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권 바로미터] 수사·판결·절차의 수행보다 더 중요한 것
[군인권 바로미터] 수사·판결·절차의 수행보다 더 중요한 것
  • 방혜린 전 군인권센터 활동가·예비역 대위
  • 승인 2022.10.08 11:00
  • 수정 2022-10-06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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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예람 중사의 1주기를 맞아 5월 20일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추도식이 열렸다. ⓒ홍수형 기자
고 이예람 중사의 1주기를 맞아 5월 20일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추도식이 열렸다. ⓒ홍수형 기자

모든 가해는 법규에 따라 그에 맞는 엄정한 대가를 치러야겠지만, 모든 피해자가 이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피해자는 신고하고, 수사를 의뢰하고, 조사를 받고, 법정에 나가는 모든 사법절차가 매우 부담스럽다. 특히 군대는 폐쇄적인 조직의 특성상 피해자의 피해 내용이 암암리에 퍼지기 쉽고, 이 과정에서 본인이 예상하지 못했던 2차 피해에 노출되곤 한다. 피해자가 병사라면 사건이 알려질 경우 어려워질 내무생활에 대한걱정이 앞설 테고, 직업군인이라면 사건과 관련된 일들이 인사 고과나 업무에 차질을 줄까 우려할 것이다. 사건 자체도 힘든 일인데, 옴짝달싹 떠나지도 못하는 조직에서 원치 않은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고된 일이다.

그래서 많은 피해자는 사실 공론화나 법적 대응보다도 가해자와 조직에게 합당한 사과를 받는다면 더 이상사건을 키우지 않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에게 사과란 이런 것이다. 첫째, 가해자가 가해 사실에 대해 명백히 인지하고 자신의 과오와 죄에 대해 인정하는 것이다. 둘째, 인정에 따라 반성하고 가해자의 언동에변화가 있기를 바란다. 속된 말로 자중하고 지내면서 ‘나대지 말란’ 얘기다. 셋째, 가해자의 사과가 공식화되면 이에 따라 조직은 피해자를 보호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강구해 줬으면 한다. 법적으로 고되고 지난한 절차를 밟지 않고 가해자의 가해 행위를 중단하고, 2차피해를 예방하고, 조직에 의해 교육과 사후 조치가이루어지는 것. 피해자 나름의 ‘윈-윈’ 방식인 셈이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가해자는 원하지 않는 방식의 사과를 하고, 사과를 받아주기를 강요한다. 그러고 뒤에서는 피해자도 책임이 있다며 피해자와 가해사실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린다. 가해자에 동조하는 무리들이 이를 더 부추기기도 한다. 조직은 신고를 할거냐 말거냐를 가지고 피해자를 압박하고, 너의 신고가 우리 부대에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히는지, 너만 조용하면 모든 일이 괜찮아질 것이라며 침묵을 종용한다. 결국 피해자는 사과받기를 포기하고 수사기관에 신고를 한다. 지휘체계 아래 놓여있는 군 수사기관은 지휘부를 비롯한 각종 압박에 시달리거나, 혹은 수사 자체에 대한 미숙함으로 인해 수사가 어그러진다. 어렵사리 군사법원에 갔더니, 온갖 핑계로 감형을 받는다. 법원의 위치와 성격으로 인해 재판 자체가 공개되기 어려운 군사법원에서는 “초범이라서”, “성실하게 복무해서” , “곧 장기 선발이 예정돼 있어”라는 핑계가 황당할 정도로 잘 먹힌다. 보는 눈이 없기 때문이다. 군사법원의 성폭력 범죄 실형선고율(10.2%, 2015~2020. 6월 기준)은 일반법원(25.2%, 동기간)의 그것보다 형편없이 낮은 수준이다. 

작년 군대 내 성폭력 범죄 문제에 경종을 울렸던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성폭력 피해자 사망사건(이예람 중사 사망사건)’은 이런 문제를 마치 교과서처럼 보여준 사건이었다. 성폭력의 직접 가해자 장모씨는 피해자에게 공갈, 협박까지 동원하며 사과를 받아주기를 종용했고, 주변 동료들까지 가세해 회유에 나섰다. 소속부대대대장은 피·가해자 분리 조치 등 피해자 보호책임이 있음에도 이를 하지 않았고, 수사 절차는 공군 사법체계의 최고 책임자인 공군본부 법무실장에 의해서부터 무마 시도가 있었다. 피해자는 조직의 방치에 의해 고통속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대부분의 사실은 원래의 수사 절차가 아닌, 유가족이 끝까지 싸워서 얻어낸 특검(공군20전투비행단 이예람 중사 사망사건 관련 군내 성폭력 및 2차 피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에 의해 밝혀졌다.

특검을 통해 밝혀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는 상상보다 더 대단했다. 성폭력 가해자 장모씨는 명예훼손으로추가 기소됐는데, 동료 군인들에게 “일상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인데 신고를 당했다. 선배님들도 여군 조심하세요”, “이 중사가 내 행동을 받아줘 놓고는 신고한 것” 등의 허위 사실을 부대에 유포했는가 하면 공군본부의 공보담당자는 사망 이후 피해자가 2차 피해가 아닌 ‘부부간 불화로 사망한 것’이라는 얘기를 국방부 출입 기자들에게 공연히 퍼뜨리고 다녔다. 뿐만 아니라 수사 증거일 수 있는 녹음파일까지 전달한 것도 특검을통해 드러났다. 이미 사건이 공론화 돼 전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을 시기에도 피해자를 향한 2차 피해가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뒤늦게라도 사건을 바로잡아야 할 법무실장과 그의 변호인은 언론과 사회관계망서비스(페이스북)을 통해 “(사망) 원인이 100% 성추행으로 일어난 걸로 했는지 그런 부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분도 있더라고요”라며 사실을 호도하기 바빴다.

가해자 장씨에게는 9월 29일, 성폭력 건에 대해 2심에서 2년 감형된 징역 7년의 선고를 확정했다. 특검을통해서 추가로 기소된 것은 전익수 공군본부 법무실장 등 8명이다. 이예람 중사 유가족은 어제 선고와 관련해 “법은 피해자인 우리 아이에게 너무 차가운 잣대를 들이댔고, 가해자에게는 너무 따뜻했다”며 아쉬움을토로했다. 

특검까지 해서 추가 수사도 수사대로 진행됐으니, 이제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특검 결과에 대해 우리나라 국방부는 아직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편 9월 30일, 일본 자위대에서 발생한 성폭력·성희롱문제에 대해 재조사를 요구하며 공론화했던 육상자위관 ‘고노이 리나’에 대해 일본 육상막료장과 방위성 인사교육국장이 언론에 나와 “오랫동안 고통을 받은 고노이님에게, 다시 한번 깊이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대단히 죄송했습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일본의 육상자위대 최고 지휘관이 피해자의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모습은 TV 생중계를 통해 보도됐다. 29일과 30일의 대비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언제쯤,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희생되어야 책임 있는 모습을 먼저 나와 보여줄지 씁쓸하기만 하다. 

방혜린 전 군인권센터 활동가·예비역 대위
방혜린 전 군인권센터 활동가·예비역 대위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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