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2년 만에 정규앨범 낸
‘블루스 디바’ 강허달림
40에 딸 낳고 찾아온 ‘인생 2막’
‘사랑’으로 꽉 채운 음반 탄생

“난 엄마 이전에 노래하는 사람
아이에게 인정받고픈 마음도 커
조바심·한계와 계속 싸워도
나이듦에 감사하게 된 40대
50대가 너무 기대돼”

싱어송라이터 강허달림이 정규 앨범 3집 ‘LOVE’로 12년 만에 돌아왔다. ⓒHLMK 제공
싱어송라이터 강허달림이 정규 앨범 3집 ‘LOVE’로 12년 만에 돌아왔다. ⓒHLMK 제공

“저의 40대는 ‘찬란함’이었어요.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낸 결과물들이 조금씩 실체가 돼 반짝이는 때죠. 엄마이기 전에 여전히 노래하는 사람이고요.”

‘블루스 디바’, 강허달림(49·강경순)이 정규 앨범 3집 ‘LOVE’로 12년 만에 돌아왔다. 방탄소년단(BTS) 뷔, 샤이니 온유, 김호중 등 후배 가수들도 꾸준히 언급하는 ‘가수들의 가수’다. 초콜릿처럼 달콤 쌉싸름한 음색, 특유의 리듬감을 추앙하는 팬들이 많다.

이번 3집은 제목처럼 ‘사랑’으로 꽉 채웠다. 자신을 너무 몰아세우지 않아도 된다고 위로하는 흥겨운 곡 ‘괜찮아요 Blues’로 문을 연다. 싱어송라이터이자 엄마, 아내라는 새로운 관계성 안에서 변화해 온 40대의 삶을 그린 ‘어른아이’, 딸을 생각하며 만든 봄날의 햇살 같은 곡 ‘LOVE’, 현진영과 함께 부른 ‘그대는 내 사랑’, 불안하고 예민했던 시절과 작별하고 행복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다짐을 담은 ‘다시 행복해지려 합니다’까지 11곡을 들려준다. 

“사랑이 메마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생각하며” 만들었다. “저도 사랑이 메마른 예민하고 까칠한 사람이었는데요. ‘순기능의 남자’, 전형적이지 않은 남자를 만나 가족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조금씩 변했어요. 결국 사랑이에요. 힘든 시대에 가장 상투적이지만 가장 중요한 말 아닐까요.”

강허달림 정규 앨범 3집 ‘LOVE’.
강허달림 정규 앨범 3집 ‘LOVE’.

올해 열 살이 된 딸아이는 그의 삶이 준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다. 피아노도 치고, 학교 브라스 밴드에서 트롬본을 연주하는 멋쟁이다. “애답지 않고 성숙하지만, 엄마가 일하고 돌아오면 곁을 떠나질 않고, 엄마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춘 춤도 곧잘 따라 추는 아이”라며 웃는 강허달림의 얼굴이 참 환했다.

그래선가보다. 생의 아픔과 쓸쓸함을 노래한 초기 앨범들과 이번 앨범이 사뭇 다른 이유 말이다. “제 음악을 쭉 들어주는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네가 (가족을 꾸리고) ‘빛’을 발견한 후의 음반이니 밝아질 수밖에 없지. 그래도 평지풍파는 또 올 거야. 딸아이의 사춘기를 겪어보고 노래를 써 줘. 하하하.”

‘엄마’의 삶이 이전과 같을 수 없다. 자유로운 음악계에도 ‘엄마의 자리는 집’이란 편견이 존재한다. 인정받던 여성 뮤지션들도 임신·출산·육아로 경력이 단절되는 일이 허다하다. 

이런 문제로 고민한 적 있는지 묻자 단호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럼 이혼해야죠. (남편과는) 애초에 음악 하는 사람으로 만났고, 서로의 일과 존재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 아이에게도 확실히 말해요. 엄마는 엄마 이전에 노래하는 사람이라고. 엄마가 일하러 육지에 간 동안 떨어져 있는 것도 당연하다고요.

