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 앞 세종대로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100일 추모집회 현장. ⓒ정보라 작가 제공
4일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 앞 세종대로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100일 추모집회 현장. ⓒ정보라 작가 제공

2월에는 세 번 데모했다. 

4일엔 10.29 이태원 참사 100일 추모집회에 다녀왔다. 오전 11시 녹사평역 분향소에 집결해 삼각지역, 서울역, 시청역을 거쳐 광화문으로 가서 오후 2시 추모집회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세우는 과정에서 경찰과 충돌이 일어났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분향소는 무사히 만들어졌고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는 녹사평역 분향소를 정리하고 서울광장 분향소로 통합 유지할 계획이다. 

10.29 이태원 참사와 추모제에 대해서는 한정된 지면 안에 잘 정리된 글을 쓸 자신이 없다. 세월호 농성장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이 아주 비슷한 상황에서 아주 비슷한 맥락으로 아주 비슷하게 펼쳐졌다. 심지어 피켓에 적힌 요구사항까지 거의 같다. 그래서 나는 몹시 괴로웠다. 녹사평역 분향소를 운영할 때도,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할 때도 세월호 부모님들이 도와주셨다. 세월호 가족분들은 언제나 반갑지만 이런 상황에서 다시 뵙는 것만은 정말 결단코 원하지 않았다. 참사 유가족이 애도할 시간도 여유도 없이 단지 추모할 권리, 진실규명을 요구할 권리를 얻기 위해 거리에 나와 싸우는 광경을 평생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참사 책임자들, 가해자들, 2차 가해자들 모두 저주한다.

4일 10.29 이태원 참사 100일 추모집회에서 든 손팻말들. ⓒ정보라 작가 제공
4일 10.29 이태원 참사 100일 추모집회에서 든 손팻말들. ⓒ정보라 작가 제공
정보라 작가가 지난 21일 대구지방법원 앞에서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의 복직 투쟁에 연대해 시위하고 있다.  ⓒ차헌호 아사히비정규직지회장/정보라 작가 제공
정보라 작가가 지난 21일 대구지방법원 앞에서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의 복직 투쟁에 연대해 시위하고 있다.  ⓒ차헌호 아사히비정규직지회장/정보라 작가 제공

8일과 21일엔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과 같이 데모했다. 아사히글라스는 일본 도쿄에 본사를 둔 외국 기업이다. 현재 ‘AGC화인테크노’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같은 회사고 공장 위치도 그대로다. 2015년 아사히글라스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자, 회사는 한 달 뒤 178명을 문자 한 통으로 해고했다. 그중 22명이 지금까지 만 7년째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다. 

법정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계속 이겼다.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에선 원청인 아사히글라스가 해고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파견법 위반 형사소송에서도 제조업 파견은 불법이라는 사실을 재판부가 확인했고 일본인 사장과 하청업체 사장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그런데 지난 17일, 불법파견 항소심 재판부인 대구지방법원 형사4부(재판장 이영화)는 원심을 깨고 아사히글라스에 무죄를 선고했다. 불법파견 혐의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주심 판사는 아사히글라스 측 법률대리를 맡은 법무법인에서 근무했던 이력이 있다. 앞선 재판에서 입증된 증거와 사실관계를 뒤집고 옛 직장과 동료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판결이 나왔으니 여러 의혹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검찰은 2심의 무죄 판결에 동의하지 않아 22일 상고했다.

그리고 아사히비정규직지회는 20일부터 대구지법 앞 항의시위를 열고 있다. 나는 포항에 있으니까 대구가 멀지 않아서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원고 마감 때문에 한 번밖에 못 가서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분들께 죄송하다.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점심 선전전을 함께 했는데 대구지법 앞은 주변 건물에 가려 그늘이 져서 낮인데도 상당히 추웠다. 지회장님은 점심시간인데 사람이 별로 없다고 걱정하셨다. 추운 그늘에 고생하는 분들을 남겨놓고 집에 돌아오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투쟁 7주년(!) 문화제에서 들은 바에 따르면 아사히글라스 본사가 복직투쟁 노동자 22명 중 21명에게 차헌호 지회장만 빼고(!!) 복직시켜줄 테니까 노조 활동을 하지 말라는 대단히 비열한 제안을 내놓았다고 한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 해고노동자 21명 모두 (조금 원색적인 언어로) 거절했다. 지회장 포함 22명이 다 같이 복직하든지 다 같이 투쟁하든지 둘 중 하나다. 타협도 분열도 없다. 아사히비정규직 지회 분들 정말 멋지다. 

지난 8일 경북 구미시 아사히글라스 공장 앞에서 열린 아사히비정규직 수요문화제 현장.  ⓒ정보라 작가 제공
지난 8일 경북 구미시 아사히글라스 공장 앞에서 열린 아사히비정규직 수요문화제 현장.  ⓒ정보라 작가 제공

경북 구미시 아사히글라스 공장 앞에서 매주 열리는 아사히비정규직 수요문화제에도 지난 8일 다녀왔다. 발언 주제에 박정희 숭모관 건립 문제가 포함돼 있어서 같이 성토하고 싶었다. 구미시 참여연대 집행위원장님은 박정희 생가가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돼 있다는 이유로 구미시 관계자들이 지자체 사업을 할 때 박정희부터 들고 나온다며 “상상력의 부재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상상력으로 먹고사는 입장에서 매우 인상 깊었다. “디지털구미문화대전” 홈페이지에 보면 구미시 출신 의병과 독립운동가가 55명이나 나열돼 있다. 명창 박록주 선생이 구미 사람이고, 학자나 문학가도 많고, 선사시대 유물부터 통일신라시대 불상까지 역사적이고 예술적인 유물, 유적도 풍부하다. 이런 넓고 깊은 바탕을 활용해 굉장히 다양한 사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구미시청은 각성할 필요가 있다. 

그나마 좋은 소식은 건강보험공단이 동성부부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야 한다는 2심 판결이 21일 나왔다는 것이다. ‘오소리’와 ‘소주’ 부부께 축하의 말씀을 전하며 대법원까지 가서 깡그리 이기셨으면 좋겠다. 

노동조합 활동을 할 권리, 불법파견이나 부당해고를 당하지 않을 권리, 자신이 선택한 사람과 합의하에 가족을 구성할 권리,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는 모두 연결돼 있다. 노동자로서 인간으로서 우리는 모두 존엄할 권리가 있다. 그 권리를 위해 싸우는 분들을 응원한다. 

세계적 권위 문학상 ‘부커상’ 국제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정보라 작가가 우리 사회 곳곳의 차별과 폭력에 대한 저항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월간데모’로 독자들을 만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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