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란

상지대 불문학과 교수

여자들에게 말을 겁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 또는 아직은 덜 존재하는 어떤 대상에게 말을 건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우리는 아직까지 충분히 존재했던 적이 없으니까요. 여자들은 물이 밑바닥에 아주 조금 차 있는 거의 빈 유리잔 같습니다.

언젠가, 어떤 남성 하나가 저에게 “나이보다 젊어 보이시네요”라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몇 년 새 팍 늙어서 그렇지도 않지만, 전에는 그런 얘기를 이따금 들었어요.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건 좋아할 얘기만은 아닌 것 같았어요. 그건, 내가 충분히 살았던 적이 없다는 말이기도 했으니까요. 저는 그때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살면서 어른 대접을 받은 적이 없었으니까요.”

내게 질문을 던졌던 사람은, 잠깐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아 그렇군요. 그럴 수도 있겠어요. 그런 생각은 미처 해보지 못했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요, 우리 여자들은 그렇게 어느 시간까지 덜-인간으로 대접받다가, 어느 순간부터 쭈그렁쭈그렁 늙어버립니다. 인간이 될 틈도 없이… “아이고, 가엾어라,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하고…”라는 탄식은 사실은 어떤 여자들만의 탄식이 아니라, 모든 여자들의 탄식이지요. 물론, 남자들도 그래요. 어떤 축복받은 특별한 개인들을 제외하면, 사람들은 대체로 그렇게 피어보지도 못하고 시들어버리지요.

“일생 동안 꿈을 꾸었어. 그런데 눈을 떠보니, 어느 틈에 머리카락에 서리가 내려앉아 있어.”

그건 인간이면 누구나 다 느끼는 아픔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더욱더 그렇지요. 그리고 남자들보다 더 일찍 빈 껍데기가 되어 버려요.

하지만, 언젠가 어떤 신부님께 이런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답니다. 그 신부님께서는, 인간의 키란 땅바닥에서 재는 게 아니라, 하늘로부터 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렇다면, 모자라서, 땅바닥에서 더 가까운 사람의 키가, 차고 넘쳐서 보통 사람들보다 키가 더 큰 사람의 키보다 더 큰 것이지요. 그 말을 듣고, 내 마음속에 호롱불 하나가 켜지는 것 같았어요.

신부님의 그 말씀은, 사람은 사람이 이미 드러낸 가치가 아니라, 그가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가치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의미 같았어요. 그가 아직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한 무수한 가치들 쪽에서 그를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겠지요. 신학적으로 말한다면, 그 신부님의 말씀은, 한 인간이 자신을 비우고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정도로 그 인간의 크기를 재야 한다는 의미였겠지요. 그래서 나는 집에 돌아와서 “하늘 날개 베어내네”라고 썼어요. 나는 날개 쪽에서, 있는 쪽에서 하늘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하늘 쪽에서, 없는 쪽에서 사물을 바라보았어요. 그러자 내 못남은 갑자기 내 못남의 바깥에서 나의 윤곽을 색종이처럼 오려냈지요. 나는 오려내어진 윤곽 안쪽에 있지 않고, 윤곽의 바깥쪽에 있었어요.

우리 여자들은, 그래요, 밑바닥에 물이 조금 차 있는 빈 유리잔이에요. 하지만, 빈 쪽에서 재면, 물이 가득 차 있는 잔보다 조금 차있는 잔의 물이 훨씬 더 많아요. 이건 자기 위안의 기만적인 방식이 아니라, 인간의 개념을 다시 정립하려는 의지이지요. 스스로 비어 있다고 느끼시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새로운 인간의 개념에 더 잘 맞는 사람이에요. 스스로를 사랑하세요. 드러난 것 쪽에서가 아니라, 드러나지 않은 쪽에서 당신을 바라보세요. 물이 조금만 차 있다면,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더 많이 받을 수 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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