물론 엄마로서 최선을 다해 아이에게 애정과 신뢰를 주려고 노력해요. 육체적·시간적 고달픔은 있어요. 아이를 재우고, 집안일을 마치고 나서야 책상 앞에 앉게 되니까요. 그래도 아이에게 제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서 앨범도 내고 공연도 하게 돼요.”

싱어송라이터 강허달림이 지난 3월29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싱어송라이터 강허달림이 지난 3월29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강허달림은 1997년 페미니스트 록밴드 ‘마고’ 보컬로 활동을 시작했다. 고(故) 김현식, 한영애, 이은미 등 걸출한 보컬들을 배출한 블루스 록 밴드 ‘신촌블루스’에 합류해 주목받았다. 2005년 첫 솔로 EP에 이어 2008년 정규 1집, 2011년 정규 2집을 발표하며 블루스, 록, 포크 등 폭넓은 음악세계를 선보여 호응을 얻었다.

여성주의 문화운동의 전성기로 불리는 1990년대 후반~2000년대에 활동하며 “여성계 언니들과 신나게 논” 추억이 많다. 아시아 여성영화인의 밤, 심상정 의원 출판기념회 등 여성들이 모인 현장을 노래로 빛냈다. 출산 50일 만인 2013년 9월엔 국내 첫 동성부부 공개 결혼식인 김조광수-김승환 부부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렀다.

40대에 ‘인생 2막’이 열렸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2013년 딸을 낳았다. 2018년 제주로 옮겨 동부 조천읍 선흘리에서 아름다운 집과 정원을 가꾸고 있다. 제주의 바람과 햇살에 담뿍 빠졌다. “뭐든 하다 막히면 흙 만지러 가는” 습관이 들었다. “어서 서울 일 마치고 제주로 ‘퇴근’해서 고사리 꺾고 풀 매고 꽃 피었나 보러 가야 한다”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늦게 배운 테니스에도 재미를 붙였다. 배운 지 1년 만에 ‘신동’ 소리를 듣고, 선수 자격으로 경기에 나가 보지 않겠냐는 권유도 받고 있단다.

제주 조천읍 선흘리에 있는 강허달림의 집과 정원. ⓒ강허달림 제공
제주 조천읍 선흘리에 있는 강허달림의 집과 정원. ⓒ강허달림 제공
테니스를 즐기는 강허달림. ⓒ강허달림 제공
테니스를 즐기는 강허달림. ⓒ강허달림 제공

아름답고 좋은 일들만 있었을까. 창작자로 산다는 일은 스스로를 세우고 무너뜨리는 하루하루의 연속이다. “강허달림 하면 누구나 떠올릴 히트곡, 대중의 마음 깊이 꽂힐 노래를 갖고 싶은 욕심이 있죠. 그런 조바심, 스스로의 한계와 계속 싸워요. 노래가 재미있고 무대가 즐겁다가도 자신감을 잃는 순간이 오고요. 만족은 없어요.”

어쨌든 ‘노래하는 사람’ 강허달림의 무대는 계속된다. “저의 40대는 ‘찬란함’이었어요. 질풍노도의 20대를 지나 조금씩 자리 잡으면서 빛이 보이기 시작한 게 30대, 그 결과물들이 조금씩 실체가 돼 반짝이는 때가 40대예요. 버겁기도 했지만 나름 열심히 산 보람을 순간순간 느끼는 때죠. 나이듦에 대해 처음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 게 40대예요. 다가올 50대도 너무 기대돼요. 이렇게 묵히고 묵히면 내가 얼마나 더 깊어질까, 더 많이 비워질까? 얼마나 재미져요.”

오는 5월 3집 발매 기념 콘서트 ‘LOVE’를 노들섬 라이브하우스에서 연다. 베테랑 뮤지션의 내공을 황홀하게 펼쳐 보일 시간이다. BTS 뷔의 추천으로 화제가 된 ‘꼭 안아주세요’ 등 히트곡도 들려준다. 예매는 인터파크 티켓(1544-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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