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돌고 돈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강력한 지원을 업고 열린우리당의 강대권후보로 등장하고 있는 김혁규 전 경남도지사의 모습에서 98년 정치권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당시 정권교체에 성공해 여당이 된 국민회의에 당당하게 입당한 자민련 이인제 의원의 모습을 읽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뉴스위크>한국판 편집장

이인제 의원은 97년 대선에서 신한국당 경선에 불복한 후 독자 출마해 5백만 표를 받아냄으로써 겨우 30여만 표 차로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를 버겁게 누른 김대중 후보의 승리에 결정적인 공로를 세웠다.

정권교체의 공로자로서 국민회의에 입당한 이인제 의원은 당직은 당무위원에 불과했지만 당내 2인자인 권노갑 전 고문의 막강한 지원을 받으면서 '차기 대권주자'로 부상했다. 이 의원은 이 추세를 몰아 2000년 16대 총선에서는 새천년민주당의 선거사령탑인 선대위원장으로 등장해 전국을 누비며 차기 대권주자에 대한 주변의 기대를 만족시켜 주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그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운 16대 총선에서 실패했다. 청와대에서 '이인제 카드에 서서히 손을 놓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결국 그는 2002년 4월 민주당 대권후보 경선에서 '노무현 돌풍'에 맥없이 무너졌다. 또 '경선불복'의 전과를 보탠 채 탈당해 자민련으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 그는 한나라당으로부터 2억5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수감된 상태다. 그의 화려한 지난날은 지지자들과 몇 명의 기자들만 기억하는 아스라한 추억이 됐다.

차기총리로 지명될 것이 확실시되는 김혁규 전 경남지사는 이인제 의원처럼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의해 정치권에 입문했다. 모두 세 번의 경남지사를 지내면서 차기 대권주자군의 말미를 장식하는 정치인으로 성장했으니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민주계 인사다. 이런 그가 지난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 행을 택해 PK(부산 경남지역) 지역에서 대세몰이를 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 '결단' 막후에서 '총리' 자리가 오갔다는 것은 정치권에 이미 알려진 일이다. 그는 더군다나 노무현 대통령이 '의도'를 갖고 강력하게 미는 대권후보로까지 인지돼 있다.

이 시점에서 김혁규 전 지사는 이인제 의원의 정치행로를 한 번쯤 돌아봐야 할 것이다. 이 의원처럼 김 전 지사도 '일등공신'의 입장에서 당적을 옮겼다. 화려한 대권주자로 등극한 것도 98년 당시의 이 의원 모습 못지않다. 하지만 그는 호남에 뿌리를 둔 민주당의 이방인었던 이 의원처럼 자신이 옮긴 정당에 뿌리가 없는 정치인이다. 김 전 지사는 민주화 투쟁을 통해 성장해 오지 않은 것은 물론, 다소 진보적 색채의 정치인들이 주류를 이루는 열린우리당의 노선과도 동질성이 없다. 주변의 비판에도 아랑곳없이 '오직 김혁규'에 집착하는 노 대통령만이 그의 힘이다. 이 의원이 민주당에서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이 권노갑 전 고문을 '금동아줄'처럼 믿었다는 데 있다. 권 전 고문이 정동영 전 의원 등 당내 신주류에 의해 2선 퇴진 압력을 받으면서 서서히 힘을 잃어가는 순간이 돼서야 그 '썩은 동아줄'을 부여잡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고, 그때는 너무 늦었다.

정치환경은 늘 변한다. 총리와 대권주자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양손에 쥐고 있는 김 전지사의 모습이 그다지 안정되어 보이지 않는 건 배신당한 한나라당의 '딴지걸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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