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싱어송라이터 이지구
2018년 스쿨미투 제기했던 경험담 담아
‘미제 사건’·‘피해자 메이크업’ 등 작사·작곡
노래·작사·작곡·연기·극작 등 다양한 분야 활동
“세상에 외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게 아닐까”

이지구 싱어송라이터 ⓒ홍수형 기자
싱어송라이터 이지구씨. ⓒ홍수형 기자

한국여성대회, 김재련 변호사 북 콘서트, 10.29 이태원참사 추모 촛불 문화제… 최근 의미있는 곳에서 노래를 부르는 이가 있다. 바로 싱어송라이터 이지구(26)씨다. 2015년 홍대 라이브 클럽에서 통기타 하나만을 들고 노래를 시작했던 그는 자신의 경험담을 담아 노래한다. 2018년 그는 중학생 시절 교사로부터 1년간 겪었던 성추행 사건을 고발했다. 그루밍 성폭력 피해 당사자이자 ‘스쿨미투’ 고발자가 부르는 노래는 상처받은 많은 이들을 위로한다. 오는 8~9월 정규 1집을 내기 위해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이지구씨를 작업실 겸 집에서 만났다.

-지구라는 예명이 인상적이다. 의미가 무엇인지.

“고등학교를 다닐 때 공감각적 심상에 빠져있을 때가 있었다. 그때 학교 운동장에서 피구를 하는데, 지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당시 생각난 표현이 ‘지구맛 소음’이었다. 당시 친구와 함께 음악을 하고 있었는데 팀명으로 ‘지구맛 소음’을 제안했다. 이후 친구랑 음악을 하지 않게 됐고 ‘지구’만 예명으로 쓰고 있다.”

30일 서울 용산구 게이트웨이타워에서 천년의상상이 개최한 김재련 변호사의 '완벽한 피해자' 출간 기념 북 콘서트에서 이지구 싱어송라이터가 공연을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이지구씨가 지난 3월 30일 서울 용산구에서 열린 김재련 변호사의 『완벽한 피해자』 북콘서트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싱어송라이터이자 밴드 ‘시발점’의 보컬이다. 2015년부터 노래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아주 엄청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했다. 문화센터에서 노래를 부르는 영상이 남아있기도 하다. 항상 노래를 해왔으며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라면 놓치지 않고 나섰던 것 같다. 사람들에게 박수받고, 주목 받고, 사람들이 나로 인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작사, 작곡도 직접 한다. 작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의 본능이자 무의식이다. 무의식에 의지해서 여행을 하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코드 진행이나 멜로디를 만나게 된다. 마법 같은 순간들이 지나고 나서 결과물을 바라보면 음악 안에서의 새로운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가장 아끼는 곡은.

“매번 바뀌지만, 지금은 ‘보라색 기타에 관하여’라는 곡이다. 그 곡은 나를 마주하는 가사를 담고 있다. 보고 싶지 않았던, 끔찍한 나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곡을 들으면 힘들기도 한데, 마주하면 마주할수록 고통이 덜어지는 것 같아서 좋다. 유튜브(https://www.youtube.com/@user-yn8ng4ko7e)와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들을 수 있다.”

그 땐 피부 상처 하나 없었네
그 맑고 고운 피부를
그 맑고 고운 피부를
지금 생각하면 구역질이 나는
사랑과 착취 사이에서
사랑과 학대 사이에서
사랑과 그루밍 사이에서
(‘보라색 기타에 관하여’ 중)

-대학에서는 연기를 전공했다. 음악극 ‘미제 사건’에서는 연기를 하기도 했는데.

“부모님이 음악을 반대하셨다. 무대에 설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고안하다가 연극부에 들어가서 연기를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연기라는 게 생각보다 정말 재밌었다. 연기는 공부하고 탐구하고 싶은 학문으로 느껴졌다. 이후 2019년도에 여성국극 ‘춘향전’에서 방자라는 캐릭터로 데뷔했다. “나는 배우로 살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꿈은 두 가지, 배우와 가수다.”

-노래, 작사, 작곡, 연기에 이어 ‘DRAG x 남장신사’에서 음악감독으로 참여했고, 연극 ‘로드킬 인 더 씨어터’에서도 음악을 맡았다.

“드랙킹 아장맨이 ‘DRAG x 남장신사’ 음악감독 자리를 제안했다.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고, 당시 코로나로 공연계가 멈춰있는 상황이라 어떻게든 연극이라는 끈을 놓고 싶지 않았다. 끈을 잡고 있으면 배우로도 나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음악극 ‘미제 사건’ 포스터(사진=제 5회 페미니즘 연극제 페이스북 페이지)
음악극 ‘미제 사건’ 포스터(사진=제 5회 페미니즘 연극제 페이스북 페이지)

-음악극 ‘미제 사건’은 직접 극을 쓰기도 했다.

