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PC’? ‘블랙 팬서 2’는 마블의 진보다
‘과도한 PC’? ‘블랙 팬서 2’는 마블의 진보다
  • 유해 작가
  • 승인 2022.12.03 17:44
  • 수정 2022-12-05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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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한 영화 읽기]
남성 영웅 빈자리 채우기 아닌
흑인 여성 영웅들 보여준 속편
전통·권위 맞서 영역 넓히는 여성들 서사로
시대 변화에 발맞추는 마블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영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상식적으로’, ‘원래 그렇다’라는 말은 얼마나 무능하고 게으르며 폭력적인가. 작가 황정은이 『디디의 우산』(2019)에서 한나 아렌트를 인용하며 이야기했듯, ‘상식’은 사실상 “사유의 한 양식이라기보다는 그 사유의 무능에 가깝다”. 상식을 논할 때 사람들이 실은 ‘사리분별을 하고 있지 않은’ 상태, ‘사유라기보다는 굳은 믿음, 몸에 밴 습관’에 가까운 무엇에 기댄 상태라는 황정은의 진단은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이하 ‘블랙 팬서 2’)의 미래를 향한 단단한 시선과도 닮은 듯하다. 그 미래는 기존의 ‘원래 그런 것’들, 상식과 관습과 법칙을 모조리 부수고 ‘원래 그런 것’이 쫓아냈던 이들을 복권하는 미래다.

시리즈 1편의 주연 배우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장례를 치르는 장면으로 포문을 여는 후속작은 마블에게도 엄청난 도전이었을 것이다. 많은 남성 평론가가 이 영화의 애도적 기능을 두고 “3년째 지겹게 작별 인사 중”이라며 혹평했지만, 마블은 애도 그 너머를 보고 있었다. ‘블랙 팬서 2’는 전 세대의 공백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 마블의 노선을 분명히 하기 위해 등장한 약속과 같은 영화다. 그리고 그 약속에는 비남성, 비백인 소수자와 함께 ‘새로운 세대’에 대한 조망 또한 포함되어 있다. 마블은 영리하게도 지금껏 유지해온 ‘원형’을 포기하고 새로운 소비자인 Z세대가 가장 원하는 것을 즉각 제시하는 지극히 상업적인 방식으로 위기를 타개한 것이다.

마블이 10년 넘는 세월 동안 끈질기게 그려온 영웅의 기본형은 당연하게도 남성이었다. 하나같이 ‘아빠 문제’(대디 이슈)를 가졌던 그들은 아버지가 마련해준 의례나, 유사 아들 같은 제자를 기르는 과제를 통해 성인식을 치른 후 ‘흠결은 있지만 선하고 사랑스러운 성인 남성’ 영웅이 된다. 그나마 동료 여성에 대한 존중을 갖췄던 트찰라마저도 경애하던 친부의 비극적 죽음 이후 전통적 규율과 새로이 나타난 남성 혈육의 도전 사이에서 고뇌하는 진통을 겪은 후에야 진짜 남성 영웅이 되지 않았나.

그런데 트찰라의 어린 여동생 슈리를 새로운 영웅으로 채택한 속편은 부계 혈연주의 서사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슈리가 맞서 싸우는 건 어떤 거악이나 절대악이기 이전에, ‘절대악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오래된 전통과 굳건한 체계다. 슈리는 가부장 중심의 패러다임, 보수적 담론, 헤게모니와 먼저 싸워야 하고 그것에 익숙함을 느끼는 여자들과도 싸워야 한다.

영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캐릭터 포스터.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캐릭터 포스터.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슈리-리리-아요라는 세 젊은 여성과, 라몬다-오코예-나키아로 대표되는 이전 세대 여성들의 미묘한 대립을 눈여겨보자. 오코예는 슈리의 ‘과학’을 힘겨워하며 기존의 무기가 얼마나 우아한지 예찬하는 보수주의자다. 라몬다와 나키아는 유화적 권력으로 슈리의 분노 서린 도전을 잠재우려 한다. 그들은 모두 슈리를 사랑하지만, 슈리의 기술과 사상이 어딘가 위험하다는 어렴풋한 ‘느낌’으로 슈리를 향한 불신에 일조한다.

