고를 선보이고 있다. ⓒ홍수형 기자
김은미 CEO SUITE 대표가 20일 서울 서초구 더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제66차 WIN 문화포럼에서 에밀리오 안드레스 아라야(Emilio Andres Araya) 명지대 미래교육원 교수와 함께 아르헨티나 탱고를 선보이고 있다. ⓒ홍수형 기자

순종하거나 무작정 따르지 않는다. 안전지대(comfort zone)에 머무르지 않는다. 김 대표의 비즈니스 원칙이다. “30대 중반 임신한 몸으로 창업해 숱한 경쟁과 위기를 뚫고 여기까지 왔어요. 여러 제안과 권유에도 창업 이래로 투자를 받은 적 없어요. 코로나19라는 최대 위기 속 1년 반 동안 비즈니스센터 절반을 임시로 닫아야 했지만 직원 250명 중 단 한 명도 내보내지 않았습니다. 욕심부리지 않고, 있는 척하지 않고, 꾸준히 할 일을 하는 게 살아남은 비결입니다.”

최근 홍콩, 싱가포르, 베이징에 각각 새로운 센터를 열었지만, 공격적 확장은 고려하지 않는다. “무작정 규모를 늘리기보다는 고객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촘촘하게 챙기는 게 더 중요해요. 코로나19를 통과하며 얻은 교훈이죠.”

그는 직원들에게도 두 가지를 강조한다. ‘서비스 마인드’와 ‘자율적 성장’이다. “‘회사가 내게 뭘 해줄 수 있는가’보다, ‘나는 이 비즈니스에서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라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성과도 보람도 더 커요. CEO SUITE는 중소기업이라 대단한 직원 복지혜택을 제공하진 못해 안타깝지만, 초과근무는 지양하고 원할 때 언제든 휴가 갈 수 있는 기업문화가 있습니다. 다자녀 가정이라 출산휴가를 4번 다녀온 직원도 있어요. ‘60세 정년’도 없어요. 나이가 얼마든 건강하고 일하는 데 지장이 없으면 계속 함께 일합니다. 서울 팀을 포함해 저랑 26년 넘게 함께 일하고 있는 직원들도 여럿이고요. 우리 직원들은 언제든 제게 개인적으로 메시지를 보내거나 대화할 수 있어요. 자기가 원하는 업무를 능력껏 하면서 회사의 성장에 기여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죠. 비서로 시작해서 총괄관리자까지 올라간 직원도 있고, 청소 일을 하던 직원을 대학에 보내서 IT 직무로 전환한 사례도 있어요.”

김 대표가 보기에 “사업은 결국 돈의 흐름을 보는 것, 남의 마음을 사는 것, 남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내 주머니로 옮기는 것”이다. 언제나 낮고 어두운 곳을 살피고 함께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사업가의 자세다. 김 대표도 수익의 10%가량을 다양한 빈곤·소외계층을 위해 기부하고 있다.

“백세 시대, 창업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라고도 했다. “인생은 긴데 은퇴하면 누가 챙겨주나요. 내가 미리 준비해야죠. 저는 직원들에게도 일만 제대로 한다면 ‘투잡’해도 좋다고 해요. CEO SUITE는 그런 분들을 위해 ‘가상오피스’ 서비스도 제공합니다. 명함을 하나 따로 파서 관심 분야를 리서치하고, 시장도 넓히고 멘토링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거죠. 그렇게 ‘파워블로거’가 된 직원도 있습니다. 물론 ‘월급쟁이가 최고’라며 더 열심히 일하게 된 직원들도 있지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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