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부적응아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부적응아란 말하자면 예전에 문제아라고 불리던 학생들을 일컫는데 그들 대부분은 문제를 일으키고 학교에서 처벌을 받고 난 후 자원봉사센터 등에서 자원봉사를 한다고 한다.

내 생각에 '부적응아'들은 나름대로 사회에, 학교, 가정에 적응을 하고 있다. 단지 사회의 기준과 다르게 적응하고 있을 뿐인데 사회에서 그들의 행동이 기준과 다르다고 부적응아라고 부르는 것뿐이다. '부적응아'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뿐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무엇이 잘못이고 무엇이 문제인지는 알려주지 않고 자원봉사만으로 일을 마무리하려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실제로 문제아, 부적응아, 날라리라는 아이들을 만나보면 매우 순수하고 따뜻하며 재미있는 아이들이라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그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문제가 그 아이들이 아니라 그들의 부모나 교사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아이슈타인이 그랬다던가. '항상 같은 방법을 사용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바보다'라고. 아이들에게 아무리 떠들어대도 자원봉사 활동을 시켜도 아이들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그 방법을 계속 사용하는 부모와 교사들의 문제다. '공부해라'를 입에 달고 사는 부모들과 선생님들이 다시 생각해야 하는 것은 공부해야 할 사람은 아이들보다 우선 자기 자신이라는 점이다.

아이들은 항상 변한다. 하루가 다르게 사회가 변하고 아이들의 마음과 몸이 자라는데 늘 같은 방법으로 아이들을 대한다면 어떻게 아이들이 적응할 수 있겠는가? 부디 '나름대로 적응하는' 우리 아이들을 '부적응아'라는 이름으로 문제화하지 말고, 그들을 이해하려고 애쓰시기를. 상대를 '이해'(understand)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밑에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항상 위라고 생각하고 있는 어른들이 아이들 밑에 서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부모교육이나 교사교육은 '어떻게 아이들을 문제아로 만들지 않을 것인가' 또는 '어떻게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의 밑에 위치하는 법'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첫걸음이 될 것이고 그러기 위해 그 안에는 관계형성을 위한 여러 가지 구체적 방법들이 포함될 것이다. 그나마 가끔씩 교사교육이나 부모교육을 의뢰하는 분들이 생기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러니 제발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만 외치지 말고 부모님과 선생님들 부모교육과 교사교육 좀 하시기를… '상대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깨우치는 이런 작업이야말로 현대에 가장 필요한 셀프 리더십의 첫걸음이 아닐까?

이진아 세종리더십 개발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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