그런데 슈리는 오롯이 자기 힘으로 블랙 허브를 되살리고, 모두의 충고를 경청한 후에 적시에 옳은 선택을 내려 현명한 지도자임을 입증한다. 슈리의 자기 확신은 사람들이 해주는 좋은 말보다도, 지극히 개인적인 천재성, 적군과 아군을 기민하게 분류하는 판단력, 현실주의적인 성격, 그리고 세상을 향한 분노에서 추동한다. 전통이 ‘원래’ 이런 거니까 따라야 한다고 말한 여자들은 결국 슈리의 압도적인 역량을 인정하게 된다. 퀸 라몬다가 AI 그리오를 불러내고, 오코예가 미드나잇 엔젤 수트를 입고 싸웠듯 말이다.

슈리는 전통에 맞서 싸우는 자신만의 방법 역시 정립해야 하는데, 이때도 그의 탁월함이 빛을 발한다. 1편의 매력적인 숙적(아치 에너미) 에릭-킬몽거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 슈리의 성인식에 등장한다. 에릭은 누가 네 뺨을 친다면 그냥 맞아주고 용서하라는 예수의 법칙에 주먹질하는 양아치다. 트찰라가 비폭력 저항, 평화와 연대를 이야기한 마틴 루서 킹의 현신이라면 킬몽거는 백인의 폭력에 저항하는 흑인의 자기방어를 주장한 말콤 엑스를 상징하는 존재다.

블랙 팬서의 계보 속에서 오로지 슈리와 에릭만이 동질한 격정을 가질 수 있다. 에릭의 헛된 분노에 슈리가 잠시 사로잡힌 게 아니라, 새 시대의 정동인 ‘정당한 분노’, 즉 ‘누가 네 뺨을 친다면 너도 똑같이 갚아줘야 마땅하다’는 법칙에 공감하는 세대인 슈리가 에릭에게 공명한 것이다.

하지만 슈리는 트찰라가 수호한 평화의 가치 역시 이해하기 때문에 새로운 방법을 찾아낸다. 분노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되, 적이 되지 않을 수 있는 상대에겐 연대를 제안하는 것이다. 슈리는 에릭의 유지와 트찰라의 유지를 동시에 이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며, 이는 리리의 말대로 그가 “어린 천재 흑인 여성”이기 때문에, 즉 너무나 명민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동시에 너무나 쉽게 무시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마블은 안타깝게 스러진 남성 영웅의 ‘공백’을 채우는 데에 실패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어린 흑인 여성 영웅을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제시하는 데에 성공했다. 여전히 어떤 이들은 슈리나 리리의 희미한 존재감을 질타하거나 그들의 존재 가치를 의심하지만, 그들에게 되묻고 싶다. 과연 마블의 숱한 남성 인물들은 정말로 ‘필요해서’ 존재했는가. 처음부터 완벽한 영웅이었는가. 사실 굳이 등장할 이유가 없는데도 서로를 북돋아 주며 스크린을 차지한 남성 주·조연이 그간 얼마나 많았는가. 그에 비하면 처음부터 서로의 재능과 결정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영웅이 되어야 할 이유와 방법을 제시해준 파트너 관계의 슈리와 리리는 얼마나 선명하게 자기 존재의 당위성을 증명하고 있는가.

영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영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그간 마블의 여성 영웅들은 (오리지널 팬 보이들의 원성을 사면서도) 자기 영역을 조금씩 넓혀왔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그들이 언제나 홀로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블랙 팬서 2’에서 여자들은 군인이자 과학자이자 천재이자 퀴어이자 소녀이자 엄마일 필요가 없다. 그들은 다양한 롤을 각기 맡아 공존하며 놀라운 화면 점유율을 자랑한다. 마치 마블이 바로 이 순간의 결실을 보기 위해 최저 속도로나마 달려온 것만 같다.

마블의 변화를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에겐 ‘과도한 PC’는 한때의 유행이 아니라 인류가 정확한 방향으로 진보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비웃어주고 싶다. 무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건 악한 것과 다름없고, 이제 그걸 용납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제 ‘원래 그런 것’은 없다. 상식과 전통은 그 옳음을 증명하지 못하면 알아서 해체될 것이다. 발맞추지 못하고 계속 ‘사유하지 않는 상태’, 습관과 믿음에 의존하는 상태에 남아있고 싶다면, 얼마 안 가 당신 역시 (당신에게만 좋았던) 그 소중한 ‘상식’과 같이 소멸할 것이다. ‘블랙 팬서 2’는 어린 여성들의 이러한 확신에 근거를 주는 완벽한 신화다.

유해 작가는

회사원. 영화 읽고 책 보고 글 쓰는 비건 페미니스트. 브런치: https://brunch.co.kr/@yoo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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