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과 합리적인 질서에 이의제기

'편집증' 가장한 광기로 무의식 상태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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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화된 선반. 1982. 브론즈.

일생 동안 천재적인 기상천외의 행동들과 독특한 환상의 세계를 보여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는, 그림 속의 축 늘어진 시계, 신체 기관의 기형적인 확대, 빵 덩어리와 계란 프라이, 목발, 개미 등의 신경질적이고 강박적인 독특한 형태들을 통해 일반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화가다.

초현실주의 운동은 정신의 참된 해방을 위해 “무의식의 받아쓰기”를 시도한 시인들에 의해 1924년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운동은 이듬해 화가들을 영입하면서 보편적인 예술 개념에 반기를 들고 당시 사회의 타락한 가치관과 억압, 상식과 합리적인 질서 개념에 이의를 제기하는 데 목적을 두고 전개되었다. 그러나 1929년경 이 운동에 가담한 달리는 인간의 완전한 해방을 위해 노력한 초현실주의 이념의 실현에 기여했다기보다는 자신의 개인적인 강박적 천재성을 해소하기 위해 초현실주의를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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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웨스트 입술 소파, 1995, 혼합매체.

달리는 유년기 및 청소년기를 비롯한 자신의 삶의 기억을 프로이트식의 정신분석적 방법으로 해독하고자 스스로 '은밀한 삶'을 기록하기도 했는데, 그의 다분히 조작된 자전적 기록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죽은 형과 아버지에 대한 관계에서도 프로이트 식의 해법에 필요한 대로 약간의 과장과 윤색을 더한 것은 사실이다. 또한 성(性)과 관련된 극단적인 죄의식과 두려움과 혼란 및 정서적 불안을 창조력의 주된 근원으로 삼은 달리의 미술은 바로 프로이트의 이론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기도 했다. 이러한 태도는 그가 운명적으로 만나 평생을 같이한 10년 연상의 여인 갈라 엘뤼아르와 함께 매스컴 및 대중적 관심을 끌기 위해 벌였던 광기 어린 행동들에서도 볼 수 있다.

살바도르 달리에게 초현실주의란 “우리의 시각을 구속하는 족쇄”를 부수기 위해 “혼돈을 체계화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시각에만 의존하는 기존의 미술 이미지들을 비판하고, 초현실주의자들이 이용하기에 적절한 매체인 영화에 열광하기도 했다. 그가 초현실주의자들과 만나게 된 1929년 파리로 가게 된 것도 친구인 루이스 브누엘과 함께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가 가장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초현실주의 예술 활동은 바로 회화였다. 다른 화가들처럼 달리도 처음에는 “진정한 초현실주의 작품으로서 자격을 갖추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오토마티즘(자동기술법)”의 실현에 관심을 가졌으나, 곧 오토마티즘 자체보다는 “편집증적-비판 방법”이라는 다분히 의학적, 학문적인 권위를 암시하는 교묘한 방법을 사용하기로 한다. 이는 “편집증의 정신병 상태를 적극적으로 추구함으로써 혼란을 체계화하고, 현실을 비정상적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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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1960, 목판화.

그가 광기(狂氣)를 가장하기 위해 빌려 온 '편집증'은 겉으로는 정상인과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내적 논리와 구조를 가졌으며, 완벽하게 기능하는 현실세계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모델을 창출하는 정신병이었다. 달리는 이러한 광증을 통해 사물과 사건을 해석함으로써 이성과 의식의 지배를 벗어난 무의식의 정신상태를 그리고자 한 것이다.

성(性)의 원초적인 억압과 불안에 관계된 프로이트의 꿈의 분석 사례연구는 달리를 매혹시키면서 모든 사물을 비정상적이고 강박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그의 '편집증적-비판방법'에 그야말로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가 어렸을 적부터 복사된 그림으로 본 밀레의 <만종>에 대해 정신병의 해석을 가한 것은 유명하다. 이 그림에서 그는 남편의 거세와 살해된 아들의 관(棺), 성적인 의미를 지니는 농기구 등을 주장하며, 실제로 두 인물의 발 사이에 그려진 바구니에 X-선을 투사해 밀레가 먼저 그렸다가 지웠을 어린아이의 관의 흔적을 찾으려고 애썼다. 이러한 과장된 해석은 물론 설득력을 지니지는 않지만, 이성과 합리를 뛰어넘는 정신적 이탈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중인 달리 탄생 100주년 기념전은 꿈과 환상, 관능성과 여성성, 종교와 신화라는 세 부분으로 달리의 작품을 구분한다. 그의 유화 작품들이 한 점도 없다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그런 대로 달리의 초현실주의 진면목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다. 특히 회화에 근거한 형상을 3차원으로 옮긴 브론즈 조각들과 에로틱한 가구들이 눈에 띈다.

그의 대표적인 그림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기억의 고집>의 축 늘어진 시계들은, 이제 3차원의 물체가 되어 감각을 박탈당한 듯한 병적인 상태의 침묵과 악몽, 정신적인 환상을 드러내면서 그 예기치 않는 부드러움으로 다시 한 번 새삼스럽게 그의 강박성을 전이시킨다. 또한 '서랍 달린 밀로의 비너스들'이야말로 욕망의 덩어리들이라 할 수 있는 것들로, 서랍은 닫힌 공간에 대한 호기심을 나타낼 뿐 아니라, 여성의 숨은 관능성을 뿜어내고 있다. 그 외에 피게라스의 '달리 극장식 미술관'에 있는 <매 웨스트> 방의 패러디는 원작의 에로틱하면서도 익살스런 유머에 포스트모던 유머를 곁들여 이 전시를 즐길 수 있는 색다른 묘미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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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숙 미술사가

이화여자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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