“‘미제 사건’에 담긴 노래를 먼저 썼고, 노래를 극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자전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고, 허구일 수도 있다. 살아오면서 겪은 ‘사건들’이, 내 안에서는 아직 풀리지 않는 미제 사건을 해결해보고 싶은 마음이 이 극을 쓰게 했다.”

어찌하면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나요
그곳에서 멀리 도망 쳤다 생각했는데
제 발로 그곳에 찾아가 아파하고 있어요

아 열여섯의 그때
나를 만지고 버렸던 그 사람
아 열여섯의 그때
나를 버리고 만졌던 그 사람 그 사람 그 사람 
(‘미제 사건’ 중)

-‘미제 사건’을 무대에 올리고 느낀 점은.

“관객들을 만났을 때는 두려움도 많았다. 불특정한 사람들이 모이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올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공연을 보며 우는 분들이 많았다. 당시에 관객과의 대화를 했는데, 어떤 관객분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나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런 극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해주시면서 우셨다.”

-노래, 연기, 작사, 작곡, 극작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활동을 모두 소화해낼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다.

“내가 모든 영역에 재능이 있는 건 아니다. 고민 끝에 세상에 외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게 아닐까 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이렇게 슬펐다고, 억장이 무너졌다고 아무리 말해도 들어주지 않으니까 더 이해받고 싶은 갈증이 있어서라고 생각한다.”

이지구 싱어송라이터 ⓒ홍수형 기자
이지구 싱어송라이터 ⓒ홍수형 기자

-2018년 중학교 3학년 재학 당시 교사에게 입은 성추행 피해를 고발했다. 목소리를 낸 계기는 무엇이었나.

“단순한 이유였다. 폭로를 하지 않으면 내가 없어져 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크게 들었다. ‘뭐라도 해보자’ ‘싸워보자’ ‘궁지에 몰렸다’ ‘나는 아무것도 안 무섭다’는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걸 했나 싶다. 이 모든 걸 알고 다시 돌아간다고 하면 못 할 것 같다. 나는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있는 게 가끔 믿기지가 않는다. 죽을 것 같았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갈 때도 많다. 또 한 가지는 나 말고 다른 피해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후배들을 위해서, 그 사람이 교단에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과거의 나를 위해 폭로를 결심한 것도 있다.”

-2019년 가해자가 징역 1년 6개월이라는 법적 처벌을 받았다. 이후 이지구 님의 일상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재판 과정 자체가 너무 끔찍했다. 기뻐할 여력도 없었다. 솔직한 심정은 법원의 ‘ㅂ’ 자만 떠올려도 지긋지긋했다. 특히 성폭력 재판 중의 어려움을 말하고 싶다. 경찰 조사부터 판사의 판결까지, 영원한 2차가해 파티에 초대됐다고 생각하는 편이 그 시간을 견디는 데 나을 수도 있다. 음악극 ‘미제 사건’을 올리게 된 계기도 이게 크다. 연극 내용 자체가 가해자를 탓하고 나의 회복을 위한 것도 있었지만 성폭력 재판 과정 중에 일어나는 말도 안 되는 2차 가해에서 받는 피해들도 심각하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경찰의 말, 변호사의 말, 판사의 말에 대해 아직도 화가 나고. 이 화는 어떻게 회복이 될지 아직도 고민이 된다.

그 과정에서 절실히 깨달은 것은 가해자의 법적 처벌이 곧 피해자의 회복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가해자의 법적 처벌 이후, 스스로를 회복하는 것에 온 힘을 쏟았다. 재판이 끝나고 나니 음악 활동에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피해자다움'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있어 자유로워졌고, 오히려 과거의 나를 더 마주하려고 노력했다. 대학 병원에서 약물 치료, 집단 치료와 개인 상담을 진행했다. 이제야 조금은 평범한 일상을 지내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경험담이 노래에 담겨있다.

“음악이 제게 치료적이었던 것 같다. 나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고, 그 노래를 들려주면 어떤 반응이든 오는 것 자체가 치료적이었다. 음악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꿈도 가지고 있다. 음악만을 통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치적 전략과 목적에 부합하는 음악(예술)이 만난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지구가 꿈꾸는 ‘미래의 이지구’의 모습은.

“얼마 전 대학원에 진학했다. 전공은 음악치료학이다. 음악이 왜 나에게 치료적이었는지 궁금했다. 용하기로 소문난 음악치료사가 돼 있기를 바란다. 또, 죽을 때까지 평생 노래를 하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노래의 깊이가 달라진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죽기 전에 노래를 제일 잘하지 않을까. 그리고 사랑하는 존재들과 늙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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