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웅 교수의 '나는 여성정치인이 싫다'에 관하여

조현옥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대표

몇 주 전 <여성신문>에 꽤 도발적인 제목의 글이 실렸다. '나는 여성정치인이 싫다'라는 글로, 평소 친여성적인 태도를 보인 김광웅 선생님의 (첫 GS리더 포럼의)강연을 옮겨놓은 것이다. 지난 봄 내내 여성정치인이 증가되어야 한다는 모토 아래 뛰었던 사람으로서, 아니 이 무슨 이야기인가 싶었지만, 내용인즉슨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서구논리의 이분법을 여성들을 중심으로 극복하자는 것이었다. 즉 여성과 남성을 나누어 서로 적대시하고 구분하지 말고, 여성정치인들도 여성의 시각에서만 정치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시각에서 여성들이 남성을 끌어안고 하나가 될 수 있는 묘합의 정치를 펼쳐야 한다는 이야기로 충분히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운동 한다, 또는 페미니스트라고 표방하는 것은 꽤 부담스러운 일이다. 여성들이 남성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나아가서는 남성들을 제치고 그 위에 올라서겠다는 것으로 오해받기도 하고, 운동의 논리상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남성들에 대한 공격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지금 여성계에서 여성정치인들에게 요구하는 것도 여성의 입장에서 정치를 보고, 여성의제를 다루어달라는 것이니 결국 남성과 여성이라는 대립구조를 강조하는 '한국의 정치발전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 여성정치인들을 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성주의자들 또는 여성운동가들이 생각하는 세상은 여성과 남성이 공존하는 사회다. 여자들이 남자 머리의 꼭대기 위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보자는 꿈을 갖고 있다. 즉 투쟁의 대상은 남성들이 아니라 남성적인 가부장적 구조이며, 정치에서 여성정치인을 강조하는 이유도 이들을 중심으로 균형과 조화의 정치를 이룩하자는 의미다. 즉 김광웅 선생님이 생각하는 서구적인 이분법을 초월한 조화의 정치가 구현되는 사회다.

다만 문제는 어떻게 이에 도달하는가다. 지금처럼 힘의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상생 강조는 자칫 잘못하면 강한 쪽의 논리에 함몰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아니면 강자의 시혜를 부단하게 요구하거나, 모든 사람은 평등해야 한다는 도덕성만을 강조하게 된다. 이는 종교나 도덕의 논리이지 정치의 논리는 아니다. 정치는 적절하게 힘의 균형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서로 공존하고 조화할 수 있다. 여성과 남성, 또는 여성정치인과 남성 정치인의 경우에도 서로 여성, 남성만의 시각에서 벗어나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정치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우선 힘의 균형으로 나아가는 것이 한 방법이다.

이제까지 한국 정치에서 여성의 시각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그 동안 여성정치인들이 소수 있었지만 그 숫자로는 여성적인 시각이 끼여들 수 있는 장은 마련되지 않았다. 이제 겨우 한국정치에 여성적인 시각이라는 개념이 생길 시기에 여성정치인들이 묘합의 정치를 이루기 위해 여성적인 시각을 포기하고 전체를 바라보아야 한다면 이는 이분법을 초월한 전체가 아닌, '남성의 시각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체'가 될 가능성이 많다. '여성은 남성의 시각으로, 남성은 여성의 시각으로 정치와 사회를 바라보자'는 주장은 너무나 멋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여성은 남성의 시각으로, 남성도 남성의 시각'으로 끝나버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힘의 균형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정치영역에서 여성들이 남성들을 무슨 수로 끌어안고 상생의 정치를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인가.

둘은 둘이되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둘의 자율성이 살아 있고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 정치의 영역에서도 여성과 남성이 이분법으로 대립하지 않는 하나의 정치로 가기 위해서는 여성과 남성이 서로 자신의 존재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시각을 교환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정치인들이 여성의 입장이 정치에 녹아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갈 기반을 갖추고, 남성정치인들도 그들만의 꿈에서 깨어나 이 사회에, 정치에 여성들이 구성원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 그리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서로 입장을 바꾸어볼 수 있을 때 묘합의 정치는 비로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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