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역사 속 여성 리더십] 제우스의 폭력적 섹슈얼리티, 살아남은 여신들 말하다
[신화와 역사 속 여성 리더십] 제우스의 폭력적 섹슈얼리티, 살아남은 여신들 말하다
  • 김봉률 동국대 경주캠퍼스
  • 승인 2022.09.09 12:00
  • 수정 2022-09-20 16: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그리스신화와 여신의 지도력
“Jupiter and Juno on Mount Ida” (detail; 1790). James Barry (Irish, 1741–1806). Image via Wikimedia Commons.
“Jupiter and Juno on Mount Ida” (detail; 1790). James Barry (Irish, 1741–1806). Image via Wikimedia Commons.

그리스신화는 인류의 태곳적 원형이라기보다는 현대 서구 자본주의 문명의 원형에 가깝다. 현재 인류의 문명은 기후위기와 생물종의 대멸종으로 위기에 빠져있다. 그런 의미에서 문명의 위기와 불안은 그리스신화의 이념적 산물이기도 하다. 그리스신화는 타민족과 여성과 자연에 대한 지배와 억압에 관한 이야기이므로.

신들의 전쟁에서 승리한 제우스가 여신을 정복해나가면서 가부장제를 수립한다. 승자로서 제우스는 독식한다. 여신이든 요정이든 여자이든 원하면 모두 취한다. 우선 여신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의 권능을 전유한다. 법과 이치, 음악과 예술, 그리고 농업, 심지어 임신과 출산력까지도. 우리가 흔히 아는 3대 여신 헤라, 아테네, 아프로디테에게는 엄마가 없다. 아프로디테는 우라노스의 정액만으로 탄생한다. 임신한 연인의 뱃속에서 꺼낸 태아를 제우스는 머릿속이나 허벅지에 넣어 기르다가 산일에 출산한다.

남신인 제우스가 임신출산하고 어머니 없는 여신들이 올림포스 종교의 로얄 패밀리가 되는, 왜 이런 신화가 필요했을까? 그 전 시대엔 여신들이 숭배받고 여성들이 남녀 평등한 사회를 이끌지 않았을까. 전쟁의 승자였던 남신들은 이 평등했던 시대의 문화적 지각방식을 폭력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절반인 여자들을 배제시키려면 폭력적 지배가 수반된다. 사실상 신화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제우스가 여신들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방법이다. 신화는 그 비열하고 폭압적인 제우스의 사랑 방식을 세세하게 전한다. 강간이나 납치와 같은 폭력적 관계가 사랑의 신화적 전범이 된다. 헤라에게는 비 맞은 뻐꾸기로 변신해 동정심을 유발해 덮치고, 강력한 지혜의 여신 메티스가 두려워 삼켜버리고, 황소로 변신해 에우로페를 납치하여 여신성이 가장 성스러운 크레타에 가서 겁탈한다.

제우스가 여신이나 여성을 데리고 희롱하고 노는 데 몰두했다면 자연정복이나 민중억압에 앞장서는 건 헤라클레스를 비롯한 영웅들이다. 신화에서 제우스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헤라클레스는 권력자를 위해 자연을 정복하고 땅을 빼앗아 대토지소유자를 위해 일하며 저항하는 민중들을 때려잡는다. 당시의 영웅들의 일은 가부장제의 옹호 뿐 아니라 계급적 불평등을 정초하는데 일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웅숭배란 바로 억압을 욕망하는 심리이다.

이런 억압적인 가부장제 신화에서, 그리고 가부장제와 타협한 여신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이들 여신들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분석하고 평등한 미래를 위한 대안적인 삶을 찾아갈 수 있을까? 갈수록 가부장제가 강화되던 고대아테네 민주정 시대엔 딱 3명의 여자 이름만 나오는데, 그리스신화에는 수많은 여신들과 요정들의 이름이 나온다. 그만큼 그 전의 평등했던 시절을 가늠할 수 있다. 제우스나 다른 남신들이 전인적이지 않듯이 이들 여신들도 그 자체로 바람직한 원형들은 아니다. 하지만 이 여신들은 예전의 ‘위대한 여신’의 일부를 나누어가진다는 점에서 우리에겐 새로운 상상력으로 들어온다.

권력자 남편에 대한 이중적 태도에 실망도 하지만 관계를 통해 삶의 균형을 맞추어가려는 지난한 노력의 헤라에게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삶을 지속시키는 강인함을, 숲속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남자에게 얽매이지 않는 독립적인 아르테미스에게서 충만한 기쁨을, 지적이고 당차며 지혜로운 아테네에겐 여성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고요한 명상과 살림을 잘 꾸려가는 헤스티아에게 편안함을, 타인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욕망과 일에 충실한 아프로디테에게 자유를 느낀다. 이런 것들이 2500여년을 넘어 우리에게 전해오는 여신들의 지도력이 아닐까? 지도력이란 지배와 억압의 권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신화와 역사 속 여성 리더십] 칼럼은 전라남도 양성평등기금의 지원을 받은 (사)가배울 살림인문학 아카데미  강연의 요약본입니다.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여성신문은 1988년 창간 이후 여성 인권 신장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여성 이슈 주간 정론지 입니다.
여성신문은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성의 '안전, 사회적 지위, 현명한 소비, 건강한 가족'의 영역에서 희망 콘텐츠를 발굴,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를 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여성신문이 앞으로도 이 땅의 여성을 위해 활동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성신문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