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직접 신고해도
1년 넘게 지나서야 삭제처리한 구글
피해자에게 '사진 있는 신분증' 요구도
국제엠네스티 구글에 신고 시스템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탄원 캠페인

구글 온라인 성폭력 생존자 보호하라 캠페인 이미지. ⓒ국제앰네스티
구글 온라인 성폭력 생존자 보호하라 캠페인 이미지. ⓒ국제앰네스티

“온종일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구글에서 제 이름을 검색했어요. 계속 검색하느라 하루에 1시간도 채 자지 못했고, 계속 악몽을 꿨어요. 하지만 이러한 현실 자체가 더 악몽이었습니다.”

디지털 성범죄 생존자 김현진(가명)씨는 “(가해자가) 영상을 올리는 것은 너무 쉽지만, 그 영상을 삭제하는 데는 몇 달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비동의 성적 영상이 온라인에 유포된 이후 경찰을 찾아갔다. 구글에는 신고접수 확인 메일을 받은 후 1년 이상 기다린 끝에야 삭제요청에 대한 처리결과를 통보받을 수 있었다. “한 번은 유포된 영상의 URL을 검색했는데, (검색 결과가) 30페이지가 넘게 나왔다. 요청을 해도 쉽게 삭제되지 않았다. 계속 삭제요청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피해자들에게 구글은 거대한 유포 웹사이트다. 그런 면에서 구글은 최악의 2차 가해 웹사이트”라고 비판했다.

국제앰네스티는 국내 온라인 성폭력 피해 생존자와 활동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국의 온라인 성폭력 생존자들이 구글의 느리고 복잡한 콘텐츠 삭제 요청 시스템으로 인해 더욱 큰 고통을 겪고 있다"라고 8일 밝혔다. 세계 최대 검색엔진인데도 비동의 성적촬영물 신고 절차를 찾기가 어려운 데다, 신속히 처리도 되지 않아 성착취 영상이 온라인에서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앰네스티는 생존자와 활동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구글에 콘텐츠를 신고해 봤다고 답한 11명이 모두 삭제요청이 제대로 처리되는지 확인하기 어려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신고 처리 과정에서 구글의 후속 안내나 통보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구글 온라인 성폭력 생존자 보호하라 캠페인 이미지. ⓒ국제앰네스티
구글 온라인 성폭력 생존자 보호하라 캠페인 이미지. ⓒ국제앰네스티

제대로 작동 않는 구글 신고시스템

국제앰네스티는 한국의 온라인 성폭력 생존자들이 구글의 느리고 복잡한 콘텐츠 삭제 요청 시스템으로 인해 더욱 큰 고통을 겪고 있다고 봤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경험한 한국 여성·소녀들은 구글의 비동의 성적촬영물 신고 절차를 찾기가 지나치게 어렵고, 그 결과 성착취 영상이 온라인에서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윤지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처장은 “한국에서 급증하는 디지털 성범죄로 여성과 소녀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는 상황에서, 구글의 불충분한 비동의 성적촬영물 신고 시스템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며 “빅테크 기업들은 한국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나 온라인 젠더기반폭력 확산을 막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 전 세계의 생존자들은 성착취물을 삭제하기 위해 문제 있는 시스템을 동일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구글의 신고양식 중에는 신고 제출 시 ‘사진을 포함한 신분증’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유포 피해를 입은 생존자가 자신의 사진을 온라인에 올리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절차라는 지적이 나온다.

추적단불꽃 활동가 ‘단’은 “이미 피해 영상이 유포되고 있는 온라인에 생존자의 사진을 포함한 신분증을 올리라는 요구는 그 자체로 트라우마를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테크 기업들, 피해 방지 책임 있어

구글은 자체 인권 정책을 통해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지침 의해 확립된 기준을 준수”한다고 밝히고 있다.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지침(UN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을 보면 모든 기업은 자신의 활동이 인권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하거나 이에 기여하지 않도록 하며, 부정적 영향이 발생할 경우 이에 대처할 책임이 있다.

윤지현 사무처장은 “구글은 디지털 성범죄 생존자들의 삭제요청에 느리고 일관성 없이 대응함으로써 인권 존중에 실패하고 있다. 구글은 접근하기 쉽고, 절차가 간단하며, 처리 과정을 파악하기 쉬운, 생존자 중심 신고 시스템을 도입해 또 다른 트라우마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구글은 디지털 성범죄를 포함한 온라인 젠더기반폭력이 자사 서비스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디지털 성범죄 생존자에게 필요한 것은 구글의 신고체계로부터 불필요한 고통을 계속 받는 게 아니라 도움을 받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지난 11월 11일 관련 내용에 대한 질의서를 구글에 보냈으나 구글은 공식적으로 답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구글이 개별 미팅에서 이 사안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향후 대응에 있어서 개선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국제앰네스티는 8일부터 구글에 신고 시스템의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구글 온라인 성폭력 생존자 보호하라’ 국제적 탄원 캠페인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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