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마트에 진열된 수영복. ⓒ뉴시스·여성신문
서울 시내 한 마트에 진열된 수영복. ⓒ뉴시스·여성신문

하드보일드 추리 소설의 주인공인 잭 리처는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미스테리한 사건을 해결한다. 그는 정처 없이 떠돌면서도 가방은커녕 주머니에 접이식 칫솔만 넣어 다니는 걸로 유명하다. 겉옷도 입던 게 더러워지면 허물을 벗듯 버리고 새로 사 입는다. 그래서 영미권 사람들은 짐 없이 홀가분하게 다니는 걸 가리켜 ‘잭 리처 스타일’이라고 한다.

운동가기 전에 짐을 챙길 때마다 간절히 잭 리처가 되고 싶다. 단지 운동하러 가는데 이렇게 챙길 게 많다니. 수영장에 갈 때는 거의 대중목욕탕에 가면서 수영복, 수경, 타월까지 덤으로 챙기는 거나 다름없다. 그러나 수영장 가방 속이 제아무리 번잡해도 주짓수 가방에 비할까? 일단 ‘기’(gi)라고 불리는 도복 한 벌만 넣어도 그 무게와 부피에 회의감이 밀려온다.

‘오늘 운동가지 말까?’

잭 리처는 운동 따위 하지 않는 게 분명하다. 특히 그가 칫솔만 들고 다닐 수 있는 결정적인 요인은 여성이 아니라서다.

보부상처럼 짐을 들고 다니는 것보다 더 최악은, 절대 빠트려서는 안 될 소지품을 빠트리는 거다. 그나마 로션이나 샴푸를 깜빡하면 빌려 쓸 수라도 있으니까 양호하다(여성들은 물건을 정말 흔쾌히 빌려준다).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집으로 돌아가거나 운동을 아예 포기해야 하는 경우는 따로 있다. 바로 브라를 빠트렸을 때다.

지난 주말에도 수영장에 가면서 실리콘 패드를 빠트렸다. 내가 입는 외국 브랜드의 수영복은 가슴을 덧대는 패드가 달리지 않아서 피부에 바로 밀착되는 실리콘 패드를 쓰는데 그걸 빼먹은 거다. 집으로 돌아가자니 너무 귀찮아서 한 번쯤 그냥 갈까 고민했다. 하지만 역시 안 될 일이다. 가슴을 패드로 가리지 않으면 풀에 들어가기도 전에 샤워장에서부터 지적당할 게 뻔하다. 여러 겹 껴입어봤자 물속에서 저항만 커지는데 수영복 하나만 입으면 안 됩니까, 여러분?

투덜거리면서 패드를 챙겨서 수영장에 갔더니 지각이었다. 서둘러 풀에 들어갔는데 문득 화가 치밀었다. 수영장은 대표적인 여성 인구 과밀 지역이다. 남성은 레일 하나에 한두 명이 있을까 말까 한데 그들은 가슴을 가리긴커녕 당당하게 웃통을 벗고 있다. 그러니까 저 몇 명 되지도 않는 남자들의 시선 때문에 여성들이 서로 복장을 단속해야 하는 건가.

주짓수 도장도 형편이 비슷하다. 몇 년 전에 남성 회원들 사이에서 재킷 속에 아무것도 입지 않는 스타일이 유행한 적이 있다. 여성은 스포츠 브라 위에 티셔츠를 입고 그 위에 재킷을 입는 게 철칙인데 그에 비하면 자유로워도 너무 자유로운 것 아닌가? 도장 근처에 다 와서야 스포츠 브라를 빠트린 걸 알고 급하게 4~5만 원짜리 스포츠 브라를 사 입었던 일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여기까지 쓰는 동안 ‘그렇게 소원이면 웃통을 벗고 다녀라’는 비아냥이 귓가에 맴도는 것 같다. 특별히 독해 능력이 부족한 이들을 위해서 정리하자면, 이 글의 메시지는 ‘운동복에도 어김없이 적용되는 성별 권력에 관해서 한번 생각해 보자’는 거다. 왜 한쪽 성별은 체육관에서, 심지어 야외에서도 상의를 탈의하는 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고 나머지 한쪽은 가슴의 윤곽조차 보이지 않게 단속해야 하는지에 관해서 말이다.

앞서 언급했든 외국 브랜드에서 만든 여성용 수영복에는 패드가 달리지 않는다. 유럽만 해도 수영장이나 사우나 탈의실이 성별 구분 없이 공용으로 운영되기도 한다. 외국에서는 비교적 흔한 노브라 차림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제한적인지 생각해보면 우리 문화가 여성의 몸을 강력하게 억압하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성의 몸이 음란하고 가려야 할 무엇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신체로 인식되려면 얼마나 더 시간이 흘러야 할까?

넷플릭스의 추천작인 ‘거꾸로 가는 남자’는 성별 권력이 뒤바뀐 세상을 소재로 한 영화다. 그 세상에서는 여성들이 집안에서 상의를 탈의한 채로 돌아다니고 거리에서도 웃통을 벗은 채로 달린다. 아직은 뒤집힌 세상, 판타지 속에서나 상상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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