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의 위기 상황이 계속되면서 고용문제가 심각한 이슈로 떠

오르고 있다. 지난해에도 조기퇴직, 명예퇴직 바람이 불면서 직장인

들의 마음을 썰렁하게 했지만, 그래도 그때는 쉬쉬하는 분위기가 있

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경영난에 처했거나 부도방지협약의 대상

이 된 기업들이 줄을 이으면서 공개적인 대량감원이 이루어지고 있

다. 특히 진로, 대농, 기아, 쌍용, 한일, 한라그룹 등에서 구조 조정

과 기구축소로 인해 임직원의 대량감원이 심각하게 진행중이다. 현재

시중경기도 바닥이어서 실직자의 재취업도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

다. 그나마 올해보다는 상황이 괜찮았다는 지난해에도 '고급인력정

보센터'에 구직신청을 한 간부급 퇴직자의 재취업율이 8%선, '인

력은행'에 구직신청을 한 일반 실직자의 재취업율이 31% 선이었음

을 감안하면 올해 실직자의 재취업율은 형편없이 낮을 것으로 예상된

다.

기존의 인력도 대량해고를 당하는 판이니 대졸취업대상자의 취업문

도 좁아질 수밖에 없다. 올 하반기 대졸취업 희망자는 지난해 하반기

에 비해 20%정도 늘어났지만 30대 재벌기업, 금융기관, 공기업 등이

모두 불황타개를 위한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신규채용 인력규모를

지난해 보다 10-30% 줄였다. 그룹별로는 삼성, 현대, 대우 LG 등이

지난해 수준을 유지할 뿐 나머지 기업들은 신규채용을 가급적 억제할

계획이다. 금융권도 잇단 금융사고로 감량 경영이 불가피한 상태이고

한국통신, 한전 등 공기업들도 인원감축을 시도하지 않을 수 없을 것

이다. 이로 인해 올 하반기 대졸 취업난이 근래들어 최악의 상태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

량 실업은 경기적 요인과 구조적 요인이 복합된 것이다. 물론 심각한

경제침체로 인해 기업이 사업규모축소, 기구축소, 인원감축을 할 수

밖에 없는 사정은 이해 할 만하다. 또한 과다한 인건비의 절감과 생

산성 향상을 위해 조직의 슬림화를 꾀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직장인들에게 직장은 삶의 터전이다. 기업가들은 경영의 효율화를 위

해 쉽게 해고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몰라도 당하는 임직원들은 미래

생계가 불투명해지면서 심각한 생활고에 봉착하게 된다.

그런데 지금 묻고 싶은 것은 경기침체와 기업부실 그리고 구조전환

의 1차 책임이 과연 근로자에게 있는가 하는 것이다. 경기가 조금 나

아지거나 어떤 업종이 유망업종이라고 소문나면 벌떼같이 몰려들어

과다경쟁과 중복투자를 한 것은 기업주 아닌가? 기업의 경영 실패를

근로자 탓으로 돌리면서 대량해고를 통해 문제를 해결코자 하는 것은

책임 전가이며 안이한 해결방식이다. 직장선배들의 말로가 비참하니

하위직 근로자들이나 새로 입사한 후배들도 회사일에 신명을 바치기

보다는 자기사업이나 전직에 눈을 돌려 회사 분위기가 어수선해질 수

밖에 없다. 이제 평생직장의 신화도 사라졌고 열심히 일해 전문경영

인이 되겠다는 생각도 엷어졌다.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은 필요할 때마다 입장을 바꾸어왔다. 경영

환경이 나아지면 규제완화와 자율경영을 주장하고 경영환경이 나빠지

면 정부지원을 외친다. 더욱이 많은 기업들이 젊은 2세를 전면에 등

장시키면서 권위주의적 경영이 더 강화되고 직계·방계 혈족이나 친

구 선후배가 아니면 자리를 유지할 수 없는 일이 다반사로 생기고 있

다. 그들의 무리한 경영으로 기업이 위기에 처했음에도 정작 1차적

피해자는 뼈빠지게 고생한 근로자들에게 돌아가고 있으니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작금의 고용사정이 이 지경이니 대학생들도 기업 취직보다는 사시,

행시, 외시, C.P.A수험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 고

려대, 연세대는 이미 거대한 고시학원으로 변모하고 있다. 어찌 이것

도 대학교육만의 잘못이고 학생들의 입신출세욕 때문만이라고 비판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는 우리나름대로의 독특한 고용풍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고용주와 근로자간 인간적 신뢰와 공동체의식이 살아

있어야 한다. 이것이 어설픈 선진화, 효율화란 구호아래서 깨져버렸

다. 구조조정도 좋고 조직 슬림화도 좋고, 경쟁을 통한 효율성 제고

도 좋다. 그러나 선진국형 고용제도를 채택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전

제조건이 필요하다. 즉 기업 소유구조의 개선, 생산성에 따른 급여제

도와 승진태도, 업적평가 제도의 객관성, 직장이동과 직업보도제도의

확립, 실업에 따른 사회보장제도의 구축 등이 절대 필요하다.

이러한 제도적 바탕없이 경기상황에 따라 마구잡이로 뽑고 마구잡이

로 해고시킨다면 그 모든 사회적 책임은 기업과 정부가 져야 한다.

지금 우리사회는 희망이 없는 사회로 전락하고 있다. 더욱이 생존권

과 직결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발생하면 그 자체

가 사맏勞효嶽括?되어 우리의 공동체의식도 파괴된다. 모든 경영실

패의 1차 책임은 오너 기업인이 져야 한다. 회사가 위기에 빠지면 자

신의 경영권 유지에만 집착하면서 근로자에게 책임을 전가해선 안 된

다. 이제 대량해고로 인한 실업문제, 실직자들의 재취업문제, 그리고

신규취업문제에 대해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그 대책을 논의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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