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얼마나 더 친절해져야 하나
엄마는 얼마나 더 친절해져야 하나
  • 유해 작가
  • 승인 2022.11.06 12:24
  • 수정 2022-11-06 23: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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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한 영화 읽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리뷰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우리가 살아가는 ‘창백한 푸른 점’. 헤아릴 수 없는 우주의 광막함은 이따금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악의 어린 말과 정확히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나라는 인간이 얼마나 작고 가치 없는 존재인지 끊임없이 되새기게 만드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인생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진실을 통해 외려 가뿐하게 살아갈 힘을 얻지만, 다른 이들은 그 사실에 짓눌려 자신을 잃기 일쑤일 것이다.

모두가 허무와 슬픔 속에서 헤매는 요즘, ‘이 넓은 우주에서 함께 살아가는 운명인 이상 서로에게 최선을 다해 다정하자’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메시지는 꽤 유효한 제안처럼 보인다. ‘친절은 냉소주의보다 훨씬 용기 있고 합리적인 전략’이란 근거 역시 논리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인생에는 종종 친절함을 선택할 여유조차 없어지는 큰 위기가 있고, 어떤 사람들에겐 그런 위기가 특히 자주 찾아온다는 사실을.

영화의 주인공 에블린은 미국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며 살아가는 중년의 중국계 이주여성이다. 그는 심약하고 태평한 남편 웨이먼드 대신 가장이 돼 가족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분투하는데, 이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전통적 가부장의 전철을 착실히 밟게 된다. 경제적 안정만 챙기다가 정작 정서적 유대를 쌓지 못하고, 효율적이지만 상냥하진 않은 판단을 내리고, 남편과 레즈비언 딸 조이를 윽박질러 주눅 들게 하는 독단적 통치자가 돼 버린 것이다. (감독들이 본래 성룡을 염두에 두고 극본을 썼다가, 부녀보다 모녀 관계의 불화를 풀어가는 게 더 낫겠다는 판단하에 주인공의 성별만 바꾸고 양자경을 캐스팅했다는 뒷이야기를 납득할 수 있는 순간이다.)

수많은 ‘아빠’들이 그러했듯 에블린은 어느 날 갑자기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든다. 웨이먼드가 이혼 신청서를 내밀고, 다른 우주에서 악당이 된 조이는 무수히 많은 우주를 떠돌며 에블린을 찾아다녔다는 이야기를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우주의 에블린도 억울한 구석이 있다. 에블린은 웨이먼드와 결혼하지 않고 조이를 아예 낳지 않은 다른 우주의 자신(들)이 얼마나 화려한 삶을 누릴 수 있었는지 목격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 우주의 에블린이 중요한 순간마다 최악의 선택을 내리면서 온 우주에서 가장 별로인 가족과 직업을 떠맡은 덕분에 나머지 에블린들의 삶이 더 나아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어떻게 하면 돌아갈 수 있지?”라는 에블린의 자문에는 “남편과 딸이 생기기 전으로”라는 함의가 생략된 것만 같다. 딸의 입장에서 듣기엔 섬찟하고 괴로운 말이다. 우리의 엄마들 역시 자기 몫의 가족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많은 기회를 얻고 더 나은 인생을 살았을 사람들이 분명하니까.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놀랍게도 에블린은 투사다운 고집을 한 번 꺾어보기로 한다. 친절함을 전략 삼는 웨이먼드의 태도를 배우고, 더 나은 자신을 되찾기보단 상처 입은 딸을 끌어안길 선택한다. 딸의 오랜 괴로움을 이해하고, 투신하려는 딸을 힘껏 잡아준 엄마 덕분에 우주적 뒤틀림은 바로잡힌다. 온 우주에서 제일 실패한 엄마와 제일 실패한 딸이 서로의 가족 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낭만적 서사는 결국 ‘사랑이 그 무엇보다 강한 무기’라는 극도의 낙관을 관객에게 설득하고 만다. 더불어 ‘전략적 친절함’은 가정 내의 관계에 그치지 않고, 이주가정 바깥의 적대적 주류 문화를 상징하는 세무서의 백인 여성 디어드리와의 불화까지 해소하면서 그 힘을 입증한다.

지치고 나이 든 비주류 여성이 실은 다중우주를 구하는 영웅이었다는 이야기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감동하지 않기란 어렵다. 이 서사의 주인공이 엄마와 딸인 것만 해도 얼마나 소중하고 희귀한 급진인가. 그런데 이토록 아름다운 결말에도 불구하고 찜찜한 기분이 남는다. 이미 자기 탓이 아닌 ‘무수한 거절, 무수한 실망’을 겪어온 사람이 오로지 사랑과 친절만으로 불공평한 현실을 극복하기는 어렵단 걸 알기 때문일까.

좋은 엄마가 되는 건 좋은 아빠가 되는 것보다 몇만 배 더 어려운 세상. 남편은 가사노동의 가장 쉬운 부분을 아주 조금만 거들어도 가정적이라는 평을 듣지만, 부인은 일과 가사와 육아를 동시에 해내도 단 한 번의 실수로 인해 비난받기 쉬운 세상. 든든한 가장다운 엄마는 ‘억척스러운’ ‘아줌마’로 폄하되고 아빠의 철없는 다정함은 상찬받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가사노동의 외주화를 상징하는 세탁소를 운영하는 중년 동양인 여성이 드물게도 가족의 ‘보스’로 등장했는데, 그에게 다시금 친절과 다정을 보여달라고 말하는 건 그가 ‘엄마다움’의 영역에 머물러주길 바라는 세상의 가혹한 요구 같다. 더군다나 그에게 다정하게 굴어달라고 애원하는 주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남편, 그것도 부인의 보호 아래 순수를 간직하며 살아온 남편이라면, 아무래도 조금 얄밉지 않은가.

게다가 다중우주로 점프할 수 없는 현실의 엄마들에겐 웨이먼드만큼 가정적이고 다정한 남편도 없다. 오히려 그들이 바로 웨이먼드 그 자체다. 그들은 에블린처럼 가내 대소사를 완벽하게 관장하고, 웨이먼드처럼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해야 하는 이중 요구 하에 놓여 있다.

영화를 여러 번 볼수록 세탁소 창문을 야구 배트로 깨부수며 “처음부터 여기가 싫었어”라고 고백하는 에블린의 모습만 마음 아프게 새겨진다. 딸과 남편을 사랑하는 것도 그의 진심이지만, 그들을 두고 갈 수 없어 벗어나지 못한 너저분한 삶을 싫어하는 것 역시 그의 진심일 수 있다. 수많은 우주 중에는 결말 이후의 에블린이 더 ‘이기적’으로 구는 우주, 화해한 가족들을 두고 집 밖으로 다른 삶을 찾으러 떠나는 우주 역시 존재하리라 믿고 싶은 이유다.

유해 작가는

회사원. 영화 읽고 책 보고 글 쓰는 비건 페미니스트. 브런치: https://brunch.co.kr/@yoo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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