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의 영상 뽀개기] 회귀물에서나 가능한 계층이동 ‘재벌집 막내아들’
[김은영의 영상 뽀개기] 회귀물에서나 가능한 계층이동 ‘재벌집 막내아들’
  • 김은영 고려대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외래교수
  • 승인 2022.12.02 17:59
  • 수정 2022-12-02 17: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JTBC

노력으로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고 하는데, 부모를 선택하여 태어날 수 없기에 대다수 사람들의 운명은 이미 태어나는 순간 결정된다. ‘태어나보니 XX가 OO’로 소개되는 아이들은 부모 혹은 가까운 친척이 유명인으로 소위 다이아몬드 수저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를 말한다. 아이가 누구인지를 직관적으로 설명하는 동시에, 그 아이의 남부럽지 않은 배경에 대한 부러움의 표현이기도 하다.  

계층 사다리가 끊어졌다 이야기되는 지금,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외치는 수많은 흙수저들에게 힘든 현실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자 숙명으로 여겨지곤 한다. 이와중에 간간히 들려오는 누군가의 성공신화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판타지로 느껴질 뿐이다. <재벌집 막내아들>(JTBC)은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시청자들에게 운명을 바꾸는 것이 현실에서 불가능한,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JTBC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JTBC

<재벌집 막내아들>은 현재 시점에서 재벌가의 힘들고 지저분한 일을 충성스럽게 처리하던 재벌 총수 일가의 비서인 윤현우(송중기)가 억울한 죽음을 당한 후 1987년의 진도준이 되어 그가 범인도 찾고 성공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드라마이다. 언뜻 누군가의 복수극으로 그려질 수 있는 드라마인데, 회귀물이라는 웹소설 장르를 드라마로 옮겨온 까닭에 기존 드라마와 차별화된 방식의 이야기 전개를 보여준다. 특히 낮은 스펙과 힘든 가정사로 어려움을 겪던 주인공이 ‘다이아몬드 수저’인 ‘진양그룹 회장의 막내 손자’가 되는 이유가 드라마에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은 회귀물이라는 장르적 특성에 기댄 것이지만 동시에 이것이 갖는 의미 또한 생각해볼 수 있다.  

인과관계를 중시하는 드라마의 서사 전개 과정을 볼 때, 이처럼 극 중 주인공이 드라마에서 타인으로의 새로운 신분을 획득하는 경우에는, 막장드라마일지라도 유전자 정보 조작이나 잃어버린 피붙이 찾기처럼 어떠한 이유와 과정들이 제시된다. 그런데 <재벌집 막내아들> 속 주인공인 윤현우는 죽고 나서 눈을 떠보니 그냥 진도준이 된 것으로 나온다. 주인공이 (심지어 본인의 과거도 아닌) 다른 사람의 유년 시절로 돌아간 이유나 과정에 대해 극에서는 아무런 설명이 제시되지 않는다. ‘왜 윤현우는 진도준이 되었는가? 어떻게 이게 가능한가? 그렇다면 진도준의 원래 영혼은 어디 있는가?’ 와 같은 질문에 드라마는 애초부터 알려줄 의도가 전혀 없다. 그냥 불가사의한 힘에 의해 그렇게 된 것으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주인공 역시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된 것에 초반에 혼란을 겪지만, 이유를 찾거나 진짜 본인의 모습으로 혹은 현재로 되돌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주인공도 그냥 믿을 수 없는 삶을 기적이자 새로운 기회로 받아들일 뿐이다.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JTBC

주인공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인생을 다시 사는 이야기를 다룬 회귀물은 보통 주인공의 환생이나 빙의를 통해 두 번째 인생을 살게 되는데,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주인공은 빙의에 의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것이다. (참고로 상반기에 방영된 드라마 <어게인 마이 라이프>의 주인공은 고등학생으로 환생히니 인생 2회차를 살게 되는 회귀물이다.) 회귀물의 특성을 알지 못하는 드라마 시청자들은 여러 의문을 제기하지만, 그냥 그 설정을 받아들이고 이야기 전개를 따라가야만 한다. 빙의 회귀라는 이성이 작동하지 않는 설정에 기반한 이야기의 전개와 그 속에서 주인공의 성공은 말 그대로 현실에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판타지이다. 드라마는 흙수저였던 인물이 자신의 수저계급(현실)을 뛰어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판타지라는 장치를 가미하여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드라마는 능력주의 또한 담아낸다. 주인공은 뛰어난 두뇌로 진양그룹 회장의 자서전의 내용을 모두 꿰뚫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토대로 시의적절한 투자를 통해 부를 불린다. 결국 기이한 힘에 의해 되돌아간 판타지의 세계에서도 개인의 능력은 사회적 부와 지위를 획득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것이다. 얼마 전 종영한 <금수저>나 <어게인마이라이프>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는데, 다른 사람과의 운명을 바꾸거나, 두 번째 인생을 사는 주인공들은 역시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였다. 결국 기이한 힘에 의해 새로운 기회를 얻는다 해도 능력이 탁월한 사람만이 본인의 삶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이다. 

 <재벌집 막내아들>과 같은 회귀물 장르의 인기는 태어난 배경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계급수저론이 힘을 얻을수록, 현실에 대한 좌절의 파고가 높을수록 커질 것이다. 판타지에서만 가능한 계층이동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닫힌 사회인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여성신문은 1988년 창간 이후 여성 인권 신장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여성 이슈 주간 정론지 입니다.
여성신문은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성의 '안전, 사회적 지위, 현명한 소비, 건강한 가족'의 영역에서 희망 콘텐츠를 발굴,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를 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여성신문이 앞으로도 이 땅의 여성을 위해 활동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성신문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