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공정’ 담론, 페미니스트 정치로 깨부수자
한국식 ‘공정’ 담론, 페미니스트 정치로 깨부수자
  • 이세아 기자
  • 승인 2022.08.31 00:28
  • 수정 2022-08-31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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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원 미 애리조나주립대 교수
29일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쟁점포럼’서
공정 담론과 능력주의 비판
“경쟁, 각자도생, 자유론으론
우리가 겪는 문제 돌파할 수 없어...
소수자 목소리 듣는 ‘페미니스트의 귀’ 갖고
서로 돕는 공동체 발전시키며 맞서야”
지난 29일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쟁점포럼’ 현장. 김정희원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 발표를 하고 있다. ⓒ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공
지난 29일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쟁점포럼’ 현장. 김정희원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 발표를 하고 있다. ⓒ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공

한국 사회는 왜 이렇게 ‘공정’에 집착할까. 사상 첫 30대 당 대표에 올랐던 남성 정치인이 ‘공정’과 ‘실력을 사회적 정의의 기준으로 내세우면서 더욱 힘이 실렸다. 그런데 그 공정 담론의 실체는 뭘까.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존중하고 보호하기 위한 논의로 이어지고 있는가. 김정희원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단호히 고개를 젓는다.

“공정 담론은 ‘폐쇄 담론’이죠. 쳇바퀴, 블랙홀 같아요.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 없이 ‘공정이냐 불공정이냐’만 따지면서 제자리로 돌려놓을 뿐입니다.” 

김정희원 교수는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 특히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이 공정의 세계관과 능력주의 신화에 계속해서 포섭되고 있다. 우리는 경쟁, 각자도생, 자유론으로 우리가 마주하는 난제를 돌파할 수 없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공정이라는 폐쇄 담론의 출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정 담론과 안티 페미니즘은 공생 관계”라고 일갈했다. “페미니스트들은 공정 담론을 더 예리하게 비판하며 맞서야 한다, 대항적 담론과 대안적 실천 양식을 개발해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지난 29일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쟁점포럼’에서 그가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지난 29일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쟁점포럼’ 현장. ⓒ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공
지난 29일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쟁점포럼’ 현장. ⓒ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공

여성가족부는 폐지 위기고, 여가부의 ‘성평등 문화 추진단 버터나이프크루’ 사업은 뚜렷한 이유 없이 중단됐다. 파업하는 하청 노동자들을 향해 ‘배부른 불만’이라는 비난이 쏟아졌고, 권리예산 보장을 요구하며 지하철 시위를 하는 장애인들은 ‘혐오’의 대상이 됐다. 모두 ‘공정하냐’는 질문이 집요하게 따라붙은 이슈들이다.

김정희원 교수는 이처럼 능력주의와 결탁한 공정 개념이 적극적으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펴낸 첫 단독 저작인 『공정 이후의 세계』(창비)에서도 이 문제를 깊이 다룬 바 있다. 

공정 담론을 ‘식민 담론’이라는 틀로 분석하기도 했다. ‘공정’이라는 가치가 자본주의, 가부장제, 국민국가 같은 기존의 억압적 지배 구조를 강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정희원 교수는 “언제나 자기계발에 매진함으로써 스스로의 시장가치를 끝없이 재조정하는 삶의 양식이 보편화됐다. ‘노력에 정확히 비례하는 보상’이 가능하다, ‘노력하면 성공한다’고 믿으면서 공동체 인식,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감각, 사회적 동료로서의 연대 의식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공정 담론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정상, ’보편‘으로 간주되는 이들인 남성, 이성애자, 비장애인 등을 효과적으로 배제”한다. 김정희원 교수는 “공정과 상식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공정, 정의, 법치가 어느 때보다도 강조되고 있다. 법과 원칙이라는 미명으로 가린다고 해도 현 정부의 국정 철학이 ‘폭력의 존재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은 자명하다”고도 지적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여성 할당제’ 같은 소수자 배려 정책, 복지와 재분배를 위한 기반 투자 등 소수자 배려 정책은 “원칙을 흔드는 불공정한 개입”이며, “정상 기득권 집단을 ‘억울한 피해자’로 만든다”.

페미니스트는 공정 담론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김정희원 교수는 먼저 “페미니스트적 대항미래(counter-future)를 그린다는 것은 여성만의 해방이 아니라 모두의 해방을 추구하고 실천한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페미니스트의 귀’를 가져야 한다”고도 했다. “공정 담론에 가려진, 배제된 삶들을 포착하고 응답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약한 이들의 말을 놓치지 않겠다는 끈질긴 의지, 나와 입장이 다르다고 내치거나 혐오하지 않는 포용적 관점도 필요하다. 억눌린 이야기를 타인에게 전달하고, 끊임없이 말하고, 적극적으로 해석해내는 연결망을 서로 돕는 공동체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김정희원 교수는 “‘공정’ 담론이 가장 두려워하는 당사자 정치, 즉 페미니스트 정치를 흔들림 없이 지속해나가자”고 강조했다. “미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며 “지치지 않고, 급진적이고 발본적인 생각을 나누기를 주저하지 말자”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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