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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숙

아주대 사회과학부 교수

'성희롱'을 공식적으로 사회문제로 제기했던 저 '우조교 사건' 이래로 우리 사회가 여성에 대해 덜 희롱적인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가를 생각할 때 별로 긍정적인 답변이 얻어지지 않는다. 국회에서는 남성의원이 여성의원을 두고 “우리집 안방…만져 달라는 거지”라고 하지를 않나, 고위공무원은 여성상사의 외모를 두고 희롱 발언을 하지를 않나, 일부 대학에서는 여학생회를 중심으로 “양성평등 수업평가제”를 도입해 교수들의 성희롱 발언에 대해 평가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고, 그런가 하면 교육계의 대표 중의 한 분을 선출하는 공개석상에서 어느 후보가 버젓이 발설한 전근대적인 성희롱 발언 등, 우리 사회는 더욱 더 심해져 가는 성희롱으로 어지럽다.

성희롱의 문제는 일상생활에 교묘히 위장된 형태로 녹아 있는 여성 비하의 문제를 잘 드러내준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그만큼 다루기가 어렵고 따라서 성희롱의 문제는 여전히 혹은 이전보다 더욱 심하게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2003년) 미국의 유수 심리학 잡지에 게재된 한 연구에 따르면, 성희롱을 하게 되는 남성들의 심리과정은 (여성들과) 친하다고 아무 생각 없이 하는 행동과는 괴리가 있다. 이탈리아에서 수행된 이 연구에 따르면, 남성들이 여성을 성희롱하게 되는 것은 남성정체감이 위협을 받게 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희롱의 결과, 희롱한 남성들의 남성으로서 자부심과 정체성이 높아졌다. 연구에서는 이탈리아 남성들에게 옆방에 있는 여성들에게 여러 가지 사진을 보낼 수 있도록 (컴퓨터를 통해) 상황을 꾸몄다. 이 사진들 중에는 무해한 사진들과 함께 포르노에 근접한 사진들이 끼여 있었다. 남성들은 여러 가지 실험 상황을 통해 남성으로서 정체감에 위협을 느끼도록 되거나 반대로 그러한 위협이 없는 상황에 처했다. 그 결과 남성으로서 정체감에 위협을 받은 남성들이 그렇지 않았던 남성들에 비해 모르는 여성들에게 성희롱 사진을 더 많이 보냈다.

이 연구에서는 남성들의 정체감을 위협하는 유형을 세 가지로 분류해 검토했다. 첫째는 지위정당성 위협('페미니스트 위협')으로, 전통적으로 남성들이 차지하던 지위나 직업 및 역할에 여성들이 도전하거나 남성의 권위에 연대집단을 이루어 성평등을 요구하거나 하는 경우 야기되는 위협감을 지칭한다. 둘째, 남성들의 특성이 여성들과 별로 다르지 않게 되어가고 있다는 '특출성 위협', 그리고 셋째, 제일 강력한 효과를 자아내는 위협이 '전형성 위협'의 경우다. 이는 한 남성이 다른 남성들과 유사하기보다는 오히려 여성들과 더 유사하여 전형적 남성이 되지 못한다는 위협을 받는 경우다.

연구결과로 미루어볼 때,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 왜 성희롱이 점점 더 기승을 부리고 있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한마디로, 남성들이 기존에 지켜오던 권위와 우월감을 다치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남성들이 여성을 더 이상 만만한 존재로 여기지 않고 위협감을 주는 대상으로 여기게끔 되었다는 데에 일면의 위안을 삼아야 할까? 남성과 여성간의 건설적이고 평등한 관계를 구축하는 데에 중대한 방해가 되고 있는 성희롱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희롱에 기저하는 이러한 남성심리의 메커니즘에 대해 남녀 모두가 인식하고, 남녀 성구분을 강조하는 사회 상황과 맥락을 약화시키며 아울러 남성들의 근거 없는 우월감을 수정하고자 하는 개인적, 사회적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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