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 ‘포스트 휴머니즘이란 무엇인가’
신상규 이화인문과학원 교수 발표
인간중심주의 비판한 포스트휴머니즘
“기존 지배 서사 도전하는 새로운 언어 필요”

발표를 맡은 신상규 이화인문과학원 교수는 “인간과 기술과 환경, 이 셋을 어떻게 설정하고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 상상할 것인가”가 포스트휴머니즘의 핵심 주제라고 설명했다.  ⓒ박상혁 기자
신상규 이화인문과학원 교수는 “인간과 기술과 환경, 이 셋을 어떻게 설정하고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 상상할 것인가”가 포스트 휴머니즘의 핵심 주제라고 설명했다. ⓒ박상혁 기자

“지구에 있는 주체가 인간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인간과 기술과 환경, 이 셋을 어떻게 설정하고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 상상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포스트 휴머니즘의 핵심 주제입니다.”

(사)미래포럼(이사장 이혜경)이 17일 서울 종로구 라이나타워에서 주최한 회원포럼 참가자들은 ‘포스트 휴머니즘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미래 인류의 모습과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포스트 휴머니즘을 설명하는 발제를 맡은 신상규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인문과학원 교수는 인공지능의 철학, 트랜스휴머니즘, 포스트휴머니즘을 연구하는 철학자다. 그동안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 『푸른 요정을 찾아서』, 포스트 휴먼이 몰려온다』 (공저) 등을 펴냈다. 신 교수는 미래 인류가 지향할 핵심 가치를 ‘타자와의 공존’이라고 설명했다.

인간 한계 넘는 트랜스 휴머니즘 VS 조화 추구하는 비판적 포스트 휴머니즘

트랜스 휴머니즘이 반영된 영화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포스터
트랜스 휴머니즘이 반영된 영화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포스터

인류가 자연을 지배하기 시작한 근대부터 급격히 발달하기 시작한 휴머니즘은 인간을 특별한 존재로 정의하며 동물, 자연처럼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조화의 대상이 아닌 정복의 대상으로 여겼다. 그러나 빅데이터로 바둑을 훈련해 이세돌을 꺾은 ‘알파고’, 자연스러운 대화형 답변을 구현한 인공지능 챗봇 ‘챗GPT’가 세상을 놀라게 만든 것처럼,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만이 가능한 영역이라 생각하던 많은 행위들을 인간이 아닌 존재도 구현하거나 오히려 인간이 뒤쳐진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휴머니즘 담론이 위기를 겪게 됐다.  

신 교수는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모호해진 현재 기존의 인간중심담론을 재구성하려는 시도가 “포스트 휴머니즘”이라고 설명했다. 포스트 휴머니즘의 여러 갈래에서 “트랜스 휴머니즘”을 지향하는 학자들은 미래 인류(포스트 휴먼)이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통해 기계와 신체를 결합함으로써 한계를 뛰어넘는 불멸의 존재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공각기동대’, ‘리미트리스’, ‘헤일로’ 등 각종 미디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계인간은 트랜스 휴머니즘이 추구하는 인간상과 맞닿아 있다.

반면,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각종 차별과 자연파괴가 계속되자 트랜스 휴머니즘이 추구하는 이상적 미래는 자본주의와 결합해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비판적 포스트 휴머니즘’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인간과 비인간의 조화를 강조하며 여성, 노예, 인종, 장애인과 같이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한 존재들이 인간으로 존중받게 된 것처럼 동물, 자연과 같이 현재 인간이 지배한다고 여기는 많은 것들에 저마다의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언어와 서사 중요 vs 인간 권리에 도움 되나

지정 토론을 맡은 천현득 서울대학교 교수는 신상규 교수의 발표에 대부분 동의한다며 “기존의 휴머니즘 해체, 인간과 비인간의 연대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상혁 기자
지정 토론을 맡은 천현득 서울대학교 교수는 신상규 교수의 발표에 대부분 동의한다며 “기존의 휴머니즘 해체, 인간과 비인간의 연대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상혁 기자

신 교수는 과학기술이 가져다줄 가능성과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을 고민하며 “새로운 언어와 서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가 지구에 거주한다는 것은 인간만의 힘이 아니라 다양한 동식물과의 협력으로 가능하다”며 인간의 과학기술이 상호협력을 위한 방향으로 발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정 토론을 맡은 천현득 서울대학교 교수는 신상규 교수의 발표에 대부분 동의한다며 “기존의 휴머니즘 해체, 인간과 비인간의 연대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기존의 보편적인 인권 담론이 해체되는 게 제 3세계로 불리는 국가의 여성 인권 문제를 해결할 때 도움이 되는 것인가”, “동물, 자연, 사이보그 등에도 권리를 부여할 때 인간이 가지고 있던 권리가 약화되는 것은 아닌가” 등의 질문을 던졌다.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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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교수는 특히 “동물과 자연에 권리를 부여하자는 주장을 두고 인간끼리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많다.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실제로 동물원, 육식, 길고양이 보호, 개간, 화석연료 등에서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 사이의 분쟁이 전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양측 입장을 조율하기 어려워 분쟁이 격화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참가자들이 열띤 토론을 이어간 가운데 장필화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은 “여성주의를 공부하고 실천하며 인류의 새로운 미래에 대한 고민이 한 세대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고 밝혔다. 장 이사장은 우리가 한꺼번에 모든 담론을 만들어낼 수 없다며 “각자도생의 현실을 넘어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 공존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작지만 뜻깊은 출발이다”고 포럼의 의